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1도 모르는 사람의 디자인 행사 후기...
무려 5분도 채 안 되어서 마감되었다는 엄!청!난! <비핸스 포트폴리오 리뷰>행사에 다녀왔다. 주최는 디자인 스펙트럼, 연사는 봉재진님/강영화님/김성은님/이현규님/박지영님/최원용님.
사실 포폴을 갖고 있는 것도, 준비 중인 것도 아니라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을 것 같다. 비전공자로서 당장 내게 적용할 수 있는 부분만 기록해본다.
연사 분들께서 강조해주신 포인트가 따로 있었지만, 내게 특히 와 닿았던 말들만 모아봤다.
재진님은 제품 디자인을 전공하셨다가 갑작스럽게 외부 상황으로 인해 시각 디자인으로 전향하셨다. 디자이너로서 정체성 혼란도 겪으셨고, 뒤처지지 않기 위한 무기도 필요하셨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디자이너의 무기는 포트폴리오’라는 말을 보고 당장 포폴을 쌓을 기회를 찾으셨는데, 웬걸, 포폴을 쌓으려면 포폴이 필요하더라고(…). 결국 당장 학교에서 하고 있는 과제라도 포폴로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과제를 포폴화하자’고 생각하셨다.
http://bonxn.xyz/project/blank
두 가지가 인상 깊었다. 첫 째는 말씀하신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폴화하는 것. 사실 결과물을 내본 적도 없어서 결과물만 잘 내면 되지 않나, 생각했는데 잘 정리해두는 것도 많이 중요하다고 한다.
두 번째는 과제를 포폴화하는 것. 어떤 목표가 생겼을 때 가장 이상적으로 그것을 달성하는 방법(본 사례의 경우 대외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한다거나)이 있는데, 나는 그 방법을 갖지 못하면 종종 포기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재진님은 당시 갖고 있는 리소스를 최대한 활용해서 목표를 달성하셨다. 괜히 거창하게 일 벌리려다 포기하지 말고(…) 하고 있는 일과 잘 연계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살아야겠다...
영화님은 첫 회사에서 PPT디자인, X배너, 현수막… 등 매우 다양한 분야의 그래픽 디자인을 하시다가 UI디자이너로 전향하셨다. 당시에는 포트폴리오가 없어서,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에서 6개월 일하고 3개월 정도 프리랜서를 하다가 스포카에 입사하셨다. 강연 마지막 즈음 30만 원짜리 비즈니스를 여러 개 해보라시며, A to Z를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게 와 닿았다.
PM역할을 맡게 되면서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점. 집착하고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프로젝트 전체를 봤을 때에는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더 중요한 게 뭔지 고려해보는 관점이 생겼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하면 상대적으로 디테일에 힘이 빠지기도 하는데...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하나 고민도 된다. 스타트업에서, 프리랜서로 일하시면서 어떤 내공을 쌓으셨을지 궁금하다.
성은님은 일전에 카카오에서 BX 디자이너로 재직하셨다. 지원시 포트폴리오를 보여주셨는데, 그 중 인디 레이블 <파스텔 뮤직>리브랜딩 작업을 보여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인상 깊었다. 보통 포트폴리오를 보면 아이디어 나열, Type 선택, Spacing 등 결과물만 나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디자인을 할 때 왜 이렇게 했는지,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기록을 열심히 해두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된 계기.
https://www.behance.net/gallery/13869919/PASTEL
실제로 성은님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파스텔의 물성을 어떻게 그래픽화 시킬까?’, ‘중심에서 퍼져나가는 모습, 부드러움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쉽고 간결한 형태가 뭘까?’ 등 디자인 당시 했던 질문부터 ‘미술 도구로써 파스텔 -> 예술과의 연관 -> 소위말하는 Artistic한 이미지’, ‘고운 입자->망점’ 등 사고의 흐름까지 명시해두셨다. 개인적으로 뇌를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서 많이 흥미로웠다.
패널 토크 시간에는 사내 시스템 작업을 주로 하는 분께서 포폴로써는 매력이 없을 것 같다고 걱정하셨다. 결과를 이야기할 때, 뭘 잘했는지를 드러내는 것은 물론 ‘이런 점은 아쉬웠다’, ‘이런 걸 더 해보고 싶었다’첨언하는 것도 좋다고 말씀해주신 것에 ‘오!'했다. 나는 데드라인이 있는 작업을 해본 게 아니기 때문에,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의 최대치가 반영된 작업을 했다보니 아쉬운 점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회고할 때 고려해야겠다.
