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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T May 18. 2024

넛지...옆구리 찔러 '현명한 선택' 유도하기

리처드 탈러, 캐스 선스타인의 '넛지-파이널 에디션'


인간은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아닌
타성적이고 주변에 영향 받는 존재
선택권 보장·나은 삶 유도 '넛지' 제안
美연금, 기본 설정하니 가입률 37%P↑
공제액 작은 보험은 들수록 손해
대학건물 설계, 교수 간 우연한 만남 유도
"기후위기 대응, 이콘 아닌 인간임에 희망"


#당신은 구내식당에서 주로 점심을 먹는 직장인입니다. 뷔페식으로 음식들을 골라 먹을 수 있는, 구내식당만큼은 복지 만점을 자랑하는 회사에서 말이죠. 오늘도 점심을 먹으러 구내식당에 내려갑니다. 야채 샐러드가 먼저 보이네요. 요즘 비싸다는 사과와 양배추가 풍성하게 들어있고 그릭요거트가 곁들어져 있습니다. 당신은 별 생각없이 샐러드를 집어듭니다. 좀 더 들어가니 평소 먹던 고칼로리 음식들도 보이지만, 이왕 손에 든 거 '오늘은 건강식이다' 싶어 샐러드로 점심을 정합니다. 


당신이 손에 든 샐러드는 '사원 건강프로젝트'의 일환일 수 있습니다. 사원 건강을 증진함으로써 의료 복지비나 병가로 인한 업무지장 등 회사에 끼치는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인사과의 큰 계획의 하나죠. 영양사는 식단 자체는 평소대로 짰지만 다만 샐러드 같은 건강식을 사원들이 먼저 볼 수 있도록 배치한 것이죠. 


지금은 인지심리학의 고전처럼 돼 버린 책 '넛지'에서 소개하는 넛지의 한 예를 최대한 국내 실정에 맞춰 옮겨봤습니다(책에는 미국의 고등학교 급식 사례가 소개돼 있는데, 한국과는 시스템이 다르니까요). 


넛지는 '옆구리를 푹 찌른다'는 뜻에서 파생돼 '작은 행동으로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행위'를 뜻합니다. 위 사례에서는 제공하는 음식 자체는 평소대로라도 음식 배열만 바꿔서라도 사원들로 하여금 건강에 좋은 음식을 고를 수 있도록 유도하는 행위가 넛지였습니다. 

저자들은 인간에게는 이런 넛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왜냐고요?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콘'이 아니다...정해진 환경 잘 안 바꿔

저자들은 '현실세계 인간은 정통 경제학에서 제시되는 합리적 결정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전제에서 넛지를 제시합니다. 전통 경제학에서는 인간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용을 얻는 합리적 존재로 가정합니다. 


그러나 실제 인간은 그렇지 않죠. 제 사례를 들자면 몇년 전 휴대전화를 2년 약정으로 보조금을 받아 새로 사면서 첫 3개월 9900원짜리 OTT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조건을 들었습니다. 전 그 OTT를 전혀 이용하지 않았고 이를 까맣게 잊고는 2년 약정기간이 끝날때가 돼서야 이 사실을 알고 해지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용하지도 않은 OTT 요금이 20만원 넘게 나간 뒤였습니다. 


저자들은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슬기슬기 사람)'일 뿐이니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학적 사람)'이 아니라고 구분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일상 주변에서 늘 만나는 '인간'과 이상적이면서 현실에서 흔치 않은 '이콘'으로 구분합니다. 이콘은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준말이지만, 저자들은 비잔틴 성상화(Icon)도 염두에 두고 작명을 했을 것 같습니다. 경제학적이면서도 이상적인(현실에서 볼 수 없는)이라는 뜻으로요. 


인간은 타성적 존재...'바람직한' 기본설정을 해놓는다면?

저자들은 인간이 지독히도 타성적인 존재임을 여러 차례에 걸쳐 설명합니다. 큰 궤는 앞서 말씀드린 제 '핸드폰 약정 사례'와 같습니다. 


