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 있어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자그마한 사진 전시를 하는 것을 구경한 적이 있다. 그 전시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진이 있었다. 꽤나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사람들의 표정을 담은 그 사진들이 멋지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사진을 찍는데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도 하였다. 사진을 볼 수록 모델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느껴지기도 하였는데 알고 보니, 작가의 주변인들을 모델로 사진을 찍은 것이라고 했다. 카메라의 의식 없이 자연스러운 순간의 표정들이 기록된 것을 보니 그들이 사진을 찍어준 작가와 얼마나 깊은 관계인지에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는 일이 어렵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전부가 그렇다고는 할 수없지만 대체로 자신의 의견의 좋고 싫고 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소위 말해 굉장히 우유부단한 사람에 속한다. 친구들과 만나 무엇을 먹을지 정할 때도 나의 의견이 거의 없어 대체로 상대방의 의견에 맞추는 편에 속한다. 그러다 가끔 내 의견이 있어도 쉽게 말하지 못해 분위기에 끌려다니게 된다.
의사를 결정하는 것도 마찬가지이지만,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에 대해서도 정확히 모를 때가 있다. 누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한참을 고민하게 된다.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어서 정확하게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대체로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좋은 것에 100%가 아닌 퍼센트를 매기기는 민망하다.
나는 어떤 것을 할 때 무방비 상태의 천연스러운 표정을 지을까. 어떤 순간일 때 내가 안심이 되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지, 나를 숨 쉴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이런 고민을 시작하게 되면서 나는 퍽이나 나에게 민망해졌다. 작은 질문 하나에도 명쾌하게 답할 수 없는 나 자신이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해서 그런 것인가, 아님 변덕이 심해서 그런 것인가 생각해보았지만 어쩌면 둘 다 인 것도 같았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내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정확히 말할 수 없어도 괜찮아. 그게 너인걸. 지금부터라도 너 자신과 친해지면 되지.”
아직도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지 명징하게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런 지금의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애쓰는 내 마음이 지금의 나를 살아갈 수 있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