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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유 Jan 30. 2020

UX의 맥도날드화

*본 글은 디자인 뉴스레터 디독에서 발행한 글입니다.

해외 디자인 아티클 번역 뉴스레터 '디독' 구독링크: http://bit.ly/2FNQNpv



헬스케어 UX에 특화된 회사와 30분 정도 면접을 봤다. UX디렉터는 병원의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를 얘기하는 것으로 운을 뗐다. 쉴 새 없이 편하게 이어갈 수 있을만큼, 아주 능숙하고 매끄러운 스피치였다. 그녀는 이 포지션(내가 면접보고 있는 이 직무)이 병원이 돈을 버는 데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항상 꿈꿔오던 일 말이다. ㅡ 큰 회사 만들어서 돈 많이 버는 것.


(하지만...)그녀가 나를 놓치는 데에는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내 업무가 환자나 의사의 삶에 얼만큼의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선 그 어떤 논의도 없었다. 그녀는 내 모든 업무 프로세스, 배경, 경력에 대해 적절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그녀는 내가 거의 모든 회사에서 맡아왔던 똑같은 포지션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디자인 시스템, 애자일, 와이어프레임, 모든 변수들...


하지만 그들은 다 다른 회사였음에도 하나같이 다 똑같은 포지션에 똑같이 뭣 같은 일을 해야 했다. 나는 환자들이 높은 병원비를 대는 동안, 이 병원과 회사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도록 피땀 흘려가며 일하는 내 모습을 그려보았다. 약간 로빈 훗이 된 느낌이 들었다.


별로 재미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최근, 나는 UX 종사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변화가 있음을 느꼈다. 내 생각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UX와 우리 직종의 방향성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듯 하다. 나는 이러한 변화를 'UX의 맥도날드화'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생각은 다양한 소스와 인풋에서 비롯되었다. 최근에, 향후 커리어 설계를 위해 엄청나게 다양한 포지션에서 면접을 봤다. 난 하던대로 같은 일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타 분야의 관점에서 우리 분야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난 지속적으로 다양한 국가에서 끊임 없이 UX 최신 동향을 살피는 좋은 리크루터들을 만났다. 그들 모두 같은 이야기를 다른 버전으로 이야기해줬다.


내 주장을 확고히 하는 데에 내가 받는 이메일과 메시지보다 더 좋은 소스는 아마 없을 것이다. 최근에, 디자이너가 PM으로 넘어가야만 하는지에 대한 내 생각을 묻는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좋은' UX 포지션이 하향세인지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포지션이 계속 유의미할지에 대해 두려움을 표했다.


난 심판의 날 시나리오를 믿는 사람은 아니다. 또,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이 아티클의 제목을 'UX의 종말'(혹은 그 비슷한 것)이라고 다는 비윤리적인 사람도 아니다. 우리는 최근,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타이틀이 스믈스믈 떠오르는 것을 보고 있다. 난 UX 디자인 포지션이 하향세라는 말은 들은 바가 없다.(경쟁이 늘어나니, 자리가 많이 없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다.)내가 아는 바로는, '좋은'포지션은 희귀한 경향이 있고, 이건 내가 생각하기엔, UX의 현 상황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한다.


'좋은'은 매우 주관적인 단어이다. 그러니 제대로 정의를 하고 시작해보자. 베이직 레벨에서의 '좋은'은 직무명과 설명이 당신이 실제로 하게 될 일과 일치하는가이다. 포지션은 지원자가 성장할 수 있는 곳이며(혹은 한 달 후에는, 최소 바빠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거나) 대부분의 UX 포지션은 일관적인 작업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 점이 내겐 특별한 문제 중 하나로 다가온다.


난 UAW(United Automobile Workers, 전국 자동차 노동조합) 조립라인 위에서 4년 간 일했다. 포드 트럭 Navistar 디젤 엔진을 제작했다. 8시간 이상 똑같은 일을 하는 곳은 본질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포지션이다. 침팬지처럼, 라인 앞에 서서 작은 나사를 끼워넣고 엔진이 다음 단계로 가도록 버튼을 누르기만 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침팬지가 나보다 더 정확도 높게 일을 해낼 수 있고 높은 성공률을 기록할 것이다(바나나도 덜 들고). 그래도 난 결국 로봇에 대체되겠지.