미국에서 기업들이 근로자에게 제공하는 근로자 연금 중 '확정기여 방식 연금'이 있다고 합니다. 해당 연금 납입금은 세금이 공제되고 이렇게 축적되는 금액에는 세금이 유예되고, 또 고용주는 근로자가 기여하는 금액의 50%를 특정 한도에서 부담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근로자들은 이 연금에 잘 가입하지 않습니다. 그냥 잘 모르고 귀찮아서 말이죠. 그러던 중 브릿지 미드리언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가 일하던 한 한 기업에서는 자동가입방식을 채택했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 옵트아웃, 채용시 일단 이 연금에 가입하는 것으로 기재해 놓고 근로자가 원할 경우 이를 해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이전에 옵트인(근로자가 별도로 등록) 방식으로 진행할 때는 입사후 1년 이내 해당 연금 가입률이 49%였는데, 옵트아웃으로 바꾼 뒤 가입률이 86%로 오른 것입니다. 


이 밖에 기억해 둘 것

-기본설정(옵트아웃)을 통해 어떤 활동 참여율을 높일 수 있다. 

-비슷한 방식으로 기준점을 어떻게 제시하느냐로 상대방과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동대문시장에서 옷가게 주인이 바가지 씌워 높게 부르면 호갱들은 거기에서 몇천원만 더 깎으려고 한다)

-다만 그 수치가 너무 과하면 역효과를 불러온다. (여름철 에어컨 기본 온도를 1~2도씨 높이면 사람들은 그대로 쓰지만, 3도씨 높이면 그냥 에어컨 목표 온도를 낮추기 시작한다)

-보험은 되도록 공제액이 큰 보험을 들어라(공제액이 작아지는 만큼 보험료는 비싸진다. 그런데 보험금을 받을 일은 매우 희박하게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공제액이 작은 보험의 경우 보험료만 더 낼 확률이 높다.)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다(이를 이용해 '주민 90%가 투표했다'는 말로 투표율을 높일 수 있다) 

-사람은 자기 의견을 흔들림 없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사람 쪽으로 움직여진다. 

-공간 구성도 넛지가 될 수 있다(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건물은 교수들간의 우연한 만남을 촉발하도록 설계했다. 교수 연구실은 건물 가장 위 3개층에 있고 열린 계단으로 연결했다. 반면 교수들이 학장, 교직원, 학생들의 동선은 저층에서만 이뤄지도록 해 교수들이 그들과 마주칠 일을 줄였다).


기후위기 대응...이콘 아닌 인간이기에 희망 엿보여

저자들의 '인간론'은 희망적입니다. 다수 심리학책, 인간관계론이 인간을 '멍청하고 감정적인 존재'로 치부하는 데 비해 이들은 '인간이 멍청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너무나 복잡한 것'이라고 바라봅니다. 


또 오히려 합리적·계산적 존재인 '이콘'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영향을 받고, 때로는 이타성을 발휘하는 인간이기에 인류에게 닥친 기후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기후위기는 그 특성으로 인해 해결이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미래보다는 당장의 먹고 살 문제에 관심을 쏟는 편이고, 기후위기와 관련해 지목할 악당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확률적으로 주어질 것이고, 내가 탄소배출을 절감한다고 해서 옆 나라에서 공장을 마구 돌리는데 따른 탄소배출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지구에 존재하는 인간이 모두 이콘이라면 기후문제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신호를 인식하고,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어긋난다 할지라도 기꺼이 그 흐름에 동참하려 한다. 이콘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인간을 긍정합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가상세계의 인공지능 스미스 요원이 희생하는 인간을 이해하지 못해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결국 그 인간이 매트릭스 세계를 무너뜨리지요. 


이콘이 아닌 인간들로 하여금 좀 더 나은 선택을 유도하는 '넛지'를 제시한 책, 넛지였습니다. 


*사족

올해부터 한 주에 책 한 권씩을 읽으며 매주 토요일마다 리뷰를 올리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성장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고, 또 이를 다른 분들과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그런데 매주 책 한권이라는 목표를 채우기 위해 분량이 길거나 어려운 책을 회피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매주 책 한권'이라는 1차적인 목표가 '성장'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악영향을 끼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리뷰를 한주 건너뛰고 약 500쪽짜리 '넛지'를 2주에 걸쳐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기본적으로 한 주에 책 한권을 읽고 리뷰를 쓰겠지만 책 분량과 깊이에 따라 간혹 2주에 한 번씩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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