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던 날이다.
어두운 현관에서 더듬거리며 불을 켜자, 아침에 준비하고 나갔던 흔적이 그대로였다.
하반기에는 입시부터 고졸전형까지 면접이 쏟아지는 시기다.
좀 더 열심히 해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1시간 수업을 위해 1시간 30분 거리를 두 번 갈아타며 이동하곤 했다.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힘들었지만 ‘겨우 이걸로 힘들다고 말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더 컸다.
집은 엉망이 되었고, 작년에 시작했던 사업장의 사무실 정리까지 겹치면서 마음에 여유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일찍 자보기도 하고, 그날의 일을 그날 끝내기도 했다.
하지만 외면하고 싶던 일들의 게으름이 조금씩 기어와 내 어깨에 올라타는 느낌이 들었다. 혼자 해결할 일이 많아질수록 더 단단해져야 하는데, 어느 순간 지쳐 작은 아이처럼 떼를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실질적인 도움보다 감정적인 도움이 더 필요했던 때, 부모님께 SOS를 보내듯 연락한 적이 적지 않다.
평소 연락도 잘 하지 않던 ‘장녀’라는 사람은 힘들어지니 결국 의지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그 덕분에 ‘혼자’라는 두려움이 조금 누그러지고, 다음 날을 어떻게든 버텨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푹 쉬면 괜찮아진다고 말하지만 정작 나는 ‘어떻게 쉬어야 쉬는 건지’조차 잘 모르겠었다.
그동안 삶을 나의 발전을 위해 써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라 게으른 사람이 스스로를 움직여 발전시키는 게 어색했다.
예전에는 누워 있으면 그게 쉼이라고 믿었는데 지금은 누워 있어도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걸까?’ ‘왜 쉬는 느낌이 들지 않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스스로와 마주 앉아본 적이 많지 않아서였을까.
늘 잘 쉬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바쁜 틈 사이에서 겨우 무너지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최근 취업 컨설팅을 하면서, 생애 첫 면접을 앞둔 학생들이 내 앞에서 무너져 울곤 한다.
“두렵다”, “못 하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들의 말 앞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흔들렸다. 나 역시 그렇게 무너져본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였다.
“무너져도 괜찮아. 차라리 울어버리는 게 낫다.”
라떼는~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그 대신 내 ‘쪽팔렸던 못 하겠단 감정’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그러면 그들은 울다가도 피식 웃어버리거나 “선생님도 그랬다고요?” 하고 놀라기도 한다.
아마 그들에게 나는 강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강함을 만든 건 내가 겪어온 수많은 실패, 두려움, 그리고 겁먹음이었다.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려울 때가 있다. 그럼에도 일단 나아가보면 언젠가는 그 시간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거라 믿는다.
안 해본 것보다 해본 것들이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