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롱잔치'하면 떠오르는 몇 장면이 있다. 맨 먼저 떠오르는 건 친구들과 함께 부채춤을 연습하던 장소. 제법 쌀쌀해진 날씨 탓에 연습하던 그날 발이 꽤나 시렸던 것 같다. 재롱잔치 당일, 고운 한복을 입고 친구들과 열을 맞춰 부채를 흔들며 무대 위를 사뿐사뿐 그리고 아주 바삐 걸어 다녔던 찰나의 기억이 두 번째로 떠오른다. 엄마가 해주었는지, 선생님이 해주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살짝 그려진 눈썹과 빨개진 입술이 난 참 마음에 들었다. 그때 내 나이는 7세였다.
2년 후, 동생의 재롱잔치 날. 내가 입었던 한복과는 전혀 다르게 동생은 반짝거리는 은빛 몸통에 빨강, 노랑, 초록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를 입고 캉캉 춤을 추었다. 춤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드레스가 2년 전 내가 입었던 한복보다 예뻐 보여 괜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역시나 동생의 얼굴에도 눈썹 펜슬과 립스틱이 지나간 흔적이 남아있었는데, 그것도 어찌나 예뻐 보였던지. 이것이 전부다. 나의 '재롱잔치'에 대한 기억 말이다.
시간이 훌쩍 지나 나는 어느덧 학부모가 되었다. 오랜만에 '재롱잔치'라는 단어를 듣고 내 입으로 내뱉었을 땐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노란씨앗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재롱잔치 소식을 처음 전해 들었던 순간에 나는, '과연 두 돌도 되지 않은 아기가 무대 위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뿐, '조이의 인생 첫 무대'를 상상해 보니 두근거리고 설레어서 자꾸만 날짜를 확인하게 되었다.
노란씨앗반 아이들은 '통통통통 털보영감님'과 '모찌송' 두 곡에 맞춰 율동을 한다고 하였다. '통통통통'은 조이가 이미 집에서도 율동을 많이 보여줬던 곡이었지만, '모찌송'은 우리 부부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노래였다. 노래를 찾아서 들려주면 조이가 자동재생하듯 율동을 보여주겠지만, 재롱잔치 날 제대로 보고 싶어서 부러 시켜보지 않았다.
남편은 나와 반대였다. 남편이 기억하는 재롱잔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재롱잔치라고 했다. 머리에 흰 띠를 둘러야 했고, 상의로 파란 천 같은 것을 X자로 둘렀다고 했다. 그렇게 입기 싫은 의상을 입은 채로 퀸의 <We Will Rock You>를 부르며 의자로 바닥을 쿵쿵 찍는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오늘의 남편이 또 새삼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거기에 남편은 가지고 있는 성향으로 인해 원체 아이를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자신의 일이 아니라면 다른 일에 크게 마음 쓰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니 어린이집에서 재롱잔치를 한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남편은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의 반응이라면, 고작 '그래, 재롱잔치를 할 때가 되었구나.' 정도랄까.
조이의 재롱잔치 날에 다다르게 되었다. 남편과 함께 작은 인형꽃다발 하나 들고 부대 내에 있는 문화회관으로 향했다. 별빛제라는 이름의 재롱잔치 플래카드가 무대 위 높게 걸려있었고, 화려한 무대 세팅은 학부모들의 마음을 더욱더 들뜨게 만들었다. 꽃다발과 야광봉, 응원피켓을 들고 있는 학부모들의 표정은 모두 비슷한 모양이었다.
첫 번째 순서는 7세 반 아이들의 사물놀이였다. 7세 아이들의 능력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 길러보지 않아 알 수 없던 터. 곧 연주가 시작되고 남편과 나는 장구와 북과 꽹과리, 징을 치는 아이들의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각자의 역할을 너무나 능숙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니 말이다. 이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연습했을까, 하는 생각에 기특한 마음이 가득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아이들 중 우리 이웃집 아이가 있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5분이 넘도록 진행된 7세 반 아이들의 연주를 보고 들으며 남편은 10번 이상 울컥했다고 했다.
