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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T Aug 24. 2024

노벨경제학상 부부의 트럼프 '반이민·보호무역' 정면비판

아비지트 베너지·에스튀르 뒤플로의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노동력은 경제학 가정만큼 자유롭게 이동 못해
취약층에게 터전 옮기는 것은 생존을 건 모험
"저숙련 이주민에 일자리 뺏겨" 분노 나오지만
현지인 관리자로 승진·여성 사회진출 도움 돼
오히려 고급 노동 이주민에 현지인 타격 더 커
美공화당 J.D. 밴스 '낙후지역 지원 펀드' 설립
자금 댄 제프 베이조스도 아마존 본사 안 옮겨
무역에 피해 입은 노동자 지원책 강화안 제시


"(무역이 각국의 자본과 노동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스톨퍼-새뮤얼슨의 세계에서) 일자리를 잃은 펜실베이니아의 철강 노동자가 그가 구할 수 있는 다른 일자리로 즉시 옮겨갈 것이라고 가정된다. 하지만 노동시장은 경직적이다."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비지트 베너지·에스튀르 뒤플로 부부의 책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은 경제학 이론과 노동자들의 현실 사이의 격차를 지적합니다.


이 책을 쓰던 시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1기 집권기'였습니다. 저자는 다른 진보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트럼프의 반이민, 보호무역 정책을 경악해하며 이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Good Economics for Hard Himes’ 어려운 시절을 위한 좋은 경제학입니다. 찰스 디킨스의 '어려운 시절'을 패러디했습니다. 또 'Make Economics Great Again’이라며 트럼프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을 풍자합니다.


올해 미국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트럼프는 2016년 첫 당선 때도 '불법 이민자가 자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르 빼앗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잘 알려졌다시피 이는 전통적 백인 노동자 계층에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취약계층들이 단순히 일자리만 보고 이동을 하지는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이주민들이 자기 나라에 머물 수 없겠다는 절박함을 느끼게 된 것은, 멕시코 북부에서 벌어진 마약과의 전쟁이나 과테말라의 끔찍한 군부 독재 혹은 중동의 내전 등이 불러온 끔찍한 폭력과 예측 불가능성으로 일상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에서 경제 위기가 정점이던 2010~2015년 그리스를 떠나 이주한 사람 수는 35만 명 미만이었는데 이는 전체 인구 중 3% 정도라고 합니다. 적은 수치는 아니지만 그리스가 EU 회원국으로서 EU 국가 사이에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이처럼 경제학 이론과 달리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단순히 일자리를 찾아서 전혀 모르는 새로운 곳으로 터전을 이동하는 것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저자들은 재차 강조합니다. 아비지트는 고향인 인도의 사례를 자주 드는데, 인도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쌓아놓은 자본도 없는 상태에서 잘 알지 못하는 도시에 나가 취업을 하는 시도 자체가 생존을 건 모험이 될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이주민이 현지 경제에 오히려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주 노동자의 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보통 수요-공급 곡선을 듭니다. 국내 일자리는 한정돼 있는데 값싼 외국 인력이 들어오면 일자리 수요가 증가하면서 임금이 낮아지고, 이는 국내 비숙련 노동자들의 임금 하락 또는 실직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주' 노동자의 경우 수요 곡선 자체를 오른쪽으로 이동시킨다고 지적합니다. 이들이 노동을 공급할 뿐 아니라 이주한 곳에서 밥을 사 먹고 옷을 사면서 경제 규모 자체를 키우고 이에 생산에 따른 노동 수요를 늘린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이주'를 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가령 체코 노동자들이 국경 넘어 독일의 공장으로 출근해 돈을 버는 것은 독일의 일자리를 늘리지는 못합니다. 이들은 저녁이면 다시 체코로 돌아가서 체코에서 돈을 쓰기 때문입니다.


