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저널리즘, 타깃 오디언스의 삶을 바꾸는 콘텐츠
콘텐츠를 만들면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그 가치에 따라 측정해야 하는 수치도 제각각일 것이다.
타깃 오디언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게 기여하고 있는가?
우리는 왜 뉴스를 보지 않을까? 왜 정치와 시사,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을까.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내 대답은 "나랑 상관없잖아."이다. 신문이나 뉴스를 봐도, 내가 지금 당장 겪고 있는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온통 알아듣기 힘든 어려운 말들에 공감할 수 없는 메시지를 뒤섞어 놓아 당최 무슨 말인지도 모를 말들을 듣다보면 곧장 다른 페이지를 열어 쇼핑몰을 구경하곤 한다.
나라에서 어떤 정책을 냈나보다, 연말 파티에 무슨 옷을 입고 갈지가 중요한 문제다. 내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콘텐츠는 내 삶을 변화시키기 못한다. 내 삶에 도움도 안 되는 콘텐츠를 굳이 시간 들여가며 볼 필요는 없고.
팀 헤레라 뉴욕타임스 스마터 리빙 수석에디터는 이를 '서비스 저널리즘'이라 칭했다. 이 정의에 의하면, 와이어커터 같은 제품 리뷰 사이트도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독자들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추천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한다.
디자이너는 시장이 원하는 것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이런 것도 멋지지 않나요?' , '이런 미래를 만드는 건 어떤가요?'라고 제안해 나가는 사람이라던 하라 켄야의 말이 생각난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저널리스트 역시 디자이너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뉴욕타임스, 와이어커터 인수. (언론사가 리뷰 사이트를 왜?)
'타깃 오디언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는 이정표가 없다면, 매번 길을 잃게 된다.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핵심성과지표)를 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뭐가 중요한지 모르니까 도달은 얼마나 됐는지, 공유는 얼마나 됐는지, 좋아요는 얼마나 찍혔는지. 반응의 사이즈가 가장 중요하자 유일한 가치가 되어버린다. (이건 인기 싸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콘텐츠가 독자들의 삶을 바꾸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 역시 조회수나 공유수가 그렇게 큰 의미를 지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딱히 반응을 측정할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않나?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소셜 임팩트, 즉 우리의 콘텐츠가 독자의 실제 삶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는 정량적 평가가 아니라 정성적 평가로 확인할 수 있다. 독자 반응의 사이즈보다, 퀄리티가 더 중요하다. 그들이 실제로 콘텐츠를 본 후에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주의깊게 관찰해야 한다. (페이스북은 대규모 알고리즘 개편에서 '연관도 점수'를 기준으로 콘텐츠의 퀄리티를 판단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타깃 오디언스에게 도움이 되는 메시지를 썼으면, 그 사람들로부터 감사하다는 반응을 얻어야 잘 기획한 콘텐츠이다. 좋아요 몇 개 찍히는 것보다, '고맙다'는 댓글을 받는 것. 그들에게 도달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그들과 연관성있는 콘텐츠를 보여주느냐가 관건이다. 도달한 뒤 그들의 삶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
<린 분석>에서는 성과를 분석할 때, 해당 지표가 단순히 제작자가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에 그친다면 소용없는 지표라고 말한다. 데이터는 정보를 제공해주고, 방향을 제시해주며 결과물을 개선하고 행동 방침을 결정하는 데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위에서 말한 조회수나 공유수 등의 ‘숫자’는 그 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면 허상 지표에 불과하다. 타깃 오디언스에게 미친 영향을 생각할 수 있는 지표를 KPI로 설정해야 한다.
*철저히 타깃 오디언스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여 콘텐츠를 만드는 곳 중 하나인 MIC. 26세의 관점으로 모든 내용을 서술한다.
타깃 오디언스의 실제 삶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 그러므로 숫자에 휘청이기보다 실제로 그들이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를 더 가치있게 여기는 것. 그 외에 고려해야 할 것은 또 뭐가 있을까?
