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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 클레어 Feb 06. 2022

전지적 '선거' 시점, '근현대사'라는 미완결판

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선거로 읽는 한국 정치사」를 읽고  


 고백하건대 '근현대사'는 내 적잖은 아킬레스건의 하나였다. 어린 날 무엇을 바라 흑백사진 속 돌덩이와 토기 분간에 에너지를 쏟은 것인지. 선사시대와 왕정시대를 맴돌던 국사의 추억은 정작 오늘에 가까운 그때의 과거에 닿지 못했다. 허구가 가미된 영화와 드라마만으로도, 시인의 울분과 절규만으로도 몸서리 처지던 나는 그날들의 진실을 직시하기 두려웠던 걸까. 그렇게 가려진 시간 사이로 이 땅에 태어나 산전수전을 다 겪은 주인공 '선거'는 어느덧 칠순을 넘겼다.


그렇다. 대한민국 민주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선거가 있었다. 직선제를 상실한 채 '체육관 대통령'의 제4, 제5공화국이 이어지던 시절에도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국민은 여당과 야당의, 아니 그 스스로의 공동체적 운명을 일부 일지라도 결정해왔다. 서슬 퍼런 독재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도, 불합리한 제도와 방해공작의 기막힘 속에서도 꿋꿋이 입후보의 길에 올랐던, 사라지는 투표함을 경시하지 않았던 그날의 누군가들 덕분에 오늘 내 손의 한 표가 허락되었다.


그때 그 시절 선거의 결과만이 아닌 과정과 시도를 반추할 수 있어 좋았다. 결과적으로 당선되지 않았다고 해서, 판도를 뒤집지 못했다고 해서 아무 일도, 아무것도 아니었던 건 아니다. 유신헌법 하 9대 국회의원 선거로 여당 민주공화당이 38.7% 득표로 146석을 얻고 야당 신민당이 32.2% 득표로 52석을 얻은 불공정한 결과 이면에, 독재 하에서도 야당을 지지한 61.3%의 국민이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선거를 통해 정치라는 생물의 꿈틀거림을 목도한다.


'기권은 중립이 아니다. 암묵적인 동조다' , '당신이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은 다해서 정치가 당신을 자유롭게 두는 것은 아니다' 같은 주옥같은 구절들이 의미심장한 요즘이다. 모 후보의 지지율 등락에 기분이 좌우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그분의 무료함을 걱정해야 할지, 나의 냉정함을 반성해야 할지 고민이다. 아직도 내용보다 형식을, 과정보다 결과를 앞세우는 직장 임원을 바라보며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절의 잔재를 이해해야 할지, 이제라도 소심한 반기를 들어야 할지 헷갈린다. 그래서 대관절 어떤 공약과 비전들을 갖고 있는지 궁금한데 하필 내가 나타날 때마다 속절없이 가십거리만 재잘거리는 거실 TV가 얄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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