강연 내내 '이 분은 천재인가...'했다. 포트폴리오를 보면 일러스트(그래픽,수채화)/모션 그래픽/패키지 디자인 등 분야가 매우 다양하다. 근데 다 잘하셔... 하단 링크는 향수 브랜드인데 브랜딩과 패키지 디자인은 물론 직접 조향까지 하셨다고...! 와중에 칵테일 잔에 파도가 찰랑이는 일러스트는 모션그래픽으로 한 번 더 작업하셨다.
https://www.behance.net/gallery/57984661/PHILOUET
포폴 설명을 마무리할 때 종종 "하고 싶은 거 다 했어요."라고 말씀하시는 게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Floél이라는 꽃차 패키지 디자인을 하실 때에는, 고급 양주를 양초로 마감처리해놓은 것에 영감을 받으셨다고. 나였다면 내가 전혀 접해보지 않은 곳에서 영감을 받으면 '그런게 있구나~'하고 끝낼 것 같은데, 어떻게 만드는지 찾아보고 직접 천연고무를 섞어보면서 조합을 찾아서 결국 뚜껑을 만들어내셨다.
처음에는 너무 다양한 분야의 작업을 하시니 혼란도 있었다고 하시는데, 결국은 그 다양한 관심이 오히려 아이덴티티가 된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중요한 건,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어떤 방법으로든 해낸다는 점인 것 같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익숙하든 익숙하지 않든 끝까지 집착해서 완성도를 끌어올리니 다 잘하시게 된 듯.
지영님은 '콘셉트카 GUI 디자인'을 하는 분이다. 지영님의 강연 전까지는 들어본 적도 없고 크게 관심도 없던 분야여서 속으로는 좀 '헉!'했다. 못 알아들을 것 같아서... 그런데 말씀을 너무 재미있게 잘해주셔서 내내 깔깔대며 들을 수 있었다.
지영님도 처음에는 구글, 애플 등 기업의 디자인 철학과 깔끔-깨끗-한 디자인을 좋아하셨다고 한다. 학부 동안에는 물론, LG와 SM을 거치는 동안에도 계속 비슷한 류의 '깔끔'한 디자인을 하셨다. 막상 돌아보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그래도 트렌드니까...하면서 꾸역꾸역 해내신 것 같다고.
결국 좋아하는 종류의 디자인을 시작해서 1년차 주니어 때 캐딜락(!) 프로젝트를 맡으셨다. (사실 이전에도 잘 하셨지만)잘 맞는 분야를 찾아 빛을 발하시는 것을 보고, 과연 내가 원하는 건 뭔지 다시 한 번 정리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Cadillac escala concept vehicle
원용님은 이전에 엄청난 붐을 일으켰던 오빠믿지 어플 팀에 계셨다. 주로 UX 디자인을 하시다가 UX, UI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최대한 실체에 가깝게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자'는 목표 하에 UI, Interaction 분야를 접하게 되셨다.
https://www.behance.net/gallery/61429589/FOMU-For-Your-Music
인상 깊었던 점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구현하기 전에 무조건 프레이머에 한 번 올려보신다는 점. 기획만 봤을 때는 너무 좋고, 멋진 아이디어인데 막상 만들어놨더니 반응이 별로일 때가 종종 있었다.
이는 구글이 스프린트 과정에 프로토타이핑을 반드시 넣는 것과도 같은 이유인데,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유저의 반응을 보고 결과물을 만들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기획을 탄탄하게 해서 마스터피스를 짠! 내놓아야지! 하는 생각은 너무 위험하고, 지금처럼 프로토타입을 만들기 편한 때에는 딱히 그럴 필요도 없다.
솔직히 그간 다녔던 컨퍼런스나 세미나 등과 비슷하겠지 싶어서 별 기대 없이 참석했는데(여차하면 중간에 나와서 밥이나 먹어야지...마음 먹고 갔다.) 생각 외로 너무 재미있었다. 다음 달에 준비하는 행사까지 기대될 정도로! >ㅁ<
참고로 다음 달(7월) 스펙트럼 행사는 무인양품(MUJI)과 <Life Style & Tech>라는 주제로 진행된다고 한다!
https://brunch.co.kr/@thinkaboutlove/197
https://brunch.co.kr/@thinkaboutlove/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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