최근 몇 년 간 다양한 UX포지션에서 일했다. 거기선 조립라인에서 일했던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일을 해야 했다. 일단 고용되고 나면, 또 다른 조립라인에 배치되어 엄청나게 많은 양의 화면들과 개발자를 위한 설명서를 쏟아내고, 유저와 인터랙션하지 않는다. 이러한 포지션은 모두 비판적인 thinker와 협업을 잘 하며, 문제가 무엇이든 "엣지 있는"디자인 솔루션을 낼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은 릴리즈 일자를 맞추기 위해 조립라인을 계속해서 굴릴 수 있도록, 스크린을 빠르게 쳐내는 와이어프레임 만드는 원숭이가 필요할 뿐이다. 그 어떤 생각이나 제안도 일정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라치면 묵살된다. 어떤 디자인 프로세스도 -리서치, 경험 맵핑, 디자인 스프린트- 붕어빵 틀(이라 쓰고 애자일이라 읽는)에 딱 맞출 수 있어야 한다.


한 때, 세상에 다양한 조직들이 있었을 때에는, UX에 대해 확신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어쩌면, 그것도 결국엔 곧 사라져버릴 트렌드 같은 속임수 아니었을까? 그때는 UX 종사자들이 팀에 어떻게 합류할 것인지, 어떻게 프로젝트에 접근하고 무슨 방법론을 쓸지 정할 수 있었다. 조직은 우리를,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들을 이해하지 못 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프로세스와 접근법을 주장할 수 있었다. 각 포지션은 유니크했고 우리는 우리의 업무에서 일정 수준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한 때'는 이제 끝난 것 같다. 이젠 UX 포지션의 채용 공고만으로도 조직 내에서 가장 의심 많은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다. 와이어프레임을 만들고, PM 및 개발자와 정해진 시간에 딜리버리하고, 프로덕트 효율성을 위해 디자인 시스템을 유지하고... 블라블라. 우리가 하는 일이 표준화되는 건 나쁘지 않지만, 그건 자유를 뺏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ㅡ 자율성도 없고, 창의적인 탐험이나 접근도 금지하는.


UX포지션에 대한 설명은 모두 본질적으로는 우리의 업무가 표준화되는 데에 기여한 몇 가지 소스를 따라한 것에 불과하다. 새로운 컨셉을 개발하고 디자인하는 과정은, 많은 조직들이 놀랍게도 비슷하다. 이제 우린 디자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대부분 머터리얼 디자인에 기반한), 그 시스템이 우리 디자인 랭귀지에 일관성을 부여해주지만 창의성(혹은 생각)을 앗아가기도 한다. 


게다가 에스노그래피 관찰법이나 페르소나 개발, 혹은 사용성 테스트같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리서치는 제외하는 추세다. 리서치는 투자 대비 수익률이 가장 높은 방법쪽으로만 제한되며, 이는 각 포지션에서 똑같은 타입의 리서치를 수행하는 것을 초래하게 된다. 즉, 리서치를 많이 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이게 바로 내가 'UX의 맥도날드화'라고 말한 이유이다. '맥도날드화'라는 용어는 내가 만든 게 아니다. 사회학자 George Ritzer가 창시한 말이다. 그의 책 <사회의 맥도날드화>에서, Ritzer는 사회가 패스트푸드점이 만든 원칙들을 따르는 예를 들어보인다. 그는 이 현상에 기여한 다섯가지 원칙을 이야기한다.


효율성 - 완성품에서 최고의 제작 효율을 내기 위해 과정을 간소화 및 최적화하는 것.

예측 가능성 - 제품의 퀄리티를 정량화하는 것. 즉, 보통의 제품이 많이 나오는 게 좋은 퀄리티의 제품이 적게 나오는 것(혹은 퀄리티 있는 제품이 기한을 넘겨서 나오는 것)보다 좋다는 것.

규격화 - 똑같은 제품을 지속적으로 같은 시간 내에 생산해내는 것(맥도날드의 치즈버거처럼).

