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그 어느 날부터 나는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분야에서 최고점을 찍은 이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자면,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활동했던 김연아와 피아니스트 손열음 같은 이들 말이다. 난 하굣길이나 퇴근길에 한 번씩 그들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봤다. 그리고 그들의 화려하고도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고 보고 또 보았다.
내가 그들의 영상들을 꾸준히 찾아봤던 이유는 나의 눈이나 귀를 호강시키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완벽한 연기, 기술, 연주 뒤에 숨어있는 노력의 시간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재능에 더해진 피나는 노력이 얼마큼 쌓였는지를 보려고 말이다.
난 남편에 비해 생각이 많아 실행력이 낮은 편이다. 많은 생각 혹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생각들이 나를 더디게 만든다. 완벽주의가 극심했던 나의 어린 시절보단 훨씬 덜하지만, 완벽을 향하여 가는 나의 꼼꼼함 조차도 나를 느리게 만든다. 나의 이런 면이 스스로도 피곤할 때가 있지만, 감사히도 실행력이 좋은 남자와 만나 살면서 4년째 굉장한 영향을 받고 있는 중이다. 판단과 손이 점점 더 빨라지는 나를 보며 남편이 깜짝깜짝 놀랄 때마다 자신감이 조금씩 더 오른달까.
생각에서 결정으로 가는 길을 최단거리로 만들기 위해 날마다 노력하긴 하지만, 나는 나의 이 느림을 때때로 '신중함'이라고 해석한다. 나는 신중하게 결정 혹은 결단을 내리고 나면 조용히 꾸준하게 무언가를 해내고 마는 편이기도 하다. 조금 느려도 꾸준하게 하는 건 자신 있다. 나를 오래 지켜봐 온 이들은 가끔 나의 '꾸준함'에 감탄하기도 한다. 그래서 알았다. 나의 재능이 '꾸준함'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내가 잘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들쑥날쑥하지 않고,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일들을 꾸준하게 하기로 말이다. 남편 내조도, 육아도, 집안일도, 나만의 온전한 시간 갖기도, 글쓰기도, 운동도. 이 중에서 꾸준함을 이어가기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글쓰기'와 '운동'이다. 당장 하지 않아도 나의 일상에 큰 타격을 주지 않는 일들이다.
먼저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나는 브런치 연재 기능을 십분 활용하여 매주 글 한 편씩 써 내려가고 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글을 꾸준히 쓸 수 없을 것이 불 보듯 훤했다. 나에게 특단의 조치로 내린 것이 '브런치 연재'였지만, 이것이 내게 훈련이 된다는 걸 알았다. 매주 어떤 글을 써야 할까, 골머리가 아프지만 그래도 약속한 날짜에 글 한 편을 어떻게든 올리기 위해 안달복달하다 보면 어느새 글이 만들어진다.
그다음으로 운동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누구나 그렇겠지만, 꾸준히 운동하기란 참 쉽지 않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무 탈이 없고 튼튼한 상태를 '건강'이라고 한다. 그렇다. 난 건강하고 싶다. 건강하게 남편과 조이와 함께 내게 허락된 시간들을 살아가고 싶다. 그런데 우선순위를 세워도 늘 하위권에 머무르는 항목이 운동이다. 꾸준히 하던 운동도 육아와 집안일을 하다가 지쳐버리면 그대로 멈춰버리게 되는 게 현실이랄까.
그런데 육아 21개월 차가 되니 운동을 멈추면 안 될 것 같은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집 아기새가 아빠 품에 안기면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다는 걸 아는 동시에 엄마 품에 안기면 금세 빠져나올 수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조이의 몸무게가 늘어가는 만큼 조이의 힘도 점점 더 세질뿐더러 체력까지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터라 이제는 힘이 부치기가 부지기수다. 그렇다. 이제는 나의 체력과 근력의 한계치를 올릴 때가 온 것이다.
