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은 삶의 목적이 아니니까

시리즈: 《퇴근 후 나를 찾는 연습》 중에서

by 생각사이

불 꺼진 사무실, 그 평온한 시작

매일 아침, 아무도 없는 사무실의 불을 켜는 건 여전히 나다.
불 꺼진 공간에 처음 들어서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인다.
아마 학창 시절 보았던 한 드라마의 주인공 때문일 것이다.

그는 늘 남들보다 일찍 출근했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상사들의 신뢰를 얻었다.
첫 직장에서 나도 그렇게 시작했다.
회사 동선을 익히고, 사무실을 정리하고, 선배들의 심부름에도 누구보다 재빠르게 움직였다.

“너도 이제 두 시간 일찍 나와.”

선배의 말 한마디에 나는 더 앞당겨 출근했고, 어느덧 새벽 같은 아침이 나의 루틴이 되었다.
그땐 그게 당연하고 옳은 줄 알았다.
그렇게 나는 회사의 리듬에 내 삶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지쳐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도, 나는 여전히 남들보다 먼저 사무실 문을 연다.
하지만 요즘은 예전과 다르다.
업무를 준비하는 마음이 아닌, 뭔가를 피해 조용히 숨어드는 기분에 가깝다.

언제부터였을까.
일에 대한 열정도, 의미도 점점 사라지고
대신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같은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회사와 내가 한 몸처럼 느껴졌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래된 연인이 조용히 헤어질 준비를 하는 듯한 거리감만이 남았다.


출근의 방향이 달라졌다

이젠 회사에 출근한다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출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일찍 도착한 사무실에서 업무를 준비하는 대신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듣거나, 잠깐 명상을 한다.
그 짧은 시간이 하루 중 가장 나다운 시간이다.

불 꺼진 사무실은 이제 나를 다시 바라보는 장소가 되었고,
회사와 나 사이에 경계를 긋는 연습을 하는 공간이 되었다.

예전에는 효율성, 시간관리, 자기 계발 같은 영상을 보며 나를 채찍질했지만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은 삶의 의미, 쉼, 내면을 돌아보는 영상으로 가득하다.
나도 모르게, 방향이 바뀌고 있었다.


‘회사일 열심히 하지 마라’

얼마 전, 오랜만에 그 선배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나에게 회사란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알려줬던 사람.
아직도 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서 뜻밖의 말을 건넸다.

“회사일 너무 열심히 하지 마. 몸만 망가져.”

말이 끝났을 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한 문장이 너무 깊게 마음에 박혔다.

그 선배도 지쳤던 걸까.
아니면 그 긴 시간 동안, 나도 몰랐던 많은 것들을 겪어낸 걸까.


오늘도 나를 향해 출근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
그 말의 의미를 오래도록 곱씹었다.

그래, 지금의 나는 달라졌다.
회사와 나를 분리하려는 지금의 모습은, 부정이 아닌 성장일지도 모른다.
세월이 변했고, 나도 변한 거다.

더 이상 나는 회사에 나를 증명하려 들지 않는다.
일찍 출근하는 내가 더 이상 '모범'이 아닌
‘회피’를 위한 선택일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 꺼진 사무실이 여전히 좋은 이유는
그곳에서 나는 하루를 덜 휘둘리고
조금 더 나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셨다면, 다음 글에서 다시 인사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