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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글생각 Jan 01. 2019

목욕탕_씻는 곳에서 가꾸는 곳으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어렸을 적, 동생이랑 주말이면 재래시장 길을 지나 시장 끝 한 모퉁이에 있는 대중 목욕탕을 가곤했다. 지금처럼 욕실이 있는 집이 아니어서 몸을 씻으려면 목욕탕을 가거나 욕실이 있는 집에 갈 수 밖에 없었다. 목욕탕에 가면 옷을 벗고 체중계에 올라가 몸무게를 재고 빨간 타월을 하나 들고 탕에 들어가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때로는 탕에 들어가기 전에 이발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탕에 나와서는 TV를 보며 손톱이나 발톱을 깎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목욕탕은 몸을 씻는(세신洗身) 장소는 아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중학생 시절에는 어른들과 같이 가지 않으면 목욕탕은 놀이의 장소였다. 몸은 대충 씻고 온탕과 냉탕을 넘나들며 좁은 탕에서 물튀기며 한참을 놀다보면 어느새 몸은 자연스레 깨끗해진 것 같았다. 특히, 한 여름이면 냉탕에서 잠수를 하며 한 창을 놀다 나왔다. 


어쩌면 목욕탕은 정을 나누는 장소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목욕탕하면 떠오르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목욕관리사인 ‘때밀이’다. 나는 때밀이를 이용해본 적은 없다. 왠지 내 몸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도 이상했고 또 돈을 주고 때를 밀어야 하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때밀이에게 때를 미는 것을 보고 있으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이런 때밀이도 언제부터인가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등을 밀 수 있는 때밀이 기계가 나왔던 같다. 목욕탕에서 때를 미는데 있어 가장 힘든 부분이 등 가운데였기 때문에 이런 기계가 나온 듯하다. 의자에 앉아 때밀이 기계에 등을 좌우, 위아래로 움직이며 때를 밀던 그 모습은 왠지 우스웠다. 그래서일까? 그 때밀이 기계는 그리 잘 팔리지는 않았던 같다. 금방 그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때밀이 뿐인가? 이태리타월도 목욕탕의 대표적인 상징물 중의 하나였다. 녹색, 빨간색, 노란색 등의 이태리 타월은 목욕탕의 필수품이었다. 이태리 타월을 손에 끼고 몸을 밀기 시작하면 아프기도 하지만 왠지 때가 정말 잘 밀어지는 느낌도 들었던 것 같다. 그 후 몸은 시뻘게 졌지만 목욕탕을 잘 오길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욕실에서 이태리타월을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부드러운 타월이 많이 나왔고 등도 밀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처럼 시원한 느낌은 왠지 없다. 그래서 가끔은 이태리타월을 사용해보기도 한다. 그런데 여전히 아프다. 


이런 목욕탕의 수는 2002년 9,344개에서 2012년 6,779개로 줄었다고 한다. 지금 그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수도권에서 산다면, 과거 같은 대중목욕탕을 주변에서 보기 쉽지 않다. 지금은 아파트, 원룸, 주택 등에 욕실이 있어서 굳이 목욕탕을 가지 않아도 집에서 편하게 목욕이 가능하다. 그래도 여전히 목욕탕을 고집하시는 분들이 있다. 넓은 공간에서 마음껏 편하게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며 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뿐 이겠는가? 집에서 혼자 조용히 씻는 것보다 목욕탕에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혹은 과거의 추억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목욕탕은 완전히 없어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과거 대중목욕탕은 사라지고 있지만 사우나, 스파라는 이름을 달고 우리 곁에 여전히 있다. 물론 그 기능도 과거와 다르다. ‘몸을 씻는 것’ 보다 ‘몸을 가꾸는 곳’으로 바뀌었다. ‘찜질방’, ‘24시간 불가마 사우나’, ‘스파월드’ 등의 이름을 단 간판이나 여행지가 바로 그 곳이다. 더 나아가 보면, 스파펜션이나 스파를 할 수 있는 호텔 등은 가족여행 장소로도 자주 활용된다. 그 곳에서 과거처럼 몸을 씻는 일은 보다는 몸의 피로를 풀거나 피부를 가꾸기도 한다. 또 친구, 연인, 가족끼리 모여 식혜나 구운계란을 먹으며 수다를 떨며 하루를 보낸다. 


나 또한 몇 달전 스파가 있는 리조트에 가서 다양한 스파 시설을 이용했던 기억이 난다. 탕도 다양하지만 어깨, 발, 전신 등을 마사지 해주는 탕에서 한창을 놀다왔다. 이 뿐인가 무슨 무슨 테라피 시설 등이 있어 쑥 향기가 가득한 곳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진흑팩을 하기도 했다. 과거 목욕탕은 탕에서 조용히 있다만 와야 했지만 어깨, 발, 전신 등을 해주는 탕을 왔다갔다 하다 보니 2~3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과거 목욕탕은 말 그대로 몸을 씻는 일만 하면 1~2시간 안에 끝났지만 스파나 사우나는 반나절 이상을 보내게 된다. 전문 맛사지를 받을 수 도 있고 몸에 좋은 다양한 방에 들어가 숙면을 취하고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대의 목욕탕은 몸을 관리해주는 복합기능시설로 변모했다. 


이는 욕실에서 목욕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이점이 있어야 지금의 찜질방, 사우나, 스파를 이용할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넓은 공간, 큰 냉탕과 온탕은 더 이상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없다. 사람들은 그 이상을 원한다. 씻는 것은 굳이 목욕탕이 아니어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욕탕은 어쩌면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목욕탕이 많던 70~80년대와 달리 지금은 사회가 많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물론, 목욕탕에서 나누던 ‘정’이란 것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을 수 있다. 겉모습만 조금 더 규모가 있고 다양한 서비스를 가진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을 수도 있다. 


과거 대중목욕탕과 현재의 사우나, 찜질방, 스파의 본질은 바뀐 것일까? 기업은 망하지만 산업은 진화할 뿐이다라는 이야기는 목욕탕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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