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
뭘 쓸지 고민하는 시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 주제가 없어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 순간 가장 가까이에 있는 도구를 꺼내 들어야 한다. 머릿속을 글 쓰는 도구로 이용하면 안 된다. 마치 쓴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딱 그 꼴이다. 순간의 상상에 취해 글을 기억의 저편에 묻지 말자. 머릿속에서는 저만큼 진도가 나간 글을 처음부터 다시 쓰려니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글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런 악 순환에 빠지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멀쩡했던 재료들이 시간이 지나 부식하고 유독가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왠지 모를 불만이 가득 차고, 시간이 더 지나면 왜 이렇게 부정적인 사람이 되었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도 없게 된다. 내 머릿속에도 한 달 전에 떠올렸던 D의 하루가 벌써 완결에 가까워졌다. 바라 마지않던 그날의 하루도 떠올린 지금 이 순간 적어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