They exist to make a profit, They exist to make a point!
기억에 남는 인용문으로 대체한다. 우리의 목표는 포인트를 만드는 것. 단순 팩트 전달을 넘어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것.
*전자의 they는 기업, 후자의 they는 저널리즘을 의미한다.
미디어 이론가인 제이 데이비드 볼터와 리처드 그루신이 제시한 '재매개'라는 개념이 있다. 하나의 미디어가 내용과 형식 차원에서 다른 미디어의 기술, 표현 양식, 사회적 관심 등을 답습하거나 개선 및 개조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콘텐츠 포맷의 진화 방향을 살펴보자. 짤을 예로 들면, 짤방 -> 움짤 -> 플짤(오디오가 들어간) 순이다. 재매개를 활용한 형식의 방향은 경험의 확장 즉, 몰입도를 향상 시키는 것과 같다. 짤의 진화에서 유추해낼 수 있는 점은 감각이 확장되고 있다는 점. 실제로 스마트폰이 막 나왔을 때만 해도 싸이월드에 텍스트로 일기, 셀카나 올렸지 (개인적으로는 최근까지도) 영상 콘텐츠를 잘 보지 못했는데, 요즘에는 영상 없는 타임라인을 상상할 수 없다.
관련 책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502130
콘텐츠에서 이러한 감각의 확장은 여러 장르를 합함으로써 이루어지고 있다.
소설 + 저널리즘 = nonfiction journalism
웹 다큐멘터리 + 저널리즘 = immersive journalism
카드 + 웹(모바일) 저널리즘
게임 + 웹 = parallax storytelling
이미지 + 웹 = searchable explanatory
여러가지 종류들이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것만 가져오자면,
워싱턴 포스트 Rasing Barriers (웹 다큐멘터리 + 저널리즘 = Immersive Journalism)
https://www.washingtonpost.com/graphics/world/border-barriers/global-illegal-immigration-prevention/
이만큼 멋있는 인터랙티브 뉴스는 처음 봤다. 영화 같기도 하고, 기사 같기도 하고...
인터뷰 영상 외에 기사가 나오는 페이지에도 오디오가 삽입되어있는데 그게 나머지 영상들이랑 너무 잘 연결이 되어서 정말 그 장면 속에 빠져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중간중간 나오는 인포그래픽 역시 엄청났고... 컬러를 흑백으로 통일한 것도 더 몰입하기에 좋았던 것 같다. Immersive라는 단어가 너무 잘 어울리는 콘텐츠.
쿼츠 인덱스(카드 + 웹(모바일) 저널리즘)
뉴스 한 번 열심히 보겠다고 오만 언론사 어플을 다 깔았다가 얼마 전에 싹 지운 적이 있는데, 그 중에 유일하게 남겨둔 앱이 쿼츠. 처음에는 채팅 형식으로 전해주는 기사가 특이해서 남겨뒀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푸시 알림을 받을 때 가끔 들어가는 것을 보고 이 앱은 내가 기사를 소비하게 만들어주는 서비스구나...했다.
그런 쿼츠가 하는 또 다른 서비스, 인덱스. 앱처럼 짧은 길이의 단락을 카드 뉴스처럼 넘기는 형태인데, 트위터를 몰아보는 느낌 같기도 하다. 신기하긴 한데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도 만들 수 있구나'하는 생각은 던져줘서 감사한 콘텐츠.
게임 + 웹 = Parallax Storytelling
패럴랙스 디자인이란 여러 겹의 레이어를 쌓아서 웹에서 스크롤을 했을 때 특정 오브젝트만 움직이게 만들어서 마치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디자인이다. BBC에서 만든 제임스 본드 기사를 보면 단박에 이해할 수 있다.
성규님이 얼마 전에 링크를 공유해주셨던 기사인데, 이것도 같이 보면 좋을 듯.
http://highline.huffingtonpost.com/articles/en/poor-millennials/?mobile=1
https://brunch.co.kr/@thinkaboutlove/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