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었던 감정의 언어

표현의 한계력이란

by 나라 연

화가 나도, 기뻐도, 나는 그 감정을 끝까지 꺼내놓지 않는다.


이건 누구와 있을 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어떤 시선도 닿지 않는 일기장 안에서도 나는 조심스럽다.


감정을 솔직히 적으려다 멈칫하게 되고, 결국 멋을 부린 문장으로 마음을 포장해 버린다.

지금 느끼는 불쾌함이나 질투, 억울함 같은 감정은 조금 더 ‘이해받을 만한’ 이유로 둔갑시키려 애쓴다.


그렇게 솔직하지 못한 일기를 쓴 뒤에는 괜히 마음이 더 부끄럽고, 더 멀어진 기분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는 일기에 욕도 쓰고, 눈물도 흘리며, 그 어떤 가면도 쓰지 않고 적는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왜, 나조차 읽기 불편한 나의 마음을 끝내 감추고 마는 걸까.



‘이렇게 일기만큼도 솔직하지 못하니, 표현력이 막혀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바로 얘기하지 않는 편이다.


잘 된 일도, 먼저 알리고 싶다가도 ‘혹시 나중에 달라지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조금 더 지켜보다가 말을 꺼낸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좋고 싫음이 확실한 편이지만, 그걸 겉으로 바로 드러내는 순간이 줄어들었다.


다 드러냈다가 후회한 경험이 쌓이면서 참는 게 익숙해졌다.

예전에는 혼자 끙끙 앓다가 이미 상황이 끝난 뒤에서야 말을 꺼냈던 적도 많다.


상대는 왜 이제야 말하느냐며 충격을 받았고, 그때마다 ‘이렇게까지 말하지 못했구나’ 싶어 나 자신이 더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건 강의할 때도, 글을 쓸 때도 같았다.
강사로서 수업을 하며 억울하거나 실망한 순간이 있었지만, 그 감정은 ‘강사답지 않다’는 이유로 눌렀다.


수강생들에게는 그들이 듣고 싶은 말, 도움이 될 것 같은 말만 추려 전하려 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나도 지쳤다. 표현하지 못한 감정은 마음 어딘가에 곯아 썩어 들어가는 것처럼 내 안에 쌓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감정들을 억누르면서 소중했던 관계들을 놓친 경험도 많았다.
좀 더 표현했다면 더 가까워질 수 있었을 사람들.
솔직했더라면 더 오래 이어졌을 인연들.



나는 자주 완벽하려 했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마저 ‘흠’처럼 느끼곤 했다.

완벽하지 못한 모습이 드러나는 게 두려웠다.


그런 나에게 사람들은 종종 “너무 완벽하려고 해”라고 말하곤 했다. 노력은 보이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몰아간다고.

그게 결국 ‘감정 표현’이라는 방식으로 드러난 것 같기도 하다.



오늘 아침에도 몇 개의 꿈을 꿨다. 기억나는 것만 세 가지다.
그 꿈속에서의 나는 현실보다 훨씬 감정이 풍부했다.


웃고, 울고, 분노하고, 기뻐하고, 낯설 정도로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그게 어렵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상처 주지 않으려고, 감정을 조심스레 정제하다 보면 말의 온도도, 글의 색도 흐려진다.



그렇다고 완벽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알고는 있지만, ‘실수’에 대한 집착이 쉽게 버려지진 않는다.



다시 바빠질 시기다. 그 안에서도 감정을 좀 더 건강하게 다스리고 싶다.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러우면서도 솔직할 수 있는 균형을 찾아가고 싶다.



감정을 말하는 법을 조금씩 연습하려 한다. 어깨에 힘을 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보내는 용기를 조금씩 배워보려 한다.



그게 결국 나라는 사람을 지키는 일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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