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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 클레어 Dec 09. 2024

5월의 상하이

2024.5.4-5.6

[ 6년 만의 QR 시티 ] 

 20대의 1년을 교환학생으로 머물렀던 중국은 내게 첫 해외생활과 혼자서기를 가르쳐준 곳이자 외국인으로서 제한되는 것이 많아 애증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기도 했다. 바로 1년 전, 뮌헨 in 비엔나 out 여행의 항공사가 중국 항공사였고 10시간 이상의 환승시간이 생겨 베이징 시내를 잠시 나갔다 올 수 있길 기대했었다.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비슷한 요청을 하는 외국인들 모두 비자가 있거나, 환승 공항이 다른 곳이 아니면 불가하다는 철통 같은 답변만 매우 강압적으로 받았다. 공항의 빈 의자를 옮겨가며 무료하게 긴 시간을 버텨보니 베이징에서 매일 걸었던 거리와 학교 식당에 대한 그리움은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랬던 중국이 마침내 지난 11월 무비자를 선언했다. 비록 2025년 말까지 한시적이긴 하지만 타 국가 같은 온라인 신청도 아닌, 실물 비자를 부착하는 방식으로 비용과 시간 면에서 번거로움이 가장 높았던 중국 비자의 장벽이 무너진 것이다. 그런데 그 불편한 비자를, 그것도 복수로 욕심을 내 받았던 또 한 번의 여행이 있었다. 공항에서 기분이 상해버린 베이징 대신 상하이였고 혼자가 아닌 친구와 함께였다. 어느 순간부터 도쿄를 제치고 가장 세련되고 화려한 도시로 변모했던 상하이를, 회사에서 중국 영업 담당이 된 친구는 8년 전쯤 약 1년간 살았고 나는 그녀를 따라 이 도시의 트렌드를 업데이트하곤 했다. 이중전공이었던 중국어가 영 어색해져 버린 나와 달리, 이젠 중국어가 일상이 되어버린 그녀에게서 택시 앱 사용법을 안내받으며 홍차오 공항에 도착했다. 


[ 테마파크가 된 리테일 ] 

 도쿄와는 또 다른 불쾌감으로 엄습해 오는 상하이의 찐득한 여름을 회사 후배 몇 명과 즉흥적으로 찾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만큼 녹슬지 않은 중국어를 믿고 가이드 겸 선배 노릇을 해보려 했으나 길거리에서 택시를 무작정 잡는 게 거의 불가능한 것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웬일인지 택시는 잘 잡히지 않고, 중국이 낯선 후배들은 더위에 지쳐가는 상황에 민망했던 순간들이 호텔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불쑥 떠올랐다. 거지도 QR로 구걸한다는 농담이 퍼지던, 급진적인 디지털 혁명의 시기에 앱으로 부르지 않은 택시는 내 앞에 서지 않았던 것이다. 대부분 친구가 불러주긴 했지만 3일간의 여행동안 내내 우리는 한국보다 저렴한 물가의 택시를 앱으로 부르며 이용했다. 이젠 제법 상하이가 익숙한 채 해보고도 싶었지만 코로나를 지나며 더 강화된 듯한 거리의 청결함은 도쿄를 능가하는 풍경이어리둥절 해지곤 했다. 도시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눈과 발로 직접 확인하고, 남몰래 그리워했던 중국식 훠궈와 음식들을 즐기는 우리의 여행 목적이었다. 친구와 내가 각자 서칭했던 가 보고 싶은 곳들은 공통적으로 시선을 확 사로잡는 독특한 외관과 콘셉트의 상업공간이었다. 처음으로 찾았던 Pan long Tian ti는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로부터 인접한 신천지 (Xin Tian ti) 유럽풍 상업거리를 만든 동일한 디벨로퍼가 조성한 곳으로 2023년에 오픈했다. 상하이에서 가까운 항저우, 쑤저우 지역의 시그니처 한 가옥 형태로 운치 있는 수향마을을 인공적으로 조성한 쇼핑몰이었다. 고즈넉한 역사가 담긴 풍광을 재현하여, 블루보틀과 고디바 같은 이국적인 브랜들을 입점시킨 이곳은 주말이기도 했지만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인공 호수에서 배를 타는 사람들, 다리를 건너며 마을처럼 조성된 쇼핑몰과 플리마켓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다. 현지에서 인기가 높다는 MZ 콘셉트의 충칭식 훠궈집도 맛이 있었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문화유산과 현대적 쇼핑몰의 경계 없는 만남이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다음날은 내가 가보고 싶었던 토마스 헤더윅 설계의 1000 Trees 쇼핑몰로 향했다. 그의 아이코닉한 화분 디자인이 기둥에 접목되어 쇼핑몰의 바닥부터 지붕까지 관통하는 구조로 구현되어 실제로 보니 경이롭게 느껴졌다. 지붕 위로 솟아난 화분들이 모여 그 자체로 하나의 섬이자 산처럼 보였는데 먼저 오픈한 한 개의 동에 이어 2025 년년 오픈 목표인 신규 동까지 이 구조가 이어져 더욱 가상적으로 느껴졌다. 그야말로 이름 그대로 1000그루의 나무를 심벌로 활용한 곳이었다. 이런 압도적인 환경에 비해 현재 조성된 쇼핑몰 브랜드나 내부 구성은 다소 실망스러웠으나, 강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와 바로 인근의 M50 문화예술구와 연결된다는 점은 매력적으로 보였다. 


