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설정을 깜빡한 채
스마트폰 불빛이나 들추어보던 나라는 인간은
오전 8시 59분과 9시 00분
그 찰나의 경계에서 하루가 갈라지는
우스운 인간입니다
시계는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도구일 뿐
시각은 LED로 출력된 RGB의 결합일 뿐
고작 그럴 뿐인 도구 따위에게 휘둘려서
향방이 결정되는 한심한 인간입니다
저도 압니다
세상에는 시간을 째깍째깍 잘 지키는
훌륭한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하지만 저는 적당히 작아지고만 싶은 잉여 인간입니다
점심시간 60분
(근로시간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나름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산등성이 너머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온몸으로 만끽하다가
아스팔트 연석에 노란 고개를 내민 민들레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결국 지각을 해버리고 마는 몹쓸 인간입니다
그런 저도 세상 그 누구보다 시간을 잘 지키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퇴근시간 오후 6시
그리고 법정근로시간 8시간
이무렵 시간감각은 마치 신내림을 갓 받은 무당처럼
1분 1초의 어긋남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 시간감각이 예리해질수록
세간의 시간감각은 도리어 무뎌지나봅니다
오늘도 집에 보내주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