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분석가로 이름을 알린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강조하는 것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빅데이터 만능주의'를 경계합니다. 그는 오히려 "이 책이 데이터 자체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환상을 깨는데 기여하기를 바란다"라고 강조합니다.
마케터로서 그는 SNS 키워드 등을 비롯한 데이터를 분석해 여기에서 소비 패턴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의뢰 기업에 마케팅 전략을 제시합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게 아니라 그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인과관계란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입니다.
국내에도 상당히 알려진 미국 사례를 들어봅시다. 미국의 범죄율이 1990년대를 기점으로 확 줄어들었던 거죠. 폭력범죄, 재산형 범죄, 살인 등 전반에 걸쳐서요. 미국 사회는 처음에는 실업률 감소나 총기취득규정 강화 등을 그 이유로 추정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원인은 낙태 합법화였다고 합니다. 미국은 1973년에 낙태를 합법화했고, (매우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만약 태어났으면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죠.
이처럼 데이터 속에서 인과관계, 즉 사람의 마음을 읽어 내려면 중요한 것이 통찰력입니다. 저자는 통찰을 얻기 위해 꾸준히 독서를 하고 신문을 읽고 뉴스를 접하라고 조언합니다.
제품이 아니라 고객을, 고객을 넘어 사람을 봐야
저자는 마케터로서 마케팅을 기획할 때 제품이 아닌 그것을 사용하는 고객을, 고객을 넘어 사람 전체를 보도록 노력하라고 조언합니다.
다이어트 식품을 파는 기업의 경우는 생각해 볼까요. SNS 키워드 등을 분석한 결과 다이어트 결심은 주로 밤 9시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고 합시다. 저녁과 후식을 먹은 후 "내일부터는 꼭 다이어트할 거야"라고 결심하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다이어트 식품 업체라면 홈쇼핑 방송 시간을 밤 9시로 겨냥할 수 있을 겁니다.
삼성전자 사례는 어떤가요. 삼성전자는 용량이 적고 삶는 기능이 있는 '아가사랑 세탁기' 판매 대상을 늘어나는 싱글들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합니다. 출산율을 갈수록 줄어드는데 싱글 가구 비중은 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싱글 라이프패턴을 분석한 결과 '팔지 말라'는 결론을 도출했다고 합니다. 싱글은 빨래는 1~2주에 한 번씩 하기 때문에 빨랫감이 엄청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싱글이 주로 거주하는 원룸, 오피스텔은 주로 빌트인 세탁기가 설치돼 있습니다. 만약 제품에만 집중했으면 '소형 제품을 선호하는 싱글들이 영아용 세탁기를 써도 좋겠군'하는 섣부른 판단을 내렸을 겁니다.
화장품 업계로 가보죠. 중국에서는 '뷰티 푸드'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한국·일본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고 합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중국서 콜라겐 드링크를 출시해 큰 매출을 얻었다고 합니다. 식문화상 먹는 것을 통해 몸이 좋아지는 것에 대해 한국보다 중국에서 보다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통계를 활용한 마케팅입니다.
저자는 우리 기업의 비극을 주 소비계층과 기업 의사결정권자간의 괴리에서 찾습니다. 주요 소비층은 20~30대 미혼들인데 회사의 주요 결정을 주로 50대 이상 기혼 남성인 경우가 많은 CEO들이 내립니다. 50대 이상 남성은 사실 '소비력'이 적어서 마케팅 관점에서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계층인데도 말이죠. 그래서 더더욱 큰 기업 입장이라면 함부로 소비자가 이러이러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말고 데이터를 보고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상이 아닌 일탈에 집중할 것
저자는 소비 현상을 일상과 일탈로 구분합니다. 대형마트 장보기는 일상이지만 쇼핑은 일탈입니다. 일상적인 구매에서는 경제성이 중요하지만, 쇼핑은 그 자체가 이벤트이며 충동적이기에 경제성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건을 만들어 파는 입장이라면 당연히 일탈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저자는 고맙게도 사람들이 충동구매를 많이 하는 시간대가 오전 11시, 오후 2시, 밤 9시라고 짚어줍니다. 소셜 네트워크에 이 시간대에 '지르다'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네요.
