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아선호 사상은 아니지만요.

내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by 순록

우리 집은 딸만 셋이 있는 집안이다. 자매가 많은 집안이어서 그런지 늘 우리 집은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부모님은 나름 공평하게 자매들을 대하신다는 이유로 셋 중에 누구 한 명이 잘못하면 잘못한 사람을 혼내는 게 아니라 너희는 한 가족이니까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모두를 소환해 냈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다가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혼이 날 때마다 언니가 잘못한 것인데 왜 내가 맞아야 되지?라는 반항심이 생겨났고 나중에는 일부러 언니들에게 복수할 마음으로 없는 잘못도 만들어서 내서 사고를 치곤 했다. 딸이 셋이면 주변에서는 엄마에게 딸 같은 친구가 세 명이나 있어서 좋겠다며 나중에 딸들 결혼하면 비행기 3번 타겠다고 부러워들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우리 셋은 성격이나 체력이 딸이 아니라 아들에 가까웠고, 셋이 모여서 사고를 치는 수준은 가히 아들 셋이 사고 치는 것에 가까웠다. 인형놀이보다는 몸으로 치고박는 싸움을 더 즐겼으니 말이다.


어릴 때 나는 지금과는 다르게 굉장히 마르고 힘이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언니들의 괴롭힘을 많이 받았었다. 언니들과 나이 차이도 많아서 언니들이 놀리기 딱 좋았다. 한 번은, 세뱃돈은 받은 날이었는데 막내라고 내가 제일 많이 받았던 날이 있었다. 이를 지켜본 질투가 많은 둘째 언니가 나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야 우리 맛있는 거 사 먹자. 니 세뱃돈으로 먼저 맛있는 거 사 먹고 언니들 세뱃돈으로는 게임하러 가자. 어때?”

언니의 제안에 어린 나는 순진하게 세뱃돈을 건네주었고 그 돈으로 몽땅 맛있는 것을 사 먹었다. 그 후에 게임으로 언니들의 세뱃돈을 쓸리는 없었다. 언니들에게 눈앞에서 세뱃돈을 몽땅 써 버리게 된 나는 바닥에 누워 울며 떼를 쓰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셋은 모두 소환되어 엄마에게 각 2대씩 체벌을 받게 되었다. 언니들에게 돈도 뺏기고 엄마에게 매도 맞은 나는 너무나 억울했다.


사실 나는 언니보다는 동생이 갖고 싶었다. 귀여운 동생과 같이 맛있는 것도 사 먹고 놀이터도 가고, 내가 동생이 생기면 지금의 언니들보다는 훨씬 잘해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동생을 만들어 달라고 엄마에게 떼를 써봤지만 역시나 역부족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들은 나와 친구도 될 수 없었고, 오히려 괴롭히기 일쑤였다. 언니와 자주 싸우고 괴롭힘을 당한 나에게 어느 날 엄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언니들이 싫어도 나중에는 가족만큼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없어. 특히 언니들은 더 그럴 거야. 나중에 너희들이 결혼하면 서로 많은 도움이 될 거야”

그때는 슬픈 감정이 먼저여서 엄마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정말 엄마의 말처럼 자매 각자가 결혼을 하고 나니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친해지게 되었다.

내가 연애를 할 때 지금의 남편과 미래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그땐 결혼하면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 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거나 아이를 낳으면 아들이 좋을까, 딸이 좋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미래를 꿈꿨었다. 실제로 결혼을 하게 되니 어느 정도는 상상했던 미래의 모습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현실도 있었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결혼이라는 큰 장벽을 넘는 것이 힘들어서 얼른 결혼을 해버리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결혼을 한 후에는 이제 인생의 큰 과제를 해결했으니 즐겁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언니, 드디어 끝났어. 드디어 결혼을 했으니 인생의 큰 과제는 넘은 것 같아.” 나의 말은 들은 언니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이제 다 끝난 것 같지? 이제 새로운 시작일걸? 대학교 졸업하면 취직을 해야 하고, 취직을 하면 연애하고 결혼을 해야 하듯이 이제 결혼을 하면 너에게는 출산이라는 과제가 주어질 거야. 그러고 나면 끝날 것 같지? 아니야.”

그때는 언니의 말이 전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결국은 본인의 선택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취업이나 연애 그리고 결혼도 모두 자신의 선택이듯이 출산이라는 문제도 나의 선택에 달린 일이라면, 나는 그 과제는 잠시는 미뤄두고 싶었다. 하지만 순리라는 게 있듯이 언젠가는 내가 고민을 수없이 하고 선택해야 할 일인 것을 잘 안다. 취업이나 결혼의 문제와 달리 특히 출산은 나 혼자 하는 일도 아니고 심지어 노력한다고 해서 바로 되는 일도 아니니, 천지신명의 도움을 받아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가끔 언젠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언제 낳을 것이며, 아들이 좋은지 딸이 좋은지 그리고 몇 명까지 낳을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남편과 나누어본 적이 있다.


“나는 만약 낳는다면 딸을 낳고 싶어. 딸 바보 아빠가 되어보고 싶거든.”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나도 처음에는 동의했었다. 자녀를 골라서 낳을 수는 없지만 이왕이면 딸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들에 대한 마음은 거의 없었는데 결혼을 준비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딸이 셋인 우리 집에서 엄마의 걱정은 하나였다. 나중에 집안에 큰일이 생기면 누가 집을 챙길까 하는 것이었다. 여자는 결혼을 하면 호적을 파서 나간다는 오래된 생각이 있기에 엄마는 든든한 아들을 두지 못한 대신 든든한 사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하였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것은 신랑과 신부 그리고 양가에서 준비해야 하는 것 들이었다. 물론 요즘 세대에는 적용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지만 적어도 나의 부모님에 세대에서는 아직 당연한 것들, 신랑이 집을 해오면 신부는 집안의 살림을 채우는 이런 풍속들이 남자보다는 여자 쪽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은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왜 언제나 신부 엄마는 늘 약자의 입장이 되는 것 같은지, 평소에는 절대 효녀가 아니지만 갑자기 효녀 마인드가 되는 알 수 없는 속상함과 슬픈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페미니즘도 남성 혐오주의자도 아니다. 그저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일 뿐이다.)


이후에 출산에 대한 내 생각은 무조건 딸보다는 아들이 더 좋지 않을까라는 꼰대 어르신의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내가 맘대로 결정할 수는 없지만 신이 허락한다면 우리 가정에도 든든한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이제 자녀를 낳아야 하지 않겠다는 시어머니에게 나의 이런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내 이야기를 다 들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들을 낳고 싶다고 하니 그럼 아들 하나 딸 하나 사이좋게 낳으면 되겠네”

나는 자녀를 낳을지 말지 그리고 굳이 낳는다면 아들인지 딸인지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어머님은 자녀는 낳아야 하며 굳이 낳으려면 아들,딸 사이좋게 둘을 낳으라고 말씀을 하실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로써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