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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의 기록자 Oct 03. 2018

너는 여전히 그대로구나.

너는 그대로구나?




오랜만에 연락이 온 친구와 대화 중에 친구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     


"너 걔 알지?"

"누구?"

"그 있잖아 고등학교 때 맨날 뒷자리에서 자던 애 말이야. 선생님들이 걔보고 잠만보라고 놀렸었잖아~"

"아 기억난다."

"그렇지? 걔 남편이랑 결혼해서 외국으로 이민 가서 산대 신기하지 않냐?"

"아 그래?"

"응 남편 얘기 들어보니까 돈 좀 버는 회사 사장이라고 하드라. 암튼 걔는 돈도 못 벌줄 알았는데 남자 하나 잘 만나서 편하게 산다더라~"

"그렇구나."

"그렇지? 또 있어. 걔 있잖아 우리 반 반장 알지? 나는 걔 공부 잘해서 어디 좋은데 취업했을 줄 알았는데, 세상에 걔는 사고 쳐서 대학교 가자마자 바로 결혼했다고 하드라. 저번에 우리 동기가 지나가다가 봤는데, 애기 하나 둘러업고 또 하나 손잡고 있더라는 거 있지? 남편이 버는 수입으로는 살림이 어려워서 부업으로 애들 과외해준다고 하드라고 참 이런 거 보면 사람 사는 거 앞일을 모르는 것 같아~~~ 

근데 너는 참 하나도 안 변했다? 그냥 그대로 인 것 같아"

"뭐 나야 그렇지 뭐"




참 사람일은 알 수 없는 거라며 온종일 종알대던 친구는 몇 시간의 수다 끝에 남자 친구의 전화 한 통에 미안하다며 자리를 뜨고 말았다.


여전히 그대로라……

그 친구가 보기에 여전히 나는 그대로인 것 같았나 보다.

30대 여자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 변해 있어야 하는 것인가?

그래 그럴 수 있다.

마치 20대에 당연히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도 내가 30대가 되면 무엇인가 어떤 모습으로든 변해 있을 줄 알았다.

예를 들면 지금 보다 더 멋진 직장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거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예쁜 가정을 만들고 있다던가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30대가 되면 생각도 더욱 어른스러워질 줄 알았다.

20대 때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에 천둥번개 비바람이 쳤는데, 나이가 들면 잠잠해질 줄 알았나 보다. 

그런데 막상 이 나이가 되어보니 여전하다. 아니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왜 30대 언니들은 일이 끝나면 저녁에 집에만 있으며 왜 그렇게 만나면 결혼 얘기만 하고 혹은 시댁 얘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던 나는 이제 그런 것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변하지 않았다는 친구의 말에 난 반박하고 싶었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난 그저 그런 언제 망할지도 모르는 회사를 다니고 있고, 친구들의 청첩장을 매주 받는 것뿐 아니라 이제는 첫째, 둘째 돌잔치까지 가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턱대고 지금 결혼을 하기에는 생각이 너무 늙어버렸다.


결혼한 친구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때 어려서 모르고 결혼했는데 너는 절대 결혼하지 마"

"결혼할 거면 무조건 돈 많은 사람이랑 해"

"시댁이 좋아야 결혼생활이 편하다"

"애 낳으면 여자로서의 삶은 끝나는 거야 그러니까 애 낳는 건 잘 생각해야 해"


아이러니하다.

정작 당사자들은 결혼을 했으면서 결혼 안 한 사람한테는 하지 말라고 하는 꼴이라니

나이가 들면 겁이 많아지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하던 일들을 나이가 들어서는 못하게 된다.

기회비용을 따지게 된다. 더 이상 상처받기 싫어서 더 이상 시간낭비하기 싫어서 말이다.


왜 그렇게 나의 언니들이 30대를 거치면서 우울해졌는지 이해가 되는 요즘이다.

왜 매일 밤 방안에서 혼자 술을 마셨으며, 얼마 사귀지도 않은 남자 친구와 바로 결혼을 했는지

왜 그리고 잘 다니던 일을 관두고 몇 년 동안이나 해외를 여행하면서 돌아다녔는지 말이다.

그때는 이해 가지 않던 것들이 모두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나의 선택이 남아있는 것 같다.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남들 그렇게 사니까 순리를 따라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적어도 돌아가더라도 내가 경험해보고 또 최대한 고민해보고 결정하고 싶다.

어떤 삶이든 말이다.


지금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해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찾겠다고 여행을 간다 해도

또는 운명의 상대를 만나서 갑작스러운 결혼을 한다고 해도 말이다.

이 모든 선택은 나이에 의한 선택이 아닌 나 스스로의 선택이였으면 한다.

적어도 나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 삶.


그런 30대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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