점심시간 직장인들이 스타벅스 들고 산책하는 이유
제품 자체보다 사람을 보는 저자의 시각은 직장인들의 생활 패턴으로도 향합니다.
광화문 업무지구의 점심시간. 밥을 먹고 난 직장인들이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 산책을 합니다. 목에는 사원증을 걸친 채로요.
저자는 이를 직장인들이 '내가 아직은 주류사회에서 잘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며 위안을 얻는 의식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점심시간 커피는 비싼 브랜드를 선호한다네요.
이에 비해 오후 4시의 커피는 브랜드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시간대 '커피 한잔'은 직장 동료들과 상사 뒷담화를 하며 애환을 달래는 시간과 동의어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남들 눈에 잘 띄지 않고 아늑한 공간이 중요합니다.
이를 저자는 기깔나게 표현합니다.
"우리가 마시는 것은 커피가 아니다. 아침에는 각성, 1시에는 위안, 4시에는 해우소라는 감성을 커피에 비유한 것이 불과하다"
업무지구에서 카페를 차리려면 커피 품종이나 맛에만 신경 쓰는 장인정신보다는, 주 타깃인 직장인들의 선호에 맞는 브랜드, 분위기, 좌석 간 간격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現 직업 47% 사라진다는데...業 정할 때 생각해야 하는 3가지
데이터 분석가인 저자는 미래 직업에 대한 전망도 내놓습니다. 인공지능 발달로 콜센터 상담사, 회계사, 소매판매업, 기자, 부동산중개인 등 현재 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이란 연구도 있었죠.
직장인으로서는 자기 자체 경쟁력을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우리네 기업은 어떤가요. 몇 년마다 부서를 바꾸면서 직원들로 하여금 전문성을 쌓을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안습니다. 이는 기업의 근본적 속성이기도 하지요. 기업은 어떤 특정 한 사람에 의존하지 않고 운영돼야 하므로 구성원 모두를 대체가능한 존재로 조직합니다.
그러나 직장인 개인으로서는 이런 회사의 전략에 그저 순순히 무장해제 당해서는 안 됩니다. 그 회사를 벗어나서도 써먹을 수 있는 '경력'을 만들어야 하죠. 저자는 "업을 정할 때는 내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 일이 사회적으로 유용한가 △내가 잘할 수 있는가 △남이 할 수 없는 일인가를 기준 삼고요.
한마디로 우리 모두 장인이나 예술가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충주시 유튜브 '충TV'의 김선태 주무관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홍보맨' 김선태 주무관 없는 충TV가 가능할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반면 김 주무관은 이제 충주시청을 벗어나서도 업을 충분히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김 주무관은 대기업과 다른 정부부처에서도 꾸준히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천객만래...빛이 나는 인간 존중 마케팅
송길영 씨의 마케팅은 '인간에 대한 존중'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빛이 납니다.
저는 요즘 마케팅과 인간심리, 인간관계에 대한 책을 일주일에 한 권씩 읽고 있는데요. 결국 그 초점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제가 최근 읽은 인간관계 자기계발서도 타인을 '감정에 휩쓸리는 단순한 존재'로 전제하는 경우가 있었고, 마케팅책도 '그저 돈을 벌면 그만이다'라는 식으로 소비자를 사실상 기만하는 편법까지 가르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상상하지 말라'는 소비자를 넘어 인간에 대한 존중이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여기에 통찰을 더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단지 이를 담백하게 마케팅에 얹는 방식만으로도 소비자들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이죠. "상대가 생각을 갖고 있고, 그 생각이 나보다 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말에서도 이 같은 그의 태도가 느껴집니다.
"1000명의 손님이 1만 번 찾아오면 그 가게는 망하지 않는다(천객만래)" 인간 존중이 담긴 데이터 마케팅을 소개하는 책 '상상하지 말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