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도 보고, 하원 후부터 밤잠이 드는 7시 30분에서 8시까지 징하게 얼굴을 봐놓고도(주말에는 하루종일 보고서도), 잠자리에 들기 전 조이를 보고 싶어서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본다(아무리 보고 싶어도, 잠자는 아이를 깨우는 건 피차 할 짓이 못되니까).
사실 나는 조이가 아주아주 작고 어렸던 그때부터 그랬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아기를 집으로 데려와서 정신없이 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안아 달래던 그 시절부터. 하루를 마무리하며 이미 밤잠에 든 조이를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아기 침대 옆에서 기웃기웃했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하루동안 찍은 조이 사진을 혼자 보기 아까워서 남편에게 보여준다는 핑계로 내가 한 번 더 보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휴대폰 잠금화면도, 홈화면도, 카톡 프로필 사진도 몽땅 조이 사진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나도 엄마가 되면 아주 자연스럽게 아이 사진으로 여기저기를 도배해 놓게 될까?' 생각만 했었더랬다. 그런데 엄마가 돼 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 있다.
오늘 아침, 조이를 배불리 먹인 후 세수도 시키고 양치도 시켰다. 위아래로 깨끗한 옷을 입히곤 "엄마도 세수 좀 할게, 조이야."라고 말을 했다. 조이는 안방 화장실 앞 화장대 앞에서 서성거렸다. 화장대 의자에 올라가고 싶은데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자 조이는 버럭 짜증을 냈다. 그러다 휘젓던 손에 닿은 엄마의 화장품 하나를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애꿎은 화장품만 불쌍하지.
화장품이 바닥에 나뒹굴어도 엄마는 태연했다. 그 이유는, 그 화장품은 그저 속이 빈 크림통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엄마의 화장대에 관심이 많은 조이에게 늘 손댈 수 있게 두는 장난감이랄까. 엄마가 로션을 바르거나 화장을 하거나 머리를 말릴 때면 늘 엄마 무릎에 앉겠다 하는 딸아이를 위해 준비해 둔 장난감 말이다.
"조이야, 이건 조이가 만져도 돼. 그런데 다른 건 만지면 안 돼." 이륙을 위해 착석한 승객들에게 친절하게 안내방송을 해주듯, 화장대 앞 엄마 무릎 위에 앉은 조이에게 항상 하는 말이다.
설사 조이가 던진 크림통을 엄마가 장난감으로 임명했다 하더라도, 조이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고로, 그 크림통은 조이가 만져도 되는 '엄마의 것'인 셈이다. 자, 세수를 하다 자신의 크림통이 내동댕이 쳐지는 현장을 목격한 엄마는 무어라 말해야 하는가.
첫 번째, 엄마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이야, 짜증이 났어? 그래도 물건을 그렇게 던지면 안 돼."
분이 풀리지 않은 조이는 물건을 던지지 말라는 엄마의 말을 알아듣고서도 청개구리처럼 한 번 더 크림통을 잡아서 바닥에 던졌다. 학부모 상담 때 조이가 청개구리처럼 반항심이 생기는 월령에 다다랐다고 설명해 주시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듯했다. 하던 세수는 마저 해야겠고, 아이의 행동에 반응을 하고 싶은 엄마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운 21개월 아이에게 크고 단호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조이야, 정신 차려!"
커진 목소리만큼 내 마음도 일렁였다는 걸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일렁이는 나의 감정을 증폭시켜 이 아이에게 쏟아붓고 싶지도 않았다. 세수를 서둘러 마친 후 화장실에서 나와 조이에게 다가갔다. 다시 한번 아무리 화가 나도 물건을 던지면 안 된다고 말하였고, 엄마의 물건을 제자리에 올려두라고 했다.
2개월 전까지만 해도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것을 아주 잘하였던 조이는 어느 순간부터인지 그 말만큼은 귓등으로 듣는 경향이 생겨버렸다. 그러니 이 순간에도 조이에게서 엄마의 물건을 제자리에 두고 싶은 마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와 같은 일은 집안 곳곳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다. 전혀 듣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 듣고 있는 이 아이에게, 변하지 않을 것 같지만 성장과 더불어 달라질 아이에게 나는 일관된 태도로 가르쳐야 하는 게 현실이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조이에게 말했다. "이건 엄마 물건이지? 엄마는 조이가 이걸 제자리에 뒀으면 좋겠어. 엄마랑 같이 해볼까?" 조이는 그제야 순순히 엄마를 따라 움직였다. 어쩌면 조이는 훅 일어난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잔잔히 만드는지 몰라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크림통을 던진 후 상황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 몰랐을 수도 있고. 짧은 시간 내 안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잘했어, 조이야. 엄마가 큰 소리로 말해서 놀랬다면 미안해. 하지만 화가 난다고 물건을 막 던지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엄마는 조이를 사랑해." 나의 말에 조이는 편안해진 표정에 미소를 더했다. 상황도, 우리의 마음도 정돈이 되었다. 그렇게 세수만 겨우 하고 나는 조이를 데리고 집에서 나왔다. 세상 정갈한 노란씨앗반 학생과 대충스러운(?) 엄마의 등원길이었다. 어린이집으로 가는 길에 두 명의 엄마들이 등원을 마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여 괜히 위로받는 아침이었다.
그렇게 딸아이와 씨름을 하고 난 아침이면, 홀로 집에 들어와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다. 아무리 아이와 웃으며 인사를 했다 해도 말이다. 아무리 올바르게 훈육을 했다 할지언정, 그 과정 속에서 나의 못나고 어리숙한 마음이 아이에게 가시 같이 날카로웠을까 봐 그렇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지나버린 일인 것을.
오전을 잘 보낸 후 글을 쓰려고 앉았다. 그런데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마음을 환기시키자며 집안일을 하고 있을 때, 문득 조이가 돌 때쯤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하던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 12개월 즈음의 조이 사진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사진을 하나 둘 넘겨보았다. 지금보다 훨씬 작고 앙증맞은 아기가 활짝 웃고 있었다. 뚱한 표정의 조이도 있었고, 잠이 든 조이도 있었고, 맘마를 먹고 있는 조이도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실 쪼개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휴, 조이야. 엄마가 또 이러고 있다. 네 사진을 보며 너를 또 많이 보고 싶어 하고 있어. 하원시간이 천천히 오기를 바라면서도 네가 얼마나 많이 보고 싶은지 몰라. 역시 서로 지지고 볶아야 애정이 더욱 커지는 법인 거야. 네가 언제 이렇게 커버렸는지, 엄마는 사진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해. 오늘 보는 너의 모습도 얼마 지나면 또 변해버릴 것만 같아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고. 그래도 이렇게 사진으로, 영상으로 지난날의 너를 볼 수 있어 참 좋다.
네가 훌쩍 커버려도 엄마 눈에는 너의 모든 날들이 선명히 남아있을 것만 같아. 모든 게 서툰 너처럼 엄마 역할이 아직도 서툰 엄마지만, 네가 크는 만큼 엄마도 성장하고 있다는 걸, 우리가 아웅다웅하는 만큼 우리의 관계가 더욱 깊어진다는 걸 엄마 스스로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새 하원시간이 되었네. 조이야, 엄마가 간다."
글 쓰느라 골머리를 앓는 중에 사진첩을 보다가 생각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결국 쓰던 글을 싹 밀어버리고 새로운 글을 써버리게 되었다는 후일담을 남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