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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의 기록자 Apr 25. 2023

나의 작은 새싹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한다. 어릴 때는 일찍 일어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었는데, 지금은 무섭도록 눈이 빨리 떠진다. 시골 할머니들이 새벽같이 일어나시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일찍 일어난다고 해서 몸이 개운한 것은 절대 아니다. 어젯밤 피곤에 쩔어 잠든 그대로 일어난 느낌이다. 잠시 눈을 감은 것뿐인데 아침이라니. (이럴 순 없다. 누워 있는데도 더 누워있고 싶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쑤시는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가서 머리를 감는다.


 “우두둑” 


 허리 어디쯤에서 나는 분명한 소리. 운동 좀 제발 하라고 몸이 비명을 지른다. 비명소리에 익숙한 나는 빠르게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대충 머리카락을 털어낸다. 

  

 “으악!”  


 거울로 본 내 모습에 비명을 꽥하고 질렀다. 요즘 나의 최대 고민은 탈모이다. 20대에는 많던 것이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버려 내 머리상태는 겨울이 되었다. 그것도 아주 혹독한 겨울. 겨울을 맞은 머리는 처참한 몰골이다. 


 언제 부터인가 머리를 감으면 하나 둘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손에 한 움큼씩 잡힐 정도로 빠졌다. 집에서 돌돌이로 청소를 하면 돌돌이 가득 머리카락이 붙어 있었고, 청소하고 지나온 자리를 되돌아가면 왜인지 머리카락이 또 떨어져 있었다. 


 계속 빠지기 시작한 머리카락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르마 사이가 벌어지며 두피가 드러나게 만들었다. 머리는 분명이 검은색이여야 하는데 머리의 하얀 바닥이 고개를 내민다. 가르마가 서로에게 작별을 고하고 자꾸만 멀어지는 것이다. 이후론 거울을 볼 때면, 얼굴을 보는 것보다 고개를 숙여서 오늘은 두피가 얼마나 보이는지 확인하는 것이 일과 중 중요한 사안이 되었다. 한번은 언니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너 이러다 대머리 되는 거 아냐? 여자는 머리숱이 생명인데 관리 좀 해.” 


 나도 안다. 여자는 머리빨 이라는 것을. 무서웠다. 처음으로 나이 들어가는 것이 두려워졌다. 찬란한 젊음이 저물어가니 잡고 있던 모든 것들을 놓아버리는 것만 같았다. 대책을 세워야만 했던 나는 서둘러 컴퓨터를 켜서 검색을 하기 시작한다. 



 [여성 탈모 예방법] 


 여성탈모의 원인과 해결방법은?, 30대 후반 여성 원형탈모 (정수리) 극복 과정……. 



 검색 창에서 보여주는 글들은 처참했다. 탈모와 대머리는 남성의 전유물인줄 알았던 내게, 더 이상은 남성의 일만이 아니라는 글들이 페이지를 장식했다. 광고가 섞인 글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알고 싶었던 나는 홀린 듯이 카페에 가입하게 된다. 카페에는 여성 탈모인 들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게시 글들을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제 사진 좀 봐주세요.” 


 게시 글들 중에서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사진들이었다. 그 곳엔 자신이 탈모 인인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가입해서 사진을 올린다. 그것은 자신의 정수리가 적나라하게 올라온 사진들이다. 그렇다. 남성의 탈모와는 다르게 여성의 탈모는 정수리부터 시작한다.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면 가르마가 마치 모세가 홍수를 갈랐던 그것처럼 갈라진다. 검은 머리 대신 하얀 두피가 드러나 보인다. 머리카락이 적고 하얀 부분 즉, 두피가 많이 드러날수록 탈모의 정도가 심각해진다. 타인의 정수리를 찍은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은 댓글을 달아댄다.


“여성 탈모가 시작되신 것 같아요. 병원에서 검사 받아보세요” 라는 글부터 “이정도면 괜찮은 것 같아요~ 오히려 부럽네요!”라는 글까지 주관적인 시각의 다양한 글이 달려있다. 글쓴이는 다시 댓글을 달아 다행이라는 등, 탈모약이 어떤 것이 좋은지 알려달라는 등 위안을 받기도 하고 정보를 교류하기도 한다. 게시 글을 보면서 나도 평가를 해본다. ‘저 정도면 양반이지’ 하기도 하고 ‘나보다 심각하네.’ 하기도 한다. 세상엔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생각하며 카페 글들을 구경했다.


 마침내 나는 몇 가지 효과가 좋은 약들을 찾아냈고, 바로 약국으로 달려가 제품을 구입했다.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에 바르면 결국은 머리카락이 난다는 그 약. 물론 사람마다 부작용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많은 여성 탈모 인들의 눈물 나는 감동의 후기를 보면서 나도 한번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아침, 저녁으로 성실하게 약을 바르기 시작했던 나는, 어느 날 거울을 보고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머리카락이 더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믿었던 제품에 배신을 당한 느낌이었다. 나는 카페에 다시 들어가 무엇이 문제인지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믿음과 소망에 가득 찼던 내가 제품을 구입하기 전에 간과한 것이 하나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제대로 된 머리카락이 나기 전에 쉐딩 현상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즉, 새로운 모발이 성장하기 위해선 휴지기의 모발이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풍성한 머리카락이 나려고 발생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계속 약을 바를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의 모발이라도 지키기 위해서 중단을 해야 하는 것인가. 카페에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국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그것을 통과하는 수밖에는 없다. 그 길을 지나면 어떤 것이 있을지는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이뤄질 것이라 믿으며 굳건히 걸어 가야한다. 고민 끝에 나는 나 자신을 믿어보기로 제품을 믿어보기로 했다.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전문가의 글을 동아줄 삼으며 말이다. 다시 나는 약을 바르고, 영양제도 함께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속절없이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이러다 정말 대머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인터넷에 가발이나 각종 시술 등도 검색해보며 위안을 얻고 싶었지만 별다른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시간을 믿으며 좋은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는…….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어느 날 내 머리에는 작은 새싹들이 자라났다. 머리 위로 솟아난 몇 개의 잔머리들. 마치 대학에 합격한 사람처럼 나는 거울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아주 작은 효과이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마치 희망의 씨앗처럼 느껴졌다. 이제 뭐든 잘 될 것 같다는 일련의 믿음.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지기까지는 많은 시일이 걸리겠지만, 나는 지금의 효과를 씨앗삼아 물을 주고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두려움에 맞서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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