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극강의 고통 끝자락에 서있었다. 살면서 이런 통증은 겪어본 적이 없었다. "엄마도 그랬던 것처럼 너도 조이를 금방 낳을 수 있을 거야."라던 엄마의 말처럼 내 몸속 아기집의 문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열려버렸다. 문제는 조이가 방을 뺄 생각이 없었다는 데 있었다. 유도분만을 위한 촉진제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의문을 가질 여유조차 없었다. 아기집 문이 활짝 열리면 극강의 고통이 아주 짧은 주기로 밀어닥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던 모든 이들을 두고 저 세상으로 먼저 가야겠다는 생각이 온몸을 가득 채울 정도에 다다랐다. 그래도 이렇게 죽을 순 없었다. 내 옆에는, 내가 고통의 터널을 온전히 빠져나올 수 있도록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는, 고통의 터널 끝에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가능성도 그 자리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한시도 자리를 뜰 수 없던,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에게 아이만 맡겨둔 채로 이 세상을 떠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안간힘을 썼다. 허나 이조차도 아무 소용없는 듯했다. 이 고통의 시간도 반드시 끝날 것이라는 굳센 믿음 하나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곧 응급 수술에 들어갔다. 나도 태아도 위험하다는 산부인과 원장님의 판단 하에 우리 모두 동의하여 결정된 일이었다. 수술실 천장을 바라본 채 마취과 선생님이 도착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그 몇 분이 나에겐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이 고통으로부터 나를 건져달라는 울부짖음이 몇 차례 반복되고서야 온몸을 휘감고 있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응애-" 하는 울음소리에 눈물이 퍽 터지고야 말았다.
조금 전까지 흘리던 눈물과는 전혀 다른 색의 눈물이 흘렀다. 이 세상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는 내 몸속에 또 다른 생명이 실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걸 증명하는 듯했다. 생명을 가진 존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존엄성이 내 몸의 뼛속까지 울리게 만들었다. 열 달 동안 내가 짊어졌던 그 모든 피로와 힘겨움에 8시간의 진통을 더하여도 '출산'이라는 일이 진실로 유익함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열 달 동안 뱃속에 품고 있던 조이를 눈으로 확인하고 나는 바로 깊은 잠에 들었다. 마취에서 깨어났을 땐, 간호사 선생님 두 분이 내가 누워있는 침대를 병실로 옮기고 계셨다. 병실에 도착하였으나 하혈을 너무 많이 하고 있는 터라 다시 수술실로 가야 한다고 하였다. 경황없는 상황 속에서도 눈으로 남편을 찾았다. 다행히도 남편을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다. 남편도 경황없기는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모든 처치 후 병실로 돌아왔을 때에야 '이제야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이불처럼 나를 덮었다. 그렇게 출산의 날이 지나갔다.
다음날이 돼서야 제정신으로 조이를 안아볼 수 있었다. 그때 조이에게서 느꼈던 낯섦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분명 열 달 동안 내 뱃속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 눈앞에 있는 갓난아기의 생김새가, 크기가, 무게가, 움직임이 너무나도 낯설어서 길을 잘못 든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어젯밤 11시를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남편과 한참 수다를 떨고 난 후 서로 잘 자라며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보통 잠을 자다가 뒤척일 때 내는 정도의 낑낑거림이 아니었다. 이 소리는 분명 악몽을 꾸고는 무서워서 지르는 비명에 가까웠다. 침대에서 튀어나가 조이방 문을 열었다.
침대 가드를 열고 들어가자 엉엉 울고 있던 조이가 곧바로 내 품에 안겼다. 조이를 꼭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무서운 꿈을 꿨냐고 물으며, 낮에 함께 갔던 쇼핑몰에서 조이가 보고 겁낸 공룡 모형과 표범 얼굴 로고를 떠올려봤다. 조이가 말이라도 할 줄 알면, 그중 어느 놈이 감히 우리 딸 꿈속에 찾아왔느냐고 해줄 텐데 말이다.
그래도 조이는 엄마 품에서 금방 안정을 되찾았다. 조이를 침대에 다시 눕히고 배를 살살 토닥여줬다. 다행히 깊은 잠 블랙홀에서 멀리 빠져나오진 않은 터라 조이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가만히 아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잠든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닳아지도록 보고 보고 또 봤다. 조이가 1년 후면 어떤 모습일까, 2년 후면, 5년 후면, 10년 후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면서.
매일 보는 이 친숙한 존재를 처음엔 얼마나 낯설어했는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날이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조이를 처음 만난 그날 말이다.
조이가 울면서 잠에서 깨 다시 잠들기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나는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 우리가 걸어온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걸어갈 시간들도 그려봤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첫 숨을 내쉬며 마구 울어댔던 아기가 이제는 울 때마다 "엄마"라고 외친다. 그 외침의 색깔이 귀로 구별되는 건 내가 조이의 엄마기 때문이겠지. 우리가 함께 살아온 시간만큼 우리 사이에 애정이 가득 쌓였다는 걸 느끼는 밤이었다. 수도 없이 듣게 될 나의 '엄마'라는 이름이 참 마음에 드는 밤이었다. 내가 조이의 엄마라는 사실에 참 행복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