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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군가의마음 Apr 06. 2020

하는 것도 없으면서,

너무나도 당연한 편견

모대형병원 중환자실 간호사입니다.

언제쯤 이런 말을 안 들을 수 있을까? 그런 초라한 심정에 한 자라도 적어 털어내보고자 글을 씁니다.


출처 : 허프포스트 //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그날도 열일하는 나이트였다. 

섬망이 심했다고 하는 담당 환자를 재워놓고 한 숨 돌리며 폭풍 차팅을 마치고 시간당 소변을 확인하며 

전반적인 환자의 바이탈 사인들을 확인하는데 인계받은 타겟과 차이가 좀 있다.

환자가 더이상 흥분해 있지 않고 잠들어 있다는 점 그것이 환자의 혈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환자의 수분량/섭취량 목표치도 이미 너무 오버가 돼 있는 상황이었고 소변양도 점점 줄어들었다. 

주진료과도 간호사의 잘잘못 따지기 좋아하는(?) 과인 탓에 전화기를 집어들어 당직에게 콜. 


"선생님, ICU ***님 지금부터 잘 주무시고 계시긴 한데 혈압 102/56mmHg 로 좀 떨어졌고.."

"아이씨 그런건 좀 봐요 좀 !!!"

"... 혈압이 타겟이랑 좀 안맞긴 해서요, 근데 소변양도 좀 줄었는데 이건 어떻게 하실건지.."

".. 아까 이뇨제 안먹었어요?"

"먹었어요. 9시 30분쯤 들어갔는데 조금 나오다가 이제 또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아 그럼 좀 봐요!!!"

"소변양 시간당 100ml 이상 타겟 보시는 거 아닌가요?'

"그럼 Lasix 를 주던가~ 이런 거로 자꾸 (안들림) 뭐 하는 것도 없으면서 ---"

(전화 끊음)


왜 이 의사가 내게 화를 내는지. 새벽시간에 전화를 해서? 자신이 생각하기엔 별로 중하지 않은 환자인데 '별 거 아닌 것 같은' 것 같다가 새벽시간에 전화를 해서? 

인공호흡기를 하고 파닥파닥 움직이는 환자의 옆에 쉼없이 다가가 안심시키고 어르고 달래고 환자를 씻기고 움직일 때마다 환자의 모니터를 확인하고 뭐라도 불편해보이진 않는지 아파하진 않는지 끊임없이 환자와 소통하는 게 내 일이다. 그런데 그걸 무엇보다도 잘 아는 의사가 나한테 한 그 말. '하는 것도 없으면서.' 

그게 왜 그렇게 그날 밤에 유독 마음이 아프게 꽂혔던 걸까. 새삼스러울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어떤 행동을 했어야 옳았던 걸까. 시간당 소변 100ml 이상을 본다는 내용을 무시하고 전화를 하지 않았어야 했던 걸까? 

아마 나는 그동안 그래도 의사를 간호사들이 자신의 환자를 위해 열심히 종종거리고 있다는 걸 인정해줄 유일한 직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은 순간 그렇게 멍해졌는지 모르겠다. 아군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하는 일을 옆에서 직접 목격하는 직군이면서도 우리를 그렇게 생각했구나. 간호사는 하는 일도 없고 도움도 안된다.


의학적인 지식 차원으로 봤을 때 나는 의사들이 나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공부 양이 우월하다는 것을 안다. 성공을 위해 혹은 환자를 위해 의대에 헌신하고 병원에 헌신하기로 한 그분들을 존중한다. 하지만 시대가 많이 변했다. 더이상 우리나라의 간호사는 옛날의 의사의 진료업무를 그냥 '보조'하던 위치가 아니다. 환자가 '아가씨 이것 좀 가져다 줘, 저것 좀 가져다 줘, 리모콘 좀 가져다 주시오' 하는 식으로 가볍게 대할 위치의 직업군으로써는 더이상 볼 수가 없다는 거다. 우리는 환자의 곁에 24시간 있다. 말 그대로 24시간이다. 간병인처럼 있는 24시간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의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곁에 있다. 환자에게 무언가 나타나는 낌새를 감지해내고 의사가 이 사람의 전반적인 바이탈이 어땠으면 좋겠다 말하면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 함께 애쓴다. 우리는 약을 준다. 운동을 시키고 숨쉬게 하고 위생간호를 제공한다. 우리의 24시간이 그렇다. 우리의 활동은 늘 환자를 기반으로 한다. 의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그렇지만 의사의 경우, 면회를 온 보호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병원에 입원한 뒤에 의사의 얼굴을 몇 번 본 적이 없다.' 말한다. 어쩔 땐 아예 없다고도 말할 때도 있다. 의사가 언제부터 우리가 전산에 올려놓은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처방을 내고 환자를 보는 직업군이 되었나. 이럴지인데 내게 하는 게 없다니.


우리가 이만큼 컸다 혹은 너희가 그렇게 막 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어쩧다 열등감 폭발적인 말들을 하기 이전에 일단 어느정도 두 직군이 상호의존을 하는 만큼 우리가 그들에게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인정은 하고 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하다 못해 전화 예절은 그래도 지키자. 간호사라는 직군이면 의사는 그런 식으로 짜증을 내도 되는걸까? 


의사가 간호사에게 막말. 공공연하게 들리는 말이다. 어쩔 수 없이 갑-을 의 상관관계에 놓여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그 당연한 권리의식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그 출발점이 어디인가. 우리가 그들에게 막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도 의사가 되어야 하나? 간호조무사가 간호사가 되고 간호사가 의사가 되고 의사는 초의사가 되어야 할까?  


네이버 '의사 막말' 검색건. 내 사례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이런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 생각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한 개인의 잘잘못을 떠나 간호사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한다.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하는 생각들.



이건 결국 힘의 문제다. 간호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이런 현상의 기저 원인이 된다. 사회에서 그 직군에 대해 얼마만큼의 이해를 하고 가치를 두느냐가 곧 힘이 된다. 그리고 간호사는 아직도 병원의 아가씨이다. 우리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도 여전히 하는 것 없는 존재들인가보다.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다. 


#간호사 #병원간호사 #의사간호사 #간호사인식개선 #Nurways_With_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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