아침 10시 6분, 나는 노트북 앞에 멀거니 앉아 있다.
노트북 왼쪽에는 미지근한 커피가 4분의 1 남은 향을 쥐어짜고 있고,
그 아래쪽으로는 벗어 놓은 비니가 찌그러져 있다.
나는 프로필 이미지를 흉내 내듯 턱을 괴고 있다.
잠시 머리를 뒤로 넘기는 사이, 소득 없던 지난 몇 주가 통째로 지나간다.
작가? 블로그에 머물던 글들을 브런치로 이주시키고, 몇 개의 글은 새로 들여왔다.
새집. 이사는 살짝 들뜨게 했다.
희망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사소한 이사를 빌려서라도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놈이라는 생각이 스쳐 가고, 남은 커피 한 모금을 습~ 하고 삼킨다.
읽고 있던 글로 눈을 옮겨 드르륵 스크롤을 내린다.
로렌 벌랜트가 정동을 이야기한다.
감정이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미끄러운 그 무엇을, 아주 깊게.
이런 어려운 이야기들은 겉에서 몇 번 맴돌다가, 몸이 먼저 익숙해질 시간을 요구한다.
처음 보는 물가를 맴돌며 발만 적시는 아이처럼, 나는 주변 문장들만 눈으로 맴돈다.
감정 비슷하지만 아니라고, 나와 타인, 몸과 환경 사이를 가로질러 흐르는 변화의 에너지, 분위기 같은 거라고 중얼거린다.
몸과 환경 사이를 가로지르는 그 말들을 따라가다가, 갈 길 잃은 눈 주위를 문지른다.
일단 이사는 왔는데, 낯설음. 아직 반겨주지 않는, 받아주지 않는 공간. 받아줄 만한 걸 내가 써서 들이밀어야 예의겠지 하는 생각이 스친다.
쓸 만한 걸 머릿속 구석구석에서 찾아본다. 브런치에 어울릴, 환영받을 만한 게 어디 있었더라.
살짝 차가운 공기를 타고 낮은 캐럴송이 들려온다.
캐럴송의 낮은 파동, 밀려들어오는 찬 공기와 서서히 엔트로피처럼 퍼지는 커피 향이 살짝 구부러진 팔의 털을 돋게 하고, 코를 벌름거리게 한다.
긴장된 설렘이다. 감정은 정동이 아니라고 했으니 설렘 앞까지만 정동이다.
커피 향을 다 삼키고 컵을 가지런히 놓는다. 노트북을 다시 살살 건드려 본다.
벌랜트가 다시 목소리를 낸다. “잔인한 낙관주의.”
친절하게 책은 설명해 준다. 삶에 꼭 필요하다고 믿고, 언젠가는 얻을 수 있을 거라며 쫓아가는데, 정작 그 믿음 때문에 지금의 삶을 제대로 못 살게 되는 관계라고.
나도 혼자 어색하게 되새김해 본다.
잔인한 낙관주의. 브런치 작가라니, 나도 처음엔 웃었지.
실패한 1번, 2번, 3번, 아니면 4번의 자소서. 익숙해져 가는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이메일.
긍정의 힘으로 노트북 앞에 다시 앉은 나.
면접관이 잔인한 건지, 긍정적인 내가 잔인한 건지.
커피 마시면서 캐럴 듣는 게 제대로 못 사는 건 아닌데.
탁탁탁, 타다 탁탁. 노트북을 두들기는 손가락이 바빠진다.
긍정적인 손가락이 경쾌하게 이 글을 마저 치고 있다.
글 쓰고 며칠 지난 후
지금은 이렇게 부족한 글들이지만 다른 분들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