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점심에 우리 세 식구는 돼지고기 목살을 양파, 표고버섯과 함께 구워 먹었다. 거기에 상추쌈에 청국장, 친정엄마표 무김치를, 조이는 된장국을 곁들였으니 말 다했지. 어찌나 맛있게 먹었던지, 배고픔으로 가라앉았던 우리의 몸과 마음이 들썩였다.
식사 후 뒷정리를 마치고 조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금세 조이의 낮잠시간이 되었다. 여느 때처럼 조이를 침대에 눕혀놓고는, 조금 있다가 또 만나자며 방 문을 닫고 나왔다. 남편과 나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자유시간을 알리는 우리만의 춤사위로 몸을 잠시 흔들었다.
앞뒤로 창문을 열어놓은 터라 바람이 집안을 이리저리 훑고 지나가고 있었다. 꽤나 선선한 바람인지라, 집안에 있어도 가을을 느끼기엔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다. 이내 가을바람은 내 마음을 붙잡고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바람이 선선하니까, "로 말 문을 열었다.
"당신이랑 북촌 한옥마을에 가서 손잡고 거닐 거닐 하고 싶어." 10년 전쯤 이런 날씨에 동생과 놀러 갔던 북촌 한옥마을의 거리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장면들을 몇몇 추려 새로운 그림을 그려보았다.
"예쁜 카페가 보이면 거기에 들어가는 거야. 이런 날씨에 하늘 보면서 커피 한잔 하면 딱 좋겠다."
나의 바람이 가을바람을 타고 살랑살랑 나부꼈다. 내 마음은 이미 남편과 함께 북촌에 가 있었다. 초록지붕 집으로 달려가는 매슈 아저씨의 마차를 탄 빨간 머리 앤의 설레는 마음처럼. 보통 상상은 내 쪽에서 하지만,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상상에 가득 찬 아내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던 남편은 이내 "오, 그러면 너무 좋겠는 걸?"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때였다.
"엄마!"
우렁찬 조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낮잠에 들지 못한 조이가 홀로 뒹굴거리다가 무심코 엄마를 부르는 소리였다. 아니면 엄마의 조잘거리는 소리에 잠들기가 힘드니, 정숙을 요한다는 요청이었을까.
한껏 끌어올렸던 달달한 상상이 와장창 깨지고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방금 전까지 우리의 분위기는 분명 로맨스였으나, 낮잠을 자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아기새의 정확한 *딕션으로 인해 우리의 시간은 다시 육아물이 되었다.
(*딕션: 정확성과 유창성을 두루 갖춘 발음.)
우리 부부는 노곤해진 몸으로 소파에 드러누웠다. 조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이 잠에 든 것 같았다. 우리는 조이가 낮잠을 자는 이 시간 동안 우리도 잘 쉬지 않으면 후반전이 매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후반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말이 빨리 지나가고 월요일이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학부모의 나른한 오후였다.
월요일 아침, 부산하게 움직이며 밤새 마른 식기를 정리한 후 남편의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나는 부엌에서, 남편은 안방에서 각기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어수선하게 움직인다. 그러다 보면 우리 집 아기새도 그 어수선한 기류를 느끼고 살며시 눈을 뜬다.
나는 보통 아기새가 꺼내달라고 아우성을 치지 않는 이상 방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가장 정신이 없는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가고 싶다는 의사가 분명히 표현될 때는 지체 없이 방 문을 열어준다. 조용히 혼자 잘 논다 싶으면 남편을 출근시키고 조이의 아침식사를 준비해 둔 후에 조이를 맞이하러 간다.
끼익. 조이의 방 문을 열면 베개나 인형을 붙잡고 놀고 있는 조이와 눈이 마주친다. 그러면 세상 가장 밝은 목소리로 조이의 이름을 부른다. 우리는 서로를 보고 방긋 웃는다. 그 미소가 어찌나 예쁜지 마음이 살살 녹아내리는 아침이다. 침대 가드를 내리는 엄마를 보고 조이는 보통 두 가지 중 한 단어를 말하곤 한다. 첫 번째는 '아빠'다.
