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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편지를 씁니다.

by 순록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사람들은 가을을 그런 계절이라고 부른다. SNS에는 전국 단풍 명소에 관한 지도가 떠돈다. 이런 날에는 여행을 가도 좋고, 집 근처에만 나가도 계절을 느끼러 나온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코끝으로 바람을 느껴본다. 따듯하지만 시원하다. 외투를 걸치지 않아도 되지만, 외투를 걸치면 더 좋은 날씨이다. 모두의 옷을 벗게 하는 여름을 지나 슬며시 옷을 입게 되는 그런 계절.


가을을 보내는 건 ‘탄다’라는 말로도 많이 표현된다. 다른 계절에 대해서는 여름을 보낸다. 겨울을 지낸다. 봄을 맞이한다.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가을이라는 계절에는 왜인지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붙는다. 감정을 탄다라는 말과 같이 느껴지는 가을을 탄다라는 말. 그래서인지 가을에는 감성에 빠지는 일도, 외로움에 몸서리를 치는 일도,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에 젖는 일도 허용되는 것 같다.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가을을 많이 타는 편이다. 가을이 되면 뭔가 허한 기분이 든다. 마음이 한구석이 텅 빈 것 같다. 내 주변에 함께할 이가 없는 것이 아닌데도, 왜인지 누군가 그리워진다. 오래전 연락이 끊겼던 친구가 갑자기 나를 찾을 것만 같은 감상에 빠지거나, 존재하지도 않는 그를 사랑할 것만 같은 감정을 느낀다. 평소에 잘 먹던 밥도 맛이 없고, 새로운 음식을 먹어봐도 소용이 없다. 그제야 느낀다.


아, 가을이 왔구나!

그런 계절이 되면 한동안은 우울에 빠진다. 너란 녀석은 매번 그리 내 기분에 영향을 주는구나 싶다가도 이내 결국 받아들여야 한다. 이왕 가을을 탈거라면 잘 타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저 잠시 머물다 가는 계절처럼 가을을 조용히 자연스럽게 보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나는 편지를 쓴다. 편지에는 그날의 기분을 정리하는 일기를 쓰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하루의 고통이 담겨있는 푸념을 적거나 하염없이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을 적기도 한다. 그렇게 적다 보면 감정이 한결 편안해진다. 보통의 편지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것이 목적이지만 내가 쓰는 가을 편지는 받는 사람이 없다. 보내는 사람만 있을 뿐, 닿지 않는 누군가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쓰는 편지이다.


차가운 바람이 슬며시 느껴질 때쯤 나는 어김없이 편지지를 꺼내 들었다. 받는 이 없는 편지를 쓴다. 모두들 안녕하기를. 작년보다는 올해가,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욱 평안하기를. 내게 불어오는 다양한 감정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의연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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