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TIL 고객 가치와 큐레이션 -메디아티 펠로우십 12일차-
츠타야 서점 CEO 마스다 무네아키는 기획을 '고객 가치를 최대화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기획의 가치 역시 고객 가치를 높일 수 있는가에 따라 정해진다며. 그는 모든 기획에서 고객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했다.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했고, 그에게 있어 상품이 거래되는 장소는 매(賣)장이 아니라 매(買)장이었다.
그가 운영하는 츠타야 서점을 예로 들어보자. 츠타야 서점은 편의점처럼 심야까지영업을 한다. 심야 영업을 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에 띌 것이다, 영업 시간을 늘리면 그만큼 이익이 증가할 것이다, 심야에도 영업을 할만큼 열심히 하는 기업 이미지를 얻을 것이다…등등의 생각으로 개시한 전략은 아니다. 이 영업 방침 역시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서 나왔다. 심야에도 영상이나 음악 소프트웨어, 또는 서적을 구매할 수 있으면 편하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그는 고객의 입장에서 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영업적인 어려움도 감수해야한다고 말했다.
그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객, 즉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소비를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고객의 입장에서 소비 사회의 변화를 생각해보자.
우선 소비 사회의 첫 단계, ‘퍼스트 스테이지’는 물건이 부족한 시대다. 이 경우, 고객 입장에서는 상품 자체가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제품의 품질을 따질 여유조차 없었다. 그냥 만들어지는대로 사는 수밖에. 공급자 중심으로 소비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산업 혁명을 거치고, 대량 생산의 시대가 열리면서 ‘세컨드 스테이지’가 등장한다. 이 시대는 예전처럼 만들기만 하면 모두가 사려하는 공급 중심의 시대가 아니다. 이제 사람들에겐 그 상품을 어디서 살지 역시 중요해졌다. 어차피 품질도 상향 평준화 된 마당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서만 유통되는 제품을 사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뷰티 아이템들이 기를 쓰고 올리브영, 왓슨스같은 드럭 스토어에 입점하려는 이유다. 즉, 세컨드 스테이지에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고객 입장에서는 품질보다 그 상품들을 효과적인 플랫폼을 통해 제공하는 존재가 가치있는 공급자라는 말이다.
그리고 현재. 오늘날의 소비 사회는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주위만 둘러봐도 금세 알 수 있듯이, 지금은 플랫폼이 넘쳐난다.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에서도 수많은 플랫폼에서 거래가 성사된다. 사람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소비 활동을 펼친다. 이것이 바로 ‘서드 스테이지’,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시대다. 이미 수많은 플랫폼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단순히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없다.
플랫폼이 넘쳐 나는 서드 스테이지에서 사람들은 ‘큐레이션’을 원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파는 곳이 아니라, 내가 뭘 원하는지 알려주기까지 하는 곳을 필요로 한다. 하루에도 엄청난 양의 제품이 쏟아지는 소위 상품의 홍수 속에서, 어떤 상품이 내게 유익할지 쏙쏙 골라주는 곳 말이다.
그러므로 공급자는 고객이 가치를 느끼게 하고 싶다면 그들에게 유익한 가치를 ‘제안’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플랫폼은 단순히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장소일 뿐, 그 다음으로 고객이 인정해줄 만한 것은 ‘선택하는 기술’이다. 각각의 고객이 좋아할만한 상품을 찾아 주고, 선택해 주고, 제안해 주는 기술. 그것이 서드 스테이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핵심 역량이다.
츠타야 서점의 중심 철학은 고객 가치와 큐레이션이다. 항상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이제는 그 고객들이 서 있는 서드 스테이지에서 그들을 위해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 안에 들어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판매한다. 이게 츠타야 ‘서점’이지만 책 외의 여러가지 제품을 취급하는 이유다.
현재 서점의 매장은 고객을 우선으로 생각해 구성한 것이 아니다. 잡지, 단행본, 문고본 등의 분류는 어디까지나 유통을 하는 쪽의 입장에서 이루어진 분류다. 츠타야 서점은 책의 형태나 장르 등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그 책이 제안하는 내용에 따른 분류로 서점 공간을 재구축했다.
츠타야 서점은 책, 음반, 화장품, 옷, 식기 모두를 함께 판매한다. (리빙책 옆에는 주방용품이 진열되어있다거나) 츠타야 이전에는 레코드 상점과 서점은 전혀 다른 상점이었고, 두 가지 물건을 함께 취급하는 경우도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고객 가치를 완전히 무시한, 유통하는 쪽의 형편만 생각하는 독단적인 구별이다. 예를 들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원작이 궁금할 수 있고, 거기에 나오는 OST가 담긴 앨범을 구매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츠타야 서점은 각각의 제품을 개별적으로 보지 않고, 그 제품이 담고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기준으로 세트로 묶어 판매를 한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잡스 역시 아이폰이라는 물건을 판매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했다. 제품 자체는 단순한 물건에 불과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했을 때 고객들은 열광한다. 그러나 제안 내용을 바탕으로 제품을 분류하는 것은 고난이도의 편집 작업이다. 기계적으로 장르나 가나다순으로 제품을 분류하는 기존의 작업 태도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작업을 필요로 한다. 시간과 공을 매우 들여야하고, 해당 분야의 교양도 요구되니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이 <지적 자본론>인 것도 그 이유이다. 이제 공급자는 단순히 제품을 만들기만 할 것이 아니라, 지적 자본을 축적하여 제품을 통해 고객들에게 어떤 새로운 경험을 제시할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물성이 있는 제품이 아닌 콘텐츠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제공하는 정보는 철저히 독자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하고 그게 어떻게 독자의 삶을 바꿀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