그리하여 가장 먼저 해야 할 운동 종목으로 달리기를 선택했다. 임신 전 남편과 종종 했던, 출산 후 가장 하고 싶었던, 그리고 최근 다시 시작한 운동이 바로 조깅이다. 맨몸으로 할 수 있는, 해본 경험이 있는, 흥미가 있을만한 운동 중 체력과 지구력 증진에 달리기만 한 운동이 있을까 싶어서다. (스쿼트에 버피, 팔 굽혀 펴기 등의 운동은 달리기를 일정 궤도에 올려놓은 후에 차근차근해보기로 한다.)
남편은 매년 이맘때쯤 체력검정을 위해 몸을 단련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체력검정이라도 있으니 연례행사처럼 운동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 말하지만, 매번 몸을 단련하는 이때가 오면 제발 이 열심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육퇴 후 연병장으로 나가면 체력검정을 위해 트랙을 돌고 있는 이들이 여럿 보인다. 나는 군인도 아니면서 마치 시험을 앞둔 이처럼 몸을 풀고 달리기를 시작한다. 나에겐 치러야 할 체력검정이 없기 때문에 나는 시간과 상관없이 내 몸에 맞는 속도로 달린다. 3훈비 연병장은 한 바퀴에 400 미터가 조금 넘는다. 이곳에서 조깅을 다시 시작하고선 연병장을 세 바퀴 정도 달리는 것이 나의 연병장 루틴이었다.
어제저녁, 해야 할 모든 일을 마치고 연병장으로 나갔다. 저녁도 일찍 먹은 터라 위에 부담이 전혀 없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첫 번째 한 바퀴를 돌 땐 종아리가 매우 무겁고 피곤해진다. 그리곤 두 바퀴째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종아리가 서서히 풀려가다가 두 다리가 아주 가벼워진다. 그렇게 세 바퀴를 돌고 났는데 더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한 바퀴를 더 돌고 또 한 바퀴를 더 돌았다. 그렇게 나는 연병장 다섯 바퀴를 달렸다.
연병장을 달리다가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상의 모든 일들이 달리기와 비슷하다는 생각. 처음에는 '괜히 하겠다고 했나.' 싶다가 조금씩 조금씩 나도 모르게 익숙해지곤, 어느 순간 힘이 붙고 속도가 붙어 자연스럽게 해내버리고 마는 과정이 모든 일들 속에 녹아 있어서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오롯이 겪어내기 위하여 나는 또 한 번 나의 육체의 안일함과 소욕을 꺾어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일이 나의 어떠한 생각에도 방해받지 않고 습관처럼 이루어지기 위해선 매일, 매번 나 자신과 싸워서 이겨야 하고.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겨야 될 사람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란 걸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깊이 깨닫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 보자면, 그 누구도 나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 때문이며, 내가 육체와 정신을 가진 인간이라는 데 있지 않을까.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고, 쉬고 싶으면 쉬어야 하고, 자고 싶으면 자야 하는데, 내겐 여전히 한정된 힘과 재화와 시간을 가지고 해내야 하는 일들이 수두룩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이루어야 할 일들 속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 나 자신일 때가 심심찮게 많다(는 걸 인정하는 바이다).
육아와 집안일을 하며 누적된 피로에 짧은 휴가계를 내고 싶지만, 누가 결재를 해주리오. 사실 '부모'는 가족사업을 하는 회사의 공동대표 격이다. 우리 회사에 들어온 신입사원이 아직도 한창 연수(?) 중이라 공동대표 중 하나라도 자리를 비우면 타격이 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전부 차치하고서 이 글을 마무리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나는 나를 건강하게 사랑하고 싶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만큼 나의 남편도, 나의 아이도 사랑하고 아껴주고 싶다. 내게 소중한 가족도, 친구도, 이웃도. 그래서 나는 내게 허락된 하루를 잘 살아가기 위해 나 자신과 싸운다. 나의 일상이 나의 육체의 안일함과 소욕으로 일그러지지 않도록. 내게 맡겨진 일들을 해내는데 나의 힘이 부치지 않도록.
오늘도 난 이렇게 글을 쓰며 또 한 번의 싸움에서 이겼다. 수많은 오늘이 쌓여 내일을 향하는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며. 뒤돌면 보이는 수많은 어제가 작고 부족한 내겐 찬란한 선물이었음을 깨달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