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집은 식구들이 많았다. 딸이 셋이나 되는데 그중에 막내였던 나는 내 방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의 가장 큰 로망은 내 방을 갖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 친구 집에 놀러 가면 핑크빛 침대에 귀여운 인형들이 놓여있고, 자신의 물건을 마음껏 놓을 수 있는 책상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가진 친구가 부러웠다. 예쁜 방에서 같이 놀고 있으면 친구 엄마가 똑똑똑 노크를 하고 들어오셨다. 엄마가 딸 방에 들어오는데 노크를 한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것은 마치 아이의 공간을 존중한다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나는 2명의 언니들과 늘 같은 방을 썼는데, 내 침대도 없었을뿐더러 책상이라고는 바닥에 엎드릴 수 있는 공간이 나에게 책상일 뿐이었다.
내 방을 가지고 싶었던 오래된 소망은 결혼을 하고 내 집이 생긴 후에 해결되었다. 나는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신혼집에 먼저 들어가서 살았는데 30살이 넘어서 가지게 된 나만의 공간을 야무지게 꾸미고 싶었다. 소위 말하는 인스타 갬성으로 꾸미길 원했지만 현실이 녹록지만은 않았다. 우선 인스타에 나오는 집은 공간이 넓을뿐더러, 벽지와 장판의 스타일부터가 달랐다.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은 새하얀 마루와 벽지였다. 우리 집은 이미 도배와 장판이 된 곳이었는데 오래된 낡은 아파트에 수리를 한 것이라서 내가 생각하는 인스타 감성은 낼 수가 없었다. 시작이 이래도 가전이나 가구는 좋은 것을 사고 싶었지만 가진 것 없이 시작한 결혼이기에 최신형 냉장고, 세탁기 등을 사는 것은 무리였다. 최대한 가성비를 따지며 살림을 구입했다. 그래도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감성은 자잘한 조명이나 소품으로라도 채워보았다. 고민 끝에 완성한 신혼집은 내가 원했던 완벽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갬성(?)스럽기에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나 혼자 사는 것과 같이 사는 동거인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강박증까지는 아니어도 정리정돈을 할 때 나만의 규칙이 있다. 그 물건이 놓이는 자리를 지키는 편이여서 찾고자 하는 물건이 자리에 없을 때는 꼭 그것을 찾아서 제자리에 돌려놓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남편은 정 반대였다. 집안에서 음료를 마시면 바로 그것을 씻어서 재활용품 통에 넣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뭔가를 먹으면 그것을 치우는 법이 없었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서 치약을 가운데부터 짜는 남편과 끝에서부터 짜는 아내가 서로의 차이를 좁히지 못해서 이혼을 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남편이 집에서 먹고 움직이는 곳곳에 흔적이 남았고 나는 뒤를 졸졸 쫒아다니면서 치우기에 바빴다. 그러나 나의 참을성에는 한계가 있었다. 나는 참지 못했고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설거지는 먹고 나서 바로 하는 거 아니야? 오늘은 자기가 설거지하기로 했으니까 바로 해줬으면 좋겠어”
“알겠어 이따가 할게”
“이따가 언제 할 건데? 저번에도 이렇게 말해놓고 다음날 저녁에 내가 퇴근하고 와서 했잖아. 지금 해줘”
이러한 문제들로 골머리를 앓던 나에게 큰언니가 조언을 해주었다.
반쯤은 포기하는 게 좋아. 아예 포기하라는 게 아냐. 바로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포기하고 대신에 몇 시까지는 해달라고 말해보는 거야
큰언니의 조언을 들은 나는 실천을 해보았고 그 후로 우리는 조금씩 조율이 될 수 있었다. 지금도 우리 집은 더럽기도 하고 깨끗하기도 하다. 깔끔한 내가, 조금 덜 깔끔한 남편을 위해 반쯤 포기한 결과이다. 살아온 문화가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당신을 존중하기에 서로 맞춰가는 것이다. 아직도 양보하고 희생해야 할 일이 산더미지만 부디 좋은 타협점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