두 번째 순서가 바로 3세 노란씨앗반의 무대였다. 4명의 쪼꼬미들이 무대에 올라오기까지 1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그래도 어린이집 막내들의 순서라고, 모두 기쁜 마음으로 아이들이 무대 위로 올라오기를 기다렸고, 틈을 메꾸기 위한 사회자의 센스는 빛을 발하였다.
4명의 쪼꼬미들이 무대 위로 입장했다. 아이들의 앙증맞고 귀여운 모습에 관객 모두 환호했다. 의상도 톡톡히 한몫했다. 7세 반 직후에 3세 반 아이들이 등장을 하니, 그 효과는 아주 극대화되었다. 몸집부터 차이가 매우 컸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무대까지 아주 넓으니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작았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니 문화회관 관객석에 앉은 모든 학부모들의 눈에 3세 반 아이들은 마치 움직이는 귀여운 인형처럼 보였을 것이다.
재롱잔치에서 우는 아이 총량의 법칙이 존재했던가? 누군가는 꼭 울어야 제맛인 막내들의 무대가 이날도 어김없이 펼쳐졌다. 노래가 시작되자 가운데 서 있던 두 아이가 엄마를 찾으며 엉엉 울어버렸고, 양 끝에 서 있던 두 아이는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조이는 과연 어느 쪽이었을까? 조이는 후자였다. 분명 긴장된 표정으로 입장하긴 했으나, 노래가 시작되자 담담한 표정으로 음악에 몸을 맡겼다. 세상에, 너는 과연 누굴 닮은 것이란 말이냐! 이 문제는 차치하고, 그저 무대 위에 서있는 저 조그마한 아이가 우리의 아이인 것만으로도 우리는 마음이 벅찼다. 조그마한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앙증맞은 율동을 하니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웠다. 휴대폰 카메라로 영상 찍으랴 내 눈으로 직접 아이의 모습을 담으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말이다.
3분 30초도 되지 않는 짧은 무대였지만, 딸아이의 인생 첫 무대에 대한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이의 몸짓 하나하나가 너무 작고 귀엽고 소중했다. 아이의 움직임에 따라 웃음이 절로 쏟아져 나옴과 동시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도 했다. 언제 이만큼 자라 무대 위에 섰나 싶어서 말이다. 저 작은 아이에게 주어진 자그마한 일을 앙증맞게 해냈다는 것이 굉장히 감동스러워서 말이다.
이제 누군가 나에게 '재롱잔치'에 관해 말문을 연다면, 나는 조이의 첫 재롱잔치를 대번 떠올릴 것이다. 재롱잔치에 대한 기억이 새롭게 업데이트되어 버린 셈이다. 이전 기억이 지워지는 건 아니지만, 최신 버전의 재롱잔치 기억 파일이 생겼달까.
조이는 기억 못 하겠지만, 우리 부부는 딸아이의 첫 재롱잔치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그리고 훗날 훌쩍 커버린 조이에게, "너는 기억 못 하겠지만, "이라고 시작하며 그날 그 시간에 조이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는지를 몇 번이고 설명하고 또 설명할지도 모르겠다.
아, 재롱잔치 기억 파일이 매년 업데이트된다는 건 감안해야겠다. 조이가 자라면 자랄수록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조이의 성향과 기질에 따라 재롱잔치 관전 포인트가 매년 달라질지도 모르고. 내년엔 조이의 무대를 보고, 아빠를 더 닮았는지 엄마를 더 닮았는지 이야기해 볼 수 있을까? 매년 다가올 재롱잔치가 벌써부터 설레고 기대되는 오늘이다. 내년 이맘때쯤의 조이가 얼마나 커있을지 상상하면서. 나의 성장을 무대 밖에서 지켜보았을, 나의 엄마와 아빠의 마음도 이러했을까, 상상해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