 마지막으로 들른 Sinan mansions은 프랑스 조계지 지역의 유럽식 공관들이 상업시설로 변한 곳이었는데 와이탄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아기자기하면서도 엔틱 한 느낌을 내뿜었다. 친구는 지난 시절 종종 찾았다는 스타벅스 건물을 가리키며 한적하게 노트북 작업을 하기 좋았다고 했다. 거리를 거닐며 발견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마오타이 아이스크림 샵이었다. 명주 마오타이가 함유된 아이스크림은 기대 이상으로 특유의 향을 느낄 수 있어 한번쯤 접해보기에 좋은 아이템이었다. 한국 이상의 온라인 상거래, 배달 문화가 생활 저변에 확산된 이 도시의 쇼핑몰은 이제 Atrraction급의 강력한 테마와 콘셉트를 갖지 않고서는 사람들의 시간을 점유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잠겼다.  



[ 사실은 츠타야 중국판을 보러 ] 

 그저 이 도시를 둘러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 시절에 상하이를 들린 것은 일본의 츠타야 서점이 대만에 이어 두 번째로 선택한 해외 진출지인 중국의 점포들이 기대 이상이라는 평판의 실체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먼저 찾았던 콜롬비아 서클은 1920년대 미국 콜롬비아 군대들이 주둔했던 장소를 리모델링한 곳이었는데 오픈형으로 과감하게 지붕을 제거한 수영장을 가운데 두고 사각의 복도로 빙 둘러진 공간이 세련된 다이닝과 Bar로 사용되고 있었다. 사진으로 먼저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조명과 멋지게 꾸민 젊은이들이 더해진 현장의 분위기는 기대 이상으로 이국적이고 새로웠다. 엔틱 한 수영장이 이렇게 멋진 조망이 될 수 있다는 구조적인 발상은 누가 어떻게 떠올린 것일까 집요하게 부러워졌다. 이 스폿이 가장 시그니처 하긴 했지만 콜롬비아 서클은 일종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몇 개의 건물 동과 그 사이 광장과 공원들로 어우러진 곳이었다. 한국의 코오롱 스포츠도 굉장히 큰 규모로 플래그십 스토어를 단독 구성해서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이번 상하이 탐방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낸 곳은 역시 과거의 원형을 살리면서 내부를 아트와 서적의 Curation으로 탈바꿈시킨 츠타야 서점이었다. 비록 언어적인 한계로 부분적인 이해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건물의 최초 설계도나 유지된 기둥의 흔적들을 과장되지 않게 보존하며, 지금의 세대와 시대를 위한 지식과 생각들을 융화시킨 균형감이 아름다웠다. 그 건물이었고, 츠타야였기에 선보일 수 있는 좋은 합의 분위기였다. 상해라는 대도시에서 잠시 시공간을 떠나는 타임슬립 같은 공간이라고나 할까. 


또 하나의 장소는 치엔탄 타이구리 쇼핑몰 내의 옥상까지 이어지는 상층부의 츠타야였다. 친구 회사의 상해지사가 인근에 있는 곳으로 도심에서 다소 떨어져 있지만 럭셔리 호텔과 외국계 비즈니스 지구가 조성된 입지였다. 쇼핑몰에는 명품 브랜드가 대거 입점했었는데 누데이크, 젠틀몬스터가 입점되어 있어 반가웠다. '큐브릭'이라는 영화서적 전문 북카페를 마주한 곳에 자연 채광을 받으며 3층에서 4층으로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원형의 동선 상으로 츠타야가 보였다. Wellness를 테마로 조성된 쇼핑몰의 러닝 트렉이 그려진 옥상공원과 연결되는 서점은 자녀들을 동반한 가족들로 북적였고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 만화 섹션이 붐볐다. 좀 더 시간을 들여 공간들을 살펴보니 콜롬비아 서클에서도 보였던 일본 문화 섹션이 꽤 농도 짙게 구성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만 원에 이르는 일본식 도자기와 장식품들이 진열된 미니 쇼윈도를 지나니 이 쇼핑몰에서의 츠타야는 서점계의 명품 격으로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건너편 디올 플래그십의 맨 위층 카페에서 프라이빗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일까. 



[ 잠시 걸쳐보는 화려함 ] 

 친구가 미리 예약해 둔 와이탄의 bund 18 빌딩 내 미슐랭 1 스타 레스토랑 'Hakkasan'에서 마지막 저녁 만찬을 가졌다. 여러 음식 중에서 제일은 캐비어를 얹은 광동식 북경오리였다. 동방명주의 오색찬란함을 마주하는 찰나의 즐거움이었다. 절마저도 금으로 만든 장안사, 여전히 남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풀리호텔, 바이블처럼 여겼던 Reel 백화점의 사라져 버린 중수거 서점과 취미 공방들, 요즘 인기라는 브랜드의 커피를 마시며 현기증이 날만큼 다채로운 상하이의 풍경들을 곱씹어보았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그 퍼즐의 한 부분씩만 바라보며 그 맛을 음미하기 위해, 결국 다시 나는 이곳에 오게 될 것을 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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