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사람의 궁금
처음 상담을 시작했을 때, 나는 누군가에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대본을 읽는 사람에 가까웠다.
너무 갑작스러운 투입이었다.
미리 준비한 것도, 제대로 배운 것도 없었다. 상담을 전담하던 실장의 업무 실수.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던 주말, 그 자리를 채운 건 알바였던 나였다.
급하게 통화로 상담 진행 방법을 전달받고, 종이에 메모한 문장을 책상 앞에 펼쳐두었다.
그것은 대화가 아닌, 마치 시험을 외우듯 낭독하는 말하기였다.
그게 나의 첫 말하기였다.
그때부터 상담 업무에 조금씩 투입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정직원이 되어 메인 상담을 맡게 되었다.
손에 땀이 나고, 심장이 빠르게 뛰던 내가 말하는 사람의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익숙하다고 생각할 즈음, 첫 강의를 맡게 되었고 그날도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한겨울이었지만 땀이 났고, 준비한 대본을 읽듯 수업을 진행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싫지는 않았다.
어설펐지만, 그 순간만큼은 말하는 나가 있었다. 듣기만 하는 사람이 아닌, 말하는 사람으로서의 나.
원래 나는 말을 잘 못 하고, 주로 듣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나에게 금방 마음을 열었다. 나는 쉽게 조언하지 않았고, 상대의 말을 가로채는 일도 없었기에 편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조심스러움과 ‘괜히 입을 대고 싶지 않다’는 회피가 섞여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사람들은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 불렀다.
그럼에도 반복은 사람을 바꾼다.
형식적인 말이었지만, 말은 말이었고 그 문장을 내 방식으로 말하는 시간이 쌓였다.
어느 순간부터 “이건 이렇게 말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감이 생겼다.
상대의 반응을 읽고 말의 속도나 어조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상담이었지만, 점점 그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 사람의 오늘은 어떤지, 내 말이 도움이 되었는지.
강의를 막 시작했을 무렵, 부모님이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이제는 궁금한 게 생기니?”
예전의 나는 세상에 관심이 없었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고, 결과가 궁금하지도 않았다.
무언가를 듣고도 ‘왜?’라는 질문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 내가 변한 건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말하려면 알아야 했고, 아는 만큼 더 알고 싶어졌다.
질문이 생기고, 그 질문은 생각을 넓혔다.
배운 대로만 말하던 나는 점점 나만의 방식으로 건네는 말을 욕심내기 시작했다.
강의에 수강생의 반응을 반영하고, 질문을 던지며 방향을 조정해보기도 했다.
답을 하던 사람이 질문을 하게 되었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무엇이 더 나을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됐다.
나는 여전히 조용하고 신중한 사람이지만, 성향은 변하지 않아도, 성격은 바뀔 수 있다는 걸 배웠다.
타고난 기질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방향을 조금만 달리 해보면 삶은 훨씬 다양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내 말이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다시 걷게 하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잘 듣는 사람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이야기를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