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의 월령이 12개월에 다다르던 어느 주말의 오후였다. 우리 부부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를 바라며 조이를 데리고 가까운 쇼핑몰에 놀러 갔다. 저녁시간이 가까이 온지라 우리는 챙겨 온 조이의 이유식을 유아휴게실 전자레인지로 따듯하게 데웠다.
조이를 아기의자에 앉힌 후 우리도 조이를 마주 보고 앉았다. 그리곤 이유식을 호호 불어 조이 입에 쏙쏙 넣어주었다. 우리 왼편으론 조이보다 훨씬 커 보이는 여자아이와 아이의 부모님이 앉아있었다. 그 아이는 엄마아빠와 함께 프레즐을 즐겁게 먹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조이보다 작거나 조이만한 아기들을 보면 몇 개월 정도 되었을지 가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이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개월 수의 아이들을 보면 우리는 그 월령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아이가 몇 개월인가요?"나는 언제쯤 조이가 프레즐을 먹을 수 있을지 알고 싶어 입을 열었다. 아이가 생긴 후로 얻게 되는 많은 유익 중 한 가지를 예로 들어보자면, 난생처음 만난 사람과 스몰 토크를 할 수 있게 되는 용기와 여유로운 마음이랄까. 서로에게 아이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을 걸고, 또 기꺼이 대답을 하니 말이다.
"이제 21개월이에요."
21개월이란 말을 듣자마자, 우리의 마음은 부러움과 소망의 빛으로 일렁였다. 그 아이에게도 조이만한 시절이 있었을 테고, 조이에게도 언젠가 21개월이란 월령이 찾아올 테니 말이다. 우리 부부는 그 아이를 한 번, 조이를 한 번 번갈아 쳐다보았다.
"9개월 뒤면 조이도 우리랑 같이 간식을 먹을 수 있게 되는 거야." 남편의 말 한마디에 우리는 벌써 9개월 뒤의 우리 모습을 본 것만 같았다.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은 순간이었다.
잠시 후 우리 오른편으로 한 가족이 들어와 앉았다. 이번엔 조이보다 작은 아기가 있었다. 그 아기의 부모도 전자레인지로 이유식을 데워 아기를 먹이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생각보다 아기가 이유식을 잘 받아먹지 않는지, 옆에서 넙죽넙죽 잘 받아먹고 있는 조이를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또다시 입을 열었다.
"아이가 몇 개월이에요?"
"얘는 8개월이에요. (그쪽 아기는)몇 개월이에요?"
"저희 애는 이제 곧 돌이에요."
"아이가 잘 먹네요. 저희 애는 잘 안 먹어요."
8개월 아기의 부모 마음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미 우리가 지나온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속상한 낯빛을 보이자 나는 서둘러 위로의 말을 꺼냈다.
"잘 안 먹는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얘도 그럴 때가 있었거든요. 하루 이틀 잘 안 먹는다고 해도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8개월 아기의 부모는 곧바로 미소를 되찾았다. 자신들의 아기도 곧 돌을 맞이한다는 아기처럼 잘 먹는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을 품은 채로. 그리고 아기가 건강하게 쑥쑥 잘 자라서 눈앞에 보이는 아기만큼 자라 있을 날이 곧 오리라는 기대를 잔뜩 끌어안은 채로 말이다.
작은 유아휴게실 안에서 우리가 사소하게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전부 기억나지는 않지만, 세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그날의 유아휴게실은 더할 나위 없이 따듯하고 정겨웠다. 스쳐 지나가던 만남이라 얼굴도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서로에게 기대와 소망과 위로를 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로부터 9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인생살이 21개월 차, 조이는 인지 능력과 더불어 언어 능력의 한계치를 매일 갱신해 나가는 중이다. 물론 우리와 함께 프레즐도 먹어봤고 말이다. 제일 심심한 맛으로 골라 함께 먹었지만, 고대하던 그날이 왔다는 사실에 난 퍽 감격했다.
요즘도 우리 부부는 조이보다 월령이 높은 아이들을 볼 때면 우리 아이도 언젠가 저렇게 말을 하고, 저렇게 몸을 움직이고, 저렇게 키가 클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그날이 오면 지금 우리가 겪는 어떠한 수고스러움은 덜어지기도 하겠지만, 반면 난생처음 겪어보는 어려움도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그날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건 시간이 지나는 만큼 우리의 관계가 더욱 깊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우리도 성장할 테고, 그만큼 우리의 하루하루가 더욱 풍성해질 테지.
