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 나는 왜 미안해질까

by 나라 연

드디어 사무실을 정리했다.
휑해진 공간을 보며 ‘드디어’라는 단어가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사무실의 물건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 힘겹게 짐을 뺐지만,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몇 시간 동안 연락이 끊기더니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겠다는 대화를 나눠야 했다.



그 와중에 화상 수업 시간이 겹쳐, 뛰는 심장 소리를 애써 무시한 채 웃으며 수업을 이어갔다.
떨리는 손이 타자를 칠 때마다 오타가 났지만, 당장의 현실이 우선이었다.



그 일로 예상했던 일정보다 일찍 부모님이 도착해 필요한 것만 챙겨 가시고 다시 잘 가라는 인사를 하려던 순간이었다. 부모님의 차가 천천히 멀어지다 멈추더니, 창문이 열렸다.


“표정이 왜 그래?”



그 한마디에 감출 수 없던 울음이 터졌다. 눈물이 뺨을 타고 빠르게 흘러내렸고, 그 모습을 본 아빠도 같이 울어버렸다.



30대가 되어도 부모님 앞에서는 아이가 된다. 혼자 살아내려고 애쓰던 마음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책임감도 그 순간만큼은 모두 사라지고 투정 부리고 싶은 아이로 돌아가 있었다.



뒤늦게 생각해 보니 부모님 차 앞에서 길 한복판에 서서 울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은 웃기기도 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감사함과 ‘굳이 안 하셔도 될 일을 나 때문에 하신 건 아닐까’ 하는 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작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사업을 하지 말라고 말리고 싶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돈은 돈대로 날렸고, 오히려 돈을 더 들여 사무실을 정리했다. 그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던 순간들이 많았는데 며칠 동안은 이상하리만큼 푹 잘 잤다.



이유 없이 몸이 흔들리듯 찾아오던 현기증도 잦아들었다. 보증금을 받기까지 끝난 것은 아니지만 마음의 큰 짐 하나가 내려놓아진 느낌이었다.



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순간, 미안함이 사람을 더 많이 울게 만들까. 힘들어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던 날들이 부모님의 딱 한마디에 무너지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신기했다. 그만큼 위로가 필요했고,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했지만 말로 꺼내지 못한 채 버티고 있었던 것 같다.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힘듦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의 고민을 들으면서도 ‘나도 힘들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지쳐 있었던 거다.


누군가에게 투정하듯 털어놓고 싶으면서도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무게가 되진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배려가 오히려 나를 더 옥죄고 있었다.



사무실 일이 정리되려는 순간 다른 업무에서도 문제가 터졌다. 대처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멍해졌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그때 우연히 서점에서 보았던 책의 문장이 생각났다.



‘일단 하자.’


잘하려는 욕심보다, 실패를 두려워 멈춰버리는 마음보다 일단 해보고 난 뒤의 감정에 귀 기울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말이 그날따라 이상하게 울렸다. 늘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살아왔지만 막상 해보는 순간 찾아오는 두려움에 몸서리치는 나를 떠올리면 조금 웃기기도 했다.



내 표정 하나로 감정을 알아채는 부모님을 보며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책하지 말라는 말, 짧았던 사업 기간 동안 어떻게든 월세를 감당했다며 칭찬해 주시는 말에 울면서 또 웃었다.



의지한다는 건 혼자 해내지 못하는 약함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도 용기였고 도움을 통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다시 나아가기 위해, 나를 확장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시도해보려 한다.


일단 해보자.


그 생각을 붙들고 불안의 늪에 빠지지 않고 남은 한 달도 잘 건너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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