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사람을 얼마나 끝으로 몰고 가는지
사람마다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고 있는 것인데 유독 외로움을 더 크게 느끼는 사람이 있는 듯하다.
나 같은 경우에도 그랬다.
사랑을 해도 사랑을 받고 있어도
외롭다는 감정이 밀려올 때면 그 사랑으로도 성에 차질 않았다.
더 사랑을 달라고 울며 떼를 써 봐도 그것으로는 외로운 감정이 해결이 되지 않았다.
혼자 있게 될 것 같은 두려움
버려지게 될 것 같은 두려움
두려움에 휩싸일 때면 누구라도 좋았다.
누구라도 함께 있고 무엇이든지 해야만 했다.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고 카톡을 하고, 만나서 대화를 하고
조용한 곳에 가기라도 하면 외로움이라는 녀석이 나를 덮칠 것만 같아서
외로움이라는 녀석을 피해 다니기만 했다.
왜 혼자인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일까?
어릴 적에 강아지를 좋아했었다.
친구들 집에는 강아지를 키웠었는데 우리 집에는 강아지를 안 키워서 매일 엄마한테 강아지를 사달라고 조르곤 했었다.
엄마는 개털 알레르기가 있는 분이셔서 강아지를 키울 수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막내딸의 고집에 결국은 강아지를 데려왔고 나는 신이 나서 이름을 붙이고 정도 붙여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마는 결국 알레르기를 견디지 못하고 강아지를 다른 집에 보내버렸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충격이 빠져서 며칠을 힘들어했었다.
참 우리 엄마도 웃긴 게, 분명히 당신이 강아지를 보내 놓고는 막내딸이 강아지가 없어진 것에 대해서 서글퍼하니까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또 다른 강아지를 데려왔단 사실이다.
엄마가 마음이 조금만 덜 약했으면 강아지를 다시 데려오는 일은 없었을 텐데, 어머니의 한순간의 감정들로 나는 존재와 상실감에 대해서 몇 번이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어떤 날은 제일 정을 들였던 강아지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울며 통곡을 했었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해서 당시 초등학생 이였던 내가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서는 며칠을 나오지 않고 울었었다.
그때의 상실감에 대한 충격이 지금도 남아 있는 듯하여 지금의 나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다.
단순한 동물의 상실이 내 곁에 있는 누구라도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만들어주었고
그것이 지금까지도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강아지가 없어졌을 때의 그 두려움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어쩔 수 있을까
사람의 생이라는 것이 늘 모든 이와 같이 갈 수만은 없으니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이 당연한 이치를
왜 나는 거부하고만 싶은 것일까
둘이 아니라 혼자여도 잘 살 수 있고 행복하다는 것을 왜 두려워하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혼자라도 좋으니 외로움마저 친구처럼 지냈으면 좋겠다.
두려워하지 않고 때때로 등장하면 외로움도 언젠가는 때가 되면 사라질 테니까
마음속에 자리 하나 내어주고 시간이 지나 외로움도 그렇게 흘러갈 수 있게 해주어야겠다.
영원히 곁에 있는 것도 없고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은 더더욱 없으니
그렇게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그 순간을 추억하며 붙잡으려 하지 않아도
남아 있을 사람은 어떻게든 남아 있게 될 테니까
조금만 더 존재에 대해 여유로운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