사회적 통제 - 직원을 규격화하는 것(획일적인 행동과 상호 작용).

합리성의 비합리화 - 합리적인 시스템은 직원을 기계처럼 만들 때, 비합리적으로 변하게 된다.


우리의 프로세스는 맥도날드가 치즈버거와 감자튀김을 만드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게, 규격화되고 있다. 이게 바로 맥도날드화다. 맥도날드화는 규격화하고, 제품을 대량생산하고(낮은 퀄리티로),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디자이너가 어디서 일하든 상관 없이 똑같은 생각을 하도록 사회적 제약을 건다. 궁극적으로, 이는 디자이너가 디자인 분야에서 만들어진 표준 영역을 넘어 바깥 세상을 탐험하려고 할 때, 그를 기계처럼 만들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규격화는 디자인 종사자들의 모든 양상에 스며들고 말았다. 모든 디자인 팀은 똑같은 프로세스를 밟는다(그래선 안 될때 조차도). 우리는 채널과 접점을 가로질러 일관성을 도출해낼 수 있는 요소들로 이뤄진 디자인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팀은 애자일 프로세스의 특징을 따를 것을 요구하곤 한다. 


이러한 결과는 직무 설명서에 똑같이 언급되어있고, 대부분의 디자인 포지션은 결국에는 똑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 조직은 다른데 다 똑같이 뭣 같다...


여기가 바로 UX가 비즈니스에 '플러그인'되는 지점이다. 우리는 지금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모듈화되고 있다. 당신은 지금 아주 빠른 속도로 조직에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런 장기전은 이 분야에 들어와있던 사람들에겐 아주 암울한 소식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창의적으로 탐험하는 과정을 즐기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생각해보자. : 내가 다음 회사에서도 괜찮은 문화에 괜찮은 연봉으로 지금 하는 일처럼 뭣 같은 일을 계속 한다면, 내가 왜 굳이 이직을 하겠는가? 만약 조직이 우리가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길 바란다면, 그들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줘야 한다. 


대신, 내가 마주하게 될 것 같은 문제는, 비즈니스가 인터뷰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는 시나리오다. 그들은 더 많은 유저에게 어필해야 한다고 말하고, 수익을 높여야 하며, 대규모 사업을 위해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그럼 그들이 말하는 (철 지난 데다 말만 그럴듯한)머터리얼 디자인 시스템, 그들의 애자일 프로세스(실제로는 애자일하지 않은), 그들의 디자인 프로세스(다른 디자인 프로세스랑 다를 게 없는)를 따라야 할 것이다. 나는 뭔가를 요구하며 합의를 미루고 있을 테고.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난 이런 게 아니라 회사를 위해 일한다'라고 말하는 디자이너가 있다. 그들은 아마 낮술을 위한 비어 탭과 프리 와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스타트업이나, 사람들이 일하는 것보다는 놀이공원 쯤으로 생각하는 캠퍼스가 있는 실리콘 밸리의 몇몇 회사에서 힙하게 일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머지 디자이너들은 미국에 있는 일반적인 기업에서 비슷비슷한 포지션에 위치해, 한땀한땀 픽셀 따는 일반인들이다. UX '맥날러'는 아주 쉽게 대체될 것이다.


난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고, 단순히 과거의 모험 가득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나이 들어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라인을 잘못 타고 있는 걸지도. 하지만 모든 UX가 정규화되고, 표준화되어 마치 'ISO 버전'같이 되어가고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니다. 


또,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극도로 복잡한 디자인 시스템(여타의 디자인 시스템 비슷비슷해 보이는 룩과 기능을 가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나 뿐만이 아니다. UX를 넘어 새로운 직업을 찾을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사람 역시.


내가 생각하기에, 난 다른 포지션에서 일할 수 있을 기회를 잡을 만큼, 충분히 변화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 와이어프레임 원숭이는 또 다른 서커스를 찾고 있답니다, 여러분. 해피밀은 더이상 저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아요.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분명 저 뿐만이 아닐 겁니다.



*본 글은 디자인 뉴스레터 디독에서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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