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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Jul 01. 2021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길을 찾고 있는 모든 이에게, Happy New Year

턱턱, 착착, 쓰윽-


"아, 이게 여기에 있었구나, "라든가

"이걸 굳이 가지고 있었다니!" 등의 혼잣말들이 내 서랍 구석진 곳에서부터 정리할 물건들을 차례로 불러내고 있었다.


챙겨야 할 짐이 많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의 편의를 돕는 물건들이 생각보다 다양하게 널려 있었다는 걸 이렇게 짐 정리를 하면서야 깨닫게 되었다.


'음, 그래도 4년 7개월 치고는 꽤 간소하군.'


해오던 일들도, 내가 쓰던 물건들도 하나 둘 정리하다 보니 지난 4년 7개월간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얼 대리님, 저 지금 컵 씻으러 갈 건데 혹시 씻을 컵 있으면 주세요."


여느 때와 같이 라 과장님이 퇴근을 준비하며 내게 말을 건넸다.


"아, 라 과장님 저 씻을 컵이 없어요."

"아, 맞다. 짐을 다 챙겼죠."


목소리가 시무룩해진다는 건 딱 이런 경우에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1년 2개월쯤 지났으려나. 새로운 길을 찾아보겠다고 나섰다가 막힌 담벼락을 마주해야 했던 때 말이다. 그때를 떠올려 보니 지나온 1년 2개월이 덤으로 주어진 선물같이 느껴졌다.


"눈물이 핑 돌았어요."


라 과장님은 눈물이 쏟아져 나오지 않도록 속눈썹이 방파제의 역할을 잘 감당했다는 의미의 말도 덧붙였다.


"저는 아까 짐을 싸는데 '이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맞아요. 맞는 일이에요.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

"제가 그래도 기쁜 건 여기 분들이 얼 대리님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저는 그걸로 진짜 만족하고 감사해요."


그래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라쿤 과장님과의 2년 5개월 + 4년 7개월간 유지했던 공식적 일상 파트너 포지션을 정리하는 것이 그 어떤 일보다도 제일 힘들고 슬펐지만,


"그래도 우리는 또 볼 거잖아요."라는 라 과장님의 당연한 말 한마디로 나는 금세 위로를 받았다.



어쩌면 우리는 보물지도 같은 것을 늘 들여다보며 길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지도는 마법의 지도라 '시간'이라는 열쇠가 없이는 그 너머를 전혀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하루만큼의 길이 열리면 그냥 곧장 한 발을 내딛는 것 말고는 달리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어떤 시간에 다다를 때까지. 아무리 애를 태우며 힘을 쓰고 머리를 써도 찾고자 하는 그 길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가끔은 내가 뭘 찾고 있는지도 헷갈렸지만 말이다.)


제자리를 빙빙 돌기도 하고 뒤로 돌아가 보기도 하고 때론 옆을 기웃거리기도 해 봤지만, 결국 나는 보이지 않는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 말곤 별다른 방도를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나의 몸부림이 쓸모없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몸부림치지 않았다면 내 삶은 간을 전혀 하지 않은 두부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Time's Up.


기다리고 있던, 아무도 이때라고 예상치 못했던 그 시간이 왔고 지도가 열렸다. 뒤를 돌아봤다. 걸어온 시간들이 나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다 되었어."


나의 마음도, 모든 일들도 순조롭게 정리되는 것을 보며 정말 그때가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걸었던 길과는 다른 새로운 한 길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물론 이 새로운 길이 어디에서 끝나는지는 오늘의 나는 역시 볼 수 없었지만 말이다.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이나 당장 폭죽을 터뜨려야겠다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담담히 새로운 길로 한 발을 내디뎠다.


마침 한 해가 저물었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


나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오늘도 주어진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이에게.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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