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영화로 따지자면 이름조차 없는 ‘행인 1’ 같은 느낌.
특별한 장면도, 주목받는 역할도 없이 그저 스쳐가는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만의 무언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남들은 각자의 재능을 찾아내고 성과를 내는 것 같은데, 나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태어났으니 살아가는 것이었고, 특별히 무언가를 해서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도 없이 현재에만 충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20대 중반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이건 내가 조금 잘하는 것 같네?”
처음에는 나 스스로도 놀랐다. ‘나도 무언가를 잘할 수 있구나’라는 낯선 감정이 올라왔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일을 통해 주변에서 칭찬이 이어졌다.
예전에도 칭찬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늘 스스로를 낮추며 살았기에 어떤 칭찬도 곧바로 거부했다. 부모님조차 ‘왜 칭찬을 거부하냐’며 의아해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잘하는 걸 찾고 난 후 받은 칭찬은 내 마음 깊숙이 들어왔고, 내 안에서 작은 불빛이 켜지는 듯한 감각을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칭찬은 곧 당연한 것이 되었다.
“이 정도는 해내야 한다.”
“이 정도는 버텨야 한다.”
스스로를 압박하며 완벽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잘하는 일이 오히려 나를 지치게 만들기도 했다.
타인의 기대와 내 욕심 사이에서 더 잘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갇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 잘하는 일이 나에게 ‘좋아하는 일’로 바뀌어 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며 애정이 쌓이자 힘들어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잘하기 때문에 버틴 게 아니라, 좋아하기 때문에 다시 붙잡게 된 것이다. 잘하는 게 좋아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찾아온 이 연결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나는 타인의 칭찬으로 잘하는 것을 발견했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쌓이면서 비로소 나를 지탱하는 힘이 생겼다.
잘하는 건 남들이 알려줬지만, 좋아하는 건 나 스스로를 지켜주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아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