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고수는 관점이 다르다
한때는 수십 장의 보고서를 만들면 뿌듯했던 적이 있다. 어찌 되었든 뭔가 많이 있으면 뭐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보고서의 페이지를 늘리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페이지를 늘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불필요한 이야기가 들어가고 말하고 싶은 내용은 점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정말 어려운 일은 수십, 수백 장의 기획서를 만드는 일보다 정말 짧게 한 장으로 기획서를 만드는 일이다. 이렇게 요약을 하다 보면 말 그대로 기획서 내용을 축약하게 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이 기획서를 보는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느냐이다.
많은 사람이 상사가 한 장으로 요약해오라고 하면 보고서의 모든 내용을 다 넣어서 요약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항상 한 장에 모든 내용을 넣는 게 너무 힘들다고 토로한다. 당연한 일이다. 수십 장의 내용을 어떻게 한 장에 다 넣을 수 있겠는가? 계속 축약을 하다 보면 단어만 남아 맥락을 파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계속 축약을 하다 보니 앞 문장과 연결이 이상해지고, 또 해당 문장의 의미도 잘 드러나지 않았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말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주저리주저리’ 계속하는 기획서가 된 것이다. 상대가 정말로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딱 한 마디였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사실 기획서 작성자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많은 자료를 보면서 알아낸 게 얼마나 많은지, 그 내용이 얼마나 중요하고 왜 알아야 하는지를 말하고 싶어 한다.
또 자신이 밀고 있는 기획안이 어찌 되었든 상사라는 문을 통과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설명이 길어진다. 모든 일이 그리 쉽게 되지 않으므로 기획자는 예상 질문과 이슈에 답하기 위해 기획안에 모든 내용을 담으려고 한다. 어찌 보면 우리는 ‘생각의 매몰 비용’에 빠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업을 할 때 자금이 투입되면 투입될수록 부정적인 전망이 나와도 어떻게든 밀고 나가려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생각의 매몰 비용은 제대로 된 원 페이지 기획을 방해하는 걸림돌이다. 생각을 잘하는 방법에 대한 책을 쓴 앨런 제이콥스Allen Jacobs 교수는 이런 생각의 매몰 비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자신의 입장을 마련하고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 그런 입장을 이제 와서 바꾸는 것은 그 모든 노력이 헛된 짓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될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업에서 기획서를 작성할 때 피땀 어린 기획서가 통과되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는가? 혹은 그 피땀 어린 기획서가 통과되지 못해 모든 것이 의미 없는 짓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생각의 매몰 비용에 더 집착하지 않았는가? 원 페이지 기획은 자신이 생각하는 관점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상대에게 가치를 줄 수 있는 기획이야말로 좋은 기획이기 때문이다. 기획안은 결국 상사든 고객이든 상대방의 요구에 부합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상대방의 요구에 부합하는 원 페이지 기획이 될 수 있을까? 다음 문장을 읽어보면서 한번 생각해보자.
"누구를 자신들의 고객으로 보든지 그들이 요구하는 가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원하는 것, 열망하는 것을 만족시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위 문장을 읽었다면, 다음 질문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자.
고객이 원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그 가치는 내가 작성한 원 페이지 기획안에 담겨 있는가?
말하고 싶은 사항이 맞든 틀리든 무조건 나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내용만으로 작성하지는 않았는가?
고객이 알고 싶은 결론은 무시한 채 기획안에 내 생각만 나열해놓지는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