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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유 Mar 26. 2019

2020 도쿄 올림픽 픽토그램에 담긴 디자인적 의미

“나는 1990년대, 내가 스위스 그래픽 예술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을 당시 올림픽 그래픽 디자인(특히 픽토그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Osterwalder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나는 마지막 논문을 준비해야했고, 올림픽 디자인에 대해 찾아보기로 했다. 로잔에 있는 올림픽 도서관에 가서 도착한 그 날, 1994년 릴레함메르에서 열렸던 올림픽의 디자인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 책은 내 인생을 뿌리채 바꿀 정도로 감명 깊었다.


그건 그래픽 디자인이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환상적인 이야기였다. 기능적인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그것이 왜 국가, 비전, 철학을 대표하는 한 나라의 헤리티지의 일부가 되는지에 대해서도 수록되어있었다. 결국 나는 본격적으로 조사를 하기 시작했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수많은 연구들을 수행했다.”


올림픽 게임 픽토그램이 처음 소개되었던 건, 1964년 도쿄에서 열린 올림픽에서였다는 것이 정설로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Osterwalder는 말한다.: “문자 없이 그래픽 일러스트레이션 요소로만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심볼을 만드는 것은 그 때보다 훨씬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1912년 스톡홀름, 1924년 파리, 그 뒤에 따라오는 다른 많은 올림픽에서도 작은 픽토그램들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의 우리가 아는 것처럼 간단하고 명료한 느낌의 픽토그램은 아니었다. 언어적 요소 없이, 스포츠를 설명하고 경기 스케쥴이나 기타 등등을 표현하는 복잡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예를 들어,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는 픽토그램으로 추정되는 심볼이 있었다.”
 

그러나 1964년 하계 올림픽 때 도쿄에서 작업한 디자이너들은 지금의 우리가 아는 시스템의 형태를 구축하는 데에 많은 기여를 했다.


“그들은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요소로 형태와 사이즈를 줄였다. 일본인들은 언어에 대해 문제를 겪었다. 아무도 일본 밖에서는 일본어를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양한 국가에서 오는 사람들에게도 작동하는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비언어 시스템이다.”


이 올림픽의 엠블럼(올림픽 링과 도쿄 1964 위에 놓인 빨간 원반)을 예로 들어보자. 정말 간단하고, 그 중에 하나라도 제거해버리면 이미 그 엠블럼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매우 심플한 새로운 언어를 발명해냈고, 그래픽 디자인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형태를 창조해냈다. 그들은 처음으로 스포츠 사진을 사용했고, 그래픽 요소로 타이포그래피를 통합했다.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1964년 도쿄에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것을 환상적인 작업물로 내놓을 수 있는 뛰어난 디자이너들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남녀 화장실 픽토그램을 처음 만들어낸 것 역시 1964 도쿄 올림픽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88cpa6ZAc&feature=youtu.be


1994년 릴레함메르에서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
 

Osterwalder는 1960,70,80년대가 큰 변화가 없다고 보았다. “다 비슷비슷해보인다. 조금씩 스타일들이 다르고, 나머지들에 비해 이해하기 쉬운 것들도 있지만… 결국 다 똑같은 철학이다.”


1990년대에는 매우 중요한 혁명이 일어난다. 1992년 알베르빌과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하/동계 올림픽은 브러쉬 페인팅 기술을 활용하여 그들 자신만의 픽토그램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든 스포츠별로 버전을 가진 Cobi 캐릭터처럼, 보편적인 디자인의 매우 중요한 파트가 된다.


“1994년 릴레함메르에서 열린 경기에서, 처음으로 픽토그램이 이야기를 하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들은 동굴에서 발견된 4,000년 된 유명한 바위 조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스키타는 사람을 표현한 것].


처음으로 한 나라의 헤리티지가 그래픽 디자인에 포함되었는데, 이는 겨울, 혹은 겨울 스포츠와 연관되어있는 노르웨이의 소유였다. 그게 바로 픽토그램이 이야기를 시작한 시기이다.”
 

“2000년 시드니에서 역시, 모든 픽토그램들이 스포츠를 표현하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부메랑을 기반으로 했다. 2004년 아테나 역시 모던한 그래픽 디자인으로 고대의 올림픽을 회상하게 만듦으로써, 그들의 헤리티지를 사용했다.


오늘날은 당연하게 행해지는 작업들이지만… 몇몇 경우는 모든 올림픽에 완벽하게 들어맞기도 하고, 몇몇은 조금 이상하게 보이기도 한다. 2006년 토리노와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여러 개의 레이어로 3D 디자인을 했다. 2014년 소치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떠올리게 하는 픽토그램을 기반으로 하였다. 2016년 리오에서는, 이런 방식의 디자인에 완벽하게 어울렸지만 딱히 어떤 스토리를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스위스 올림픽 디자인 역사학자들은 말했다. “처음으로 픽토그램이 쓰인 것은 사람들이 읽을 필요 없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 때다. 올림픽 공원 혹은 다양한 장소에 가기 위해서, 아 맞다. 프레스룸도 있고, 이런 저런 요런 그런 장소들도 있지! 하고.


대중들과 선수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 픽토그램들은 올림픽 가이드가 되었다. 그들 없이 모든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언어들이 필요했을지 생각해보시라. 픽토그램은 모든 것을 간단하게 만들어주었다!”


물론: “올림픽의 느낌, 그 나라의 헤리티지, 외견 등에 대한 포인트가 있다면, 그리고 그들을 상품화하는 데에도 사용할 수 있다면 훨씬 좋다. 이를테면, 릴레함메르에서는 픽토그램을 활용하여 수 천 장의 티셔츠와 오브젝트들을 생산했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픽토그램이 그다지 좋지 않다면, 아무 것도 팔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는 아마 그 심볼이 농구니, 세일링이니 하는 어떤 스포츠인지만을(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일 것이다. 게다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온전히 정보 전달용으로만 쓰였지만, 이제는 바뀌었다. 그들은 각국의 헤리티지의 일부가 되었고 게임과 광고 프로그램의 모습에 더 가까워졌다.”


원문: https://www.olympic.org/news/the-olympic-pictograms-a-long-and-fascinating-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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