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많은얼룩말

내게는 닉네임이 필요했다.

by 생각많은얼룩말

2019년 10월 말, 오랜만에 다시 글을 써보자고 나의 오래된 블로그를 수시로 들락날락했다. 마음먹고 글을 써보자니 아무래도 내게 필명이 하나쯤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특징이 잘 드러나면 좋을 것 같아.'

'난 어떤 사람이지?'


필명 하나에 지난 과거를 훑어보고, 나의 일상을 뒤적였다.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난 '생각이 많은 사람'인 듯했다.


그런데 그렇게 나의 특징을 알아냈다고 하더라도 닉네임이라 부를만한 딱히 좋은 이름은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의 방에서


한창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맞은편에 앉아 있던 과장님이 말을 걸었다.


"얼룩말 어때요?"

"네? 얼룩말이요?"


내 블로그 카테고리 박스 위에 살포시 얹어져 있는 작은 얼룩말을 보고 하신 말씀이었다.


'얼룩말이라...'


왜 그랬을까. 내게 더 이상의 고민은 필요 없어 보였다. 그렇게 나의 필명은 생각많은얼룩말이 되었다.


그런데 얼룩말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이 얼룩말이라는 닉네임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나는 얼룩말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서 서둘러 얼룩말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검색을 시작했다.


"서식지는 사바나,... 시각과 후각이 예민하다."


나도 시각, 후각, 청각이 예민하다고 괜스레 안심이 되는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웬일인지 내 블로그 프로필 사진 속 피아노도, 그날 먹은 도넛도 모두 얼룩말 같아 보였다.


그날 먹었던 얼룩무늬 도넛


얼룩말이 그냥 귀여웠을 뿐이다.

아니, 나는 뭐든 걸 다 끼워 맞춰서라도 그냥 글이 다시 쓰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많은얼룩말의

<사바나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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