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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글생각 Feb 14. 2018

애매모호한 표현은 보고서의 초점을 흐리게 만든다

보고서의 신이 되는 방법

보고서를 보다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는 식의 '같기도' 메시지를 도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경우, 보고서를 보는 사람은 보고서 작성자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없다. 책임회피를 위해 애매모호한 표현을 쓰는 이런 보고서는 상사로 하여금 결정은 “당신이 알아서 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과 똑같다. 


과거에 한 결혼정보회사가 결혼상대와의 대화 중 내재된 뜻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가장 힘든 표현이 무엇인지에 대한 조사 결과, 남성은 “됐어”, 여성은 “무언의 미소”라고 가장 많이 답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에게 “저녁은 일식으로 갈래?”라고 했을 때, 여성이 “됐어”라고 했다면, 이에 대해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먼저,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면, “나는 저녁으로 일식 먹기 싫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좀 더 깊게 생각해보면, 그전에 서로 싸워서 “지금 내가 저녁 먹게 생겼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것도 아니라면, “내가 요즘 다이어트하는데, 너는 꼭 저녁을 먹어야겠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이렇듯 글자는 딱 2단어이지만 해석은 당시 상황, 남녀 간의 관계, 여자의 상태에 따라 매우 다를 수 있다. 


보고서의 애매모호한 표현도 남녀 간의 관계에서처럼 보고서를 보는 사람이 스스로 지레짐작 해석하게 만든다. 남녀 관계야 그렇다 치더라도, 상사에게 그런 보고서를 던져준다면 상사의 입장에서 그 부하직원을 신뢰할 수 있을까?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좀 더 생각해보라고 애매모호한 표현을 시켰다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박과장 : 김사원, 며칠 전에 준 콘텐츠 사업 중장기 전략 보고서를 읽고 있는데, 

             애매모호한 표현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콘텐츠 사업 경쟁력 평가에서 우리 회사의 콘텐츠 개발 

              역량이 낮다고 평가하고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된다 했는데, 일정 수준이 명확하지 않잖아. 

김사원 : 그게 최소한 현재 경쟁사 역량 수준까지는 높여야 된다는… 

박과장 : 그랬다면, 그렇게 구체적으로 제시를 해야지. 이렇게 일정 수준 높인다고 해놓으면,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 않나. 나중에 역량 제고 방안을 만든다고 했을 때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김사원 : 예...

박과장 : 중기 비전의 경우도 애매모호한 표현들이 있는데…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에 기반해 콘텐츠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는데, 어떤 가치와 어떤 전략이라는 것인가? 이 뿐 아니라 보고서의 

              메시지들이 전부 “고려해볼 필요도 있다”라든지,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등의 애매모호한 

              표현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

김사원 : 정확하지는 않은 것 같아서…


김사원도 분명 애매모호한 표현이 보고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어찌 됐든, 보고서의 애매모호한 표현은 결론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보고서의 목적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김사원의 보고서 메시지의 문제점을 하나씩 짚어보자. 


먼저, 단어 자체가 명확하지 않은 ‘일정 수준’이라는 것부터 살펴보자.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면, 일정 수준으로 역량을 올려야 한다든지, 일정 기간이 필요한다든지, 일정한 간격으로 프로세스를 운영해야 한다든지 등의 말을 많이 쓴다. 하지만이 ‘일정’이라는 단어는 대표적인 애매모호한 표현 중의 하나이다. 보고서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일정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일정 기간이 며칠을 말하는 것인지, 일정한 간격이 어느 정도의 기간을 의미하는지를 파악하기 어렵다. 보고서를 열심히 읽어서 보고서 작성자가 말하는 바를 파악했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그러하지 못하다. 이런 경우에는 현재 역량 수준이 5점 만점에 3점이니 4점까지는 올려야 된다는 식으로 말해야 한다. 또한 최소 3일의 기간이 필요하다거나, 한 달 간격으로 프로세스를 운영해야 한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단어 자체는 명확한데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경우를 살펴보자. 김사원의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이라는 말은 자신이 일하고 있는 부서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즉, 그룹 전략실에서 생각하는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과 마케팅 부문에서 생각하는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이 다를 수 있다. 기업의 비전과 전략이 명확하게 공유되었다 하더라도, 가치와 방향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업의 가치가 정직, 창조, 열정이라고 했을 때, 어떤 가치에 기반을 두고 콘텐츠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방향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이 글로벌 콘텐츠 유통이라고 했을 때, 여기서 말하는 방향이 글로벌 사업을 말하는 것인지, 단순히 콘텐츠 유통에만 집중하는지를 해석해야 한다. 


애매모호한 표현은 보통 형용사나 부사가 붙어서 보고서의 메시지를 더 흐리게 만든다. “진정한 가치”, “최고의 성과”, “매우 필요한”, “비교적 좋은 상황”, “과도한 조치”, “상당한 구매의사”, “대단한 실적” 등이 이러한 사례라 볼 수 있다. 제안을 요청한 회사 나국가 기관에서는 제안서 작성 시 애매모호한 표현과 관련된 제안서 작성 요령을 기재하고 있다. 다음은 국가경쟁력 분석 및 강화 전략 수립 용역의 제안서 작성요령에 나오는 사항이다.


1) 제안 내용은 꼭 필요한 사항 위주로 명료하게 작성하여야 하며 불확실한 용어의 사용 및 추상적인 표현은 

     하지 말아야 한다

2) 제안서의 각 요구사항에 대한 응답으로 “할 수 있다”, “가능하다”, “고려하고 있다”, “가능하다고 본다” 

     등의 애매모호한 표현 은평가 시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처럼 애매모호한 표현은 보고서를 보는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제안자가 “A라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혹은 “가능하다고 본다”는 것은 향후 상황에 따라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곧 어떤 상황을 가정하고 메시지를 작성한 것이다. 


예를 들어, “기본 방향은 A임. 하지만 상황에 따라 B가 될 수도 있음”, “향후 매출 추이를 보면서 투자 규모를 산정할 필요가 있음”, “대리점은 수익성이 제 1원칙이지만, 지역에 따라 규모 확대를 고려함”이라는 표현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표현들은 어떻게 바꾸는 것이 좋을까? 첫 번째 문장은 어떤 상황인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A를 추진하지만, 매출이 10% 하락하면 B로 바꿈”으로 수정하면 좋다. 두 번째 문장은 언제까지인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향후 3년간 매출이 10% 이상 성장하면, 투자 규모를 재조정함”으로 바꾼다. 세 번째 문장은 어떤 지역인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경쟁사 대비 대리점 수가 20% 이상 부족한 경우, 규모를 고려함”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 


이처럼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는 문장은 가능한 명확하게 기준을 설정해 보고서 내용을 실행할 때 문제가 없도록 해야 한다. 애매모호한 표현은 보고서의 내용을 실제로 이행하는 사람들에게 큰 혼선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본 내용은 <보고서의 신(박경수, 더난출판)>  내용의 일부입니다.
보고서의 신 더보기: HTTP://goo.gl/XTCrf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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