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를 보자
요즘 뉴스 헤드라인은 밝다. “코스피 4,000 돌파 임박”, “역대 최고치 경신”, “외국인 10조 순매수.” 표면적으로 보면 한국 주식시장은 축제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환호의 중심에는 단 하나의 섹터가 있다 — 반도체.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두 기업의 주가만으로 지수의 절반이 움직인다. AI 서버와 HBM 메모리, 글로벌 데이터센터 증설, 엔비디아 공급망. 이 단어들이 만들어낸 서사는 강력했고, 코스피의 화려한 상승은 그 서사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시장 전체의 건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상승은 고르게 퍼진 회복이라기보다 극도로 편향된 질주에 가깝다.
코스피는 역사적으로 반도체 사이클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여왔다. 이는 단순히 산업 비중의 문제를 넘어선다. 한국 경제 전체가 반도체 수출 구조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번 랠리도 예외가 아니다.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가 급증하면서 HBM 메모리 수요가 폭발했고, SK하이닉스의 주가는 연초 대비 100% 이상 상승했다. 메모리 가격이 반등하고,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더해지며 외국인 자금이 다시 들어왔다. 환율이 약간의 원화 강세를 보이자, 외국인에게는 ‘환차익 + 주가 상승’이라는 이중 보상이 생겼다.
즉, 지금의 코스피는 반도체 호황과 유동성, 환율, 정책 스토리가 정교하게 맞물려 있는 상태다.
문제는 이 서사가 ‘하나의 사이클’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산업의 과열은 곧 공급 확대를 부르고, 수요가 정점에 다다르면 사이클은 꺾인다. 메모리 가격이 꺾이거나 AI 투자 속도가 늦춰지는 순간, 지금의 랠리는 순식간에 균열이 생긴다.
또한 대부분의 내수주·중소형주는 여전히 침체 국면에 머물러 있다. 이것이 ‘지수의 착시’다.
한국은행은 여전히 완화적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가 동시에 오르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금리를 낮게 유지할 수 있을까? 만약 정책 기조가 돌변한다면, 지금의 주식시장 랠리는 ‘돈이 만들어낸 상승’이었음을 드러내며 빠르게 되돌려질 가능성이 있다.
결국 향후 시장의 방향은 ‘AI 반도체 사이클의 지속력’과 ‘한국은행의 인내심’, ‘원화의 흐름’이라는 세 변수에 달려 있다.
향후 국내 주식시장은 두 갈래로 나뉠 것이다.
하나는 서사에 올라탄 시장 — AI, 반도체, 배터리, 글로벌 공급망.
다른 하나는 현실을 따라가는 시장 — 내수, 서비스, 중소형 경기민감 업종.
전자는 스토리와 함께 오르고, 후자는 숫자와 함께 회복된다. 투자자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화려한 서사 위에 올라타되, 언제 내릴지를 정해두는 전략적 냉정함이 필요하다.
코스피의 방향성은 결국 반도체 사이클과 함께 움직이겠지만, 그것이 “국내 경제의 회복”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제 시장을 읽는 기준은 단순한 지수가 아니라, 지수를 움직이는 구조 그 자체다.
다시 말해, 지금은 숫자보다 ‘서사’를 읽어야 할 때다. 그리고 서사는 언제나, 가장 화려할 때 깨진다. 물론 AI 서사가 언제까지 이어지느냐가 중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