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건 2년 전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왜 되고 싶은지는 잘 몰랐다. 디자이너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그냥 저런 멋진 거! 쩌는 거! 대단한 거!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만들 줄은 몰라도, 감탄할 줄은 알았으니까.
내 브런치 글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설명'에 강박을 느끼는 사람이다.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고, 영화를 보고 뭘 느꼈는지 설명해야 하며, 강의를 통해서 뭘 배웠는지 설명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건, 그러니까, 내가 욕망하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건 정말이지 나를 불안하게 만들곤 했다.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으면, 계속해서 '정말 맞나?' 의심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래서였을까. 스스로에게 어떤 디자인을 하고 싶은지 자주 물었다. 대답은 자주 바뀌었다. 색감을 잘 쓰는 것, 타이포 그래피를 기깔나게 다루는 것, 도형을 똑똑하게 활용하는 것... 이것저것 찾아다니면서 취향을 찾고자 했지만 글쎄, 성공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모두 다, 어딘가 모르게 겉면만 핥고 있다는 느낌에 공허했다. 저렇게 대답을 했을 때 누군가'그게 왜 좋은데?'한 번 더 물으면, 금세 머릿속이 새하얘질 것 같았다.
최근에는 '설명이 필요 없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한눈에 척 봐도 "와!" 탄성을 자아내는 작업들. 그런 작업들은 설명을 요구받지 않는다.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존재할 가치가 있으니까. 나는 그런, 그냥 봐도 '개쩌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설명이 필요 없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설명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도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디자인일지라도, 본인은 자신의 작업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게 예술이 아니라 디자인이라면. 그 설명이 결과물과 찰떡같이 잘 들어맞는 것, 혹은 그 이상의 퍼포먼스를 내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설명이 필요 없는', '개쩌는' 디자인이다.
설명이 필요 없는 디자인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저런 작업을 할 수 있을까 많이 궁금해했다. 신기하게도 내가 본 개쩌는 디자인들은 모두, 그 뒷단의 설명으로도 나를 납득하게 만들었다. 결국, '설명이 필요 없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설명할 수 있는 디자인' 정도는 너끈히 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상대방을 설득하기 전에, 자신부터 설득할 수 있어야 하니까.
본 매거진 역시 설명할 수 있는 디자인을 목적으로 만들었다. 디자인에 대한 시시한 생각부터 깊은 고민까지 모두 글로 남겨두려고 한다. 물론 매일 생각하는 건 아니라 일기처럼 자주 남기지도 못하고 내공이 부족해 인사이트 넘치는 내용을 내놓지도 못하겠지만, 그 과정 또한 언젠가 내 작업을 설명하는 한 부분이 될 것이라 믿고! 시시껄렁하고 어디 내놓기도 부끄러운, 얕은 생각들을 남겨보려 한다.
그럼 설명할 수 있는 디자인은 물론, 언젠가는 설명이 필요 없는 디자인까지 하게 되겠지!
(매거진 두 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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