2주 전에 있었던 일이다. 주말 점심에 남편은 식사를 한창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세탁 종료를 알리는 세탁기 알림음에 곧장 다용도실로 향했다. 우리 집21개월 차 신입사원(?)은 지금 당장 자신과 함께 놀아줄 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리곤 엄마를 쫓아 다용도실로 들어왔다. (그녀의 상황판단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바이다.)
늘 있는 일이지만, 다용도실에 있는 양파며 마늘이며 쓰레기통이며 여러 잡동사니를 손대지 못하게 할 요량으로 조이에게 어서 이곳에서 나갈 것을 요청했다. 21개월 아기가 엄마의 요청에 쉬이 순응할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그리하여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조이에게 다른 제안을 던졌다.
"조이야, 이 빨래망을 빨래 건조대에 널고 올래?"
이 한 문장에 얼마나 깊이 있는 전략이 숨어있는지 짐작할 수 있겠는가? 먼저, 조이에게 '빨래망'을 보여주며 1차로 주목을 끌었다. 만지지 말아야 할 것들로부터 조이의 시선을 거둬내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2차로 '빨래건조대'를 언급함으로 빨래 건조대가 있는 곳으로 조이의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이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전제 조건이 필요했다. 바로 '빨래망'에 대한 조이의 흥미와 '빨래 건조대'라는 단어가 무얼 지칭하는지 아는 조이의 인지 능력 말이다.
긴장되는 찰나에 조이가 빨래망을 내게서 받아 들었다. 그리곤 곧장 도도도 걸음을 옮겨 다용도실에서 빠져나갔다. 잠시 후 또다시 도도도 달려오는 조이의 발소리가 들렸다. 다용도실로 돌아온 조이는 내게 이렇게 말을 했다.
"또!"
그렇다. 조이는 내게 또 다른 빨래망을 달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이에게 또 다른 빨래망을 건네며 이렇게 말을 했다.
"조이야, 이것도 빨래 건조대에 널고 와."
혹시라도 조이가 '빨래 건조대'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한 음절 한 음절을 꾹꾹 눌러 발음했는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이 과정을 3번 반복하고 나니, 세탁기에 있던 빨래가 모두 건조기에 들어갔다.
"또!"라고 세 번째 말하는 조이에게, "조이야, 이제 다 끝났어! 우리 조이가 빨래망을 잘 널어놨는지 한번 가서 볼까?"라고 말했다.
조이와 함께 다용도실에서 나와 빨래 건조대가 있는 방으로 갔다. 세상에나, 빨래망 3개가 빨래 건조대 위에 턱 하니 올려져 있는 게 아닌가!
물론 조이에겐 빨래망을 착착 펼쳐 널 수 있는 능력은 아직 없지만, '빨래 건조대 위에 빨래망을 올려놓으면 될 것'이라는 그녀의 이해력에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번도 직접적으로 '빨래 건조대'라는 단어를 가르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빨래 건조대'를 알고 있다는 사실과 빨래망과 빨래 건조대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엄마 아빠의 대화 속에서 오갔던 '빨래 건조대'라는 단어, 엄마가 늘 세탁기에서 빨래망을 꺼내 빨래 건조대에 널었던 행동이 모두 조이에게 흡수되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한 그날은 내 마음과 머릿속에서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어쩌면 이렇게 똘똘하냐며, 나는 조이의 볼에 뽀뽀를 사정없이 쏟아붓고, 남편과 함께 이 신기한 광경에 기뻐하고 즐거워했다.엄마 아빠의 칭찬 세례에 조이는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고.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시간이 한참 흐른 어느날에도 우리가 이 순간을 꼭 기억하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조이가 성장하게 되면, 조이가 빨래 건조대 위에 빨래망을 올려놓는 행위가 너무나 익숙해지고 당연해지는 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조이는 우리와 함께 일상을 살아가며 더 많은 것을 알아가고 배울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학교에서 엄마 아빠가 아닌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얻게 되는 수많은 지식과 정보로 머리가 무거워지는 날도 올 테고.
그런날이 왔을 때, 부모인 우리가 조이에게 "아직 이것도 모르니?"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지 않기를 바란다. 아직 발음도 할 줄 모르는 '빨래 건조대'를 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뻐해주던 때가 있었음을 기억하며 말이다.
시험 점수로 쉽사리 조이의 세계를 파악했다고 자만하지 않기를 바라며. 늘 조이가 서있는 지식의 한계선에서 여유 있는 마음으로 우리가 함께 서있어 주기를.조이가 한 발씩 내딛으며 자신의 한계치를 올려가는 성취감과 기쁨을 우리와 향유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부모인 우리도 성장하기를 쉬지 않으므로 우리 또한 조이에게 성장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기대해 본다. 조이의 내일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