조이는 아침부터 신나게 아빠를 찾는다. 아빠는 일을 하러 나갔다고 말해주지만, 그래도 조이는 아빠를 계속 부른다. 식사를 위해 앉았는데 한쪽에 엄마가 앉았으니, 다른 한쪽에는 아빠가 앉을자리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기까지 하며 말이다.
그런데 주말 아침이면 상황이 바뀐다. 내가 부엌에서 어수선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 남편이 조이방으로 간다. 아침 인사를 건네는 아빠에게 조이는 "엄마!"라고 말한다. 엄마가 눈에 보일 때까지. 아빠에게 엄마가 어디 있는지 듣고 나면 도도도 작은 발로 달려서 엄마를 찾아낸다. 엄마와 눈을 마주치고 (안도의 한숨 같은 것을 내쉬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아침인사를 받고 나면 조이는 활짝 웃는다. 그렇게 조이의 하루가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조이는 엄마만 보이면 아빠를 찾고, 아빠만 보이면 엄마를 찾는 것이라고. 조이는 눈을 뜨자마자 엄마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 한다고. 조이도 엄마와 아빠가 한 세트라는 걸 아는 거라고. 아빠, 엄마, 조이가 한 세트, 한 가족이라는 걸 아는 거라고 말이다.
아이가 밤잠이 들기까지, 얼마나 분주하게 하루를 보냈는지 모르겠다. 우선순위와 중요도를 따져가며 효율적으로 빈틈없이 하루를 마무리했는데도, 나는 아직도 글을 다 쓰지 못했다. 글을 써야 하는 월요일인데, 내일로 미룰 수 없는 집안일들과 해야만 하는 일들이 꼭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사이 글을 썼던 것인지, 글을 쓰다 멈춘 그 틈을 타서 해야 할 일들을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조용히 나 홀로 글쓰기를 하고 있는 이 캄캄한 밤 시간이 좋다. 내가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 글에 잘 담겼는지 잘 모르겠으나, 그냥 좋다. 긴긴밤을 종료시키고 눈을 떴던 내가 하루동안 아내로서, 엄마로서 역할을 다하고 다시 나로 돌아온 시간이어서 그런가 보다. 또 오늘의 긴 밤을 보내며 내 몸과 마음은 잘 쉴 것이다. 그리고 또 눈이 떠지면, 오늘처럼 나는 건조된 식기를 정리하고 남편의 아침식사를 준비할 것이다. 그리곤 조이의 하루를 열어줘야지.
내가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어느새 5개월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다. 이 시간 동안 나는 글을 쓰며 수없이 남편과 조이의 이름을 적어 내려갔다. 글로 다 남기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함께 겪어온 수많은 일들이 우리를 가족이란 이름으로 끈끈하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문득 더 이상 나를 나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더욱더 나답게 만들어주는 남편과 딸아이의 동행이 나의 인생길을 더욱 찬란하게 만들어주고 있음에 감사하며. 내게 주어진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이 참 소중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내일 아침에 나의 이름을 또다시 불러줄 이들을 만날 생각에 설레는 밤이다.
( *덧붙이는 이야기 :D )
최근, 조이의 아침 인사말로 쓰는 단어가 하나 늘었다. 바로 '맘마'다. 방 문을 열며조이의 이름을 부른다. 잘 잤냐는 인사를 건넸는데 돌아오는 답변이 "맘마!"일 땐, 정말이지 웃음이 절로 나온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엄마를 보자마자 하는 첫마디가 '맘마'일까 싶어서다.
"맘마!"
"조이야, 배가 많이 고팠구나?"
"맘마!"
"맘마 빨리 달라고?"
"맘마!"
"아, 엄마 아빠 맘마 먹는 소리가 들렸어?"
이렇게 대화 아닌 대화를 하고 나면 조이는 쌩하고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로 달려 나간다. 조이의 "맘마!" 삼세번이 전혀 다른 의미로 들리는 신기한 아침이다. 물론 엄마만의 착각일 수 있지만 말이다, 조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