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가 답이 아니었다, 꾸준함이 나를 만든다
우리는 늘 조급하다.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성과를 내는 것처럼 보이고, 또 누군가는 눈부신 속도로 앞서 나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느릴까?’라는 생각이 따라온다.
하지만 돌아보면, 느림에도 힘이 있었다.
강의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말하기가 능숙하지 않았다. 대본처럼 종이에 적어둔 문장을 보며 버벅거렸고, 스스로도 답답했다.
하지만 천천히 준비하고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만의 말투와 생각으로 술술 풀어내는 내가 있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하루아침에 완성된 게 아니라 매일 조금씩 쓰면서 쌓여온 결과였다.
그렇게 익숙해지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누군가는 한 번 듣고 바로 이해했지만, 나는 같은 상황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이해’라는 감각이 몸에 남았다.
어릴 때도 그랬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해 선생님이 부모님께 짧은 편지를 전해주신 적이 있었다. 부모님은 걱정했지만 그렇다고 나를 다그치지는 않았다.
억지로 학원을 다니게 하거나 “왜 못하냐”라며 몰아세우지 않고, 그저 “어떤 게 재미없었니? 조금만 더 노력해 보자”라며 격려해 주셨다. 하지만 그때 부모님의 걱정 어린 표정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는 어쩐지 묘하게 느린 아이였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흥미가 있는 부분에서는 누구보다 빠른 내가 드러났다.
영어 공부는 못했지만 단어를 손으로 쓰며 외우는 과정은 즐거웠다. 국어 이해력은 낮았지만 글을 읽을 때는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 피아노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입시를 준비하며 손목이 까져 피가 날 정도로 쳤지만, 그만큼 좋아했다.
글쓰기 역시 그랬다. 키보드보다 손으로 쓰는 걸 좋아해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이고 피가 날 정도였다. 글을 잘 썼다는 건 아니지만, 쓰는 그 행위가 좋았다.
이 과정에서 깨달았다. 나는 어딘가 느리고, 반복을 거듭해야만 비로소 응용할 수 있었다는 것.
빠른 속도의 성장은 눈에 띄지만, 내 내면의 변화는 늘 천천히 쌓여갔다. 그리고 그 느림 때문에 조급함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여전히 나만의 속도를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성격이 급하다 보니 뭐든 빨리 하고 싶었지만, 받아들이는 속도가 느리니 스스로 답답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일단 해본다. 무식하게라도, 반복하면서라도. A4 용지를 수십 장씩 채워 쓰며 이해해야만 ‘진짜 내 것’이 되는 느낌이 드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때로는 이런 나 자신이 모자란 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만약 그런 생각에 매몰됐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다. 느리게 받아들이는 만큼 더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도 강했고, 그것이 오히려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속도를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나보다 잘난 사람이 앞에 있어도 억지로 그 속도에 맞추지 않는다.
그저 한 발 멈춘다. 잘난 사람이 잠시 쉬어갈 때, 나는 다시 한 발 나아가면 된다. 그들이 빛을 발할 때, 나는 부러움 대신 한 걸음 뒤에서 도와주며 나의 것을 반복하고 또 쌓아가려 한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나만의 리듬이다.
그 리듬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느냐, 그것이 결국 성장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