비숙련 외국인근로자(E-9) 등 우리나라의 고용허가제는 이 독일 사례와 더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들의 국내 근무 연한은 최장 4년10개월(특례 적용 시 4년10개월 추가)로 정해져 있고 이들은 일반적으로 돈을 열심히 모아 자국에 돌아가서 경제활동을 일으킬 기반으로 삼습니다.


물론 추석 명절이면 외국인 근로자들끼리 삼삼오오 기차 여행도 가기도 하는 등 외국인 근로자들도 예전처럼 무조건 돈을 본국으로 보내지만은 않는 듯합니다. 그러나 영주 목적으로 오는 노동력보다는 국내 경제 규모를 늘리는 효과는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이주 노동자들이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또 있습니다. 이주 노동자들이 도입되면 국내 저숙련 노동자들의 역할은 관리자 성격으로 승진할 수 있습니다. 내국인 노동자들은 소통 능력에서 이주 노동자들에 비해 우수하기 때문에 낮은 임금의 노동 시장은 이주 노동자들이 채우더라도, 이에 내국인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빼앗기기보다는 이들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또 저숙련 이민자들의 도입은 현지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는 효과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저숙련 이민자들이 육아나 노인 돌봄, 가사 노동 등 현지인들이 꺼리는 일을 맡게 되면, 이 서비스를 비교적 저렴할 수 있게 되면서 여성 노동자들이 더 경제활동에 참가할 여력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9월부터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도입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필리핀인 100명) 시범사업이 시작됩니다. 내년에는 1200명을 도입하고 사업 지역도 전국으로 확대합니다. 이들이 국내 여성들의 육아 부담을 줄이고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일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ILO(국제노동기구) 협약 이슈 등과 맞물려 이들도 최저임금법을 적용받기 때문에 내국인에 비해 극적으로 저렴한 돌봄 서비스를 받지는 못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또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이주자가 현지인을 낮은 임금으로 치고 들어올 여지는 저숙련 직종보다 고숙련 직종에서 더 크다고 지적합니다. 가령 간호사 자격증을 가진 이민자가 현지인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겠다고 한다면, 병원으로서는 당연히 그를 채용할 겁니다. 책에서 제시한 연구에 따르면, 자격증이 있는 외국 출신 간호사가 한 명 고용될 때마다 그 도시에서 미국 출신 간호사 1~2명의 고용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저자들은 또 한 축으로 무역이 주는 이익과 이 과정에서 어떻게 노동자들을 보호할지에 역점을 둡니다. 현재 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J.D. 스의 출세작 '힐빌리의 노래'에서는 중국과의 무역으로 타격을 입은 애팔래치아 지역이 나옵니다. 지역 제조업이 무너지자 고용이 크게 감소합니다.


여기서 저자들은 이들 지역에서 노동력이 새로운 종류의 일자리로 옮겨가는 재분배 효과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또 이들은 주변에 무역으로 이득을 얻은 지역이 있어도 그리고 옮겨가지 않았습니다. 아까 이야기한 노동 이동의 경직성 때문입니다. 이 지역은 더욱 낙후됩니다.


J.D. 스는 이렇게 낙후된 지역을 되살리고자 '나머지 세상의 부상을 위하여'라는 이름의 펀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제프 베조스, 에릭 슈미트 등 미국의 유명한 억만장자들이 투자에 참여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저자들은 이 펀드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제프 베조스는 이 펀드를 지지하지만 아마존 제2본사를 디트로이트로 올리지는 않았습니다. 고급 인력을 필요로 하는 신규 사업장을 설치할 때는 이들이 고용할 고급인력이 기꺼이 올만큼 지역 인프라가 마련돼 있어야 하는데,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낙후된 지역에 가려고 하는 고급 인력은 별로 없으니까요. 우리나라도 지방에 혁신도시를 짓고 많은 공기업을 지방으로 이전한 결과, 해당 공기업들의 취업 경쟁력이 낮아지고 고급 인력을 유치하기 어려워지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저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유무역을 옹호합니다. 그로 인해 그 지역 경제 규모는 키울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에서 그 자유무역으로 인해 타격을 얻은 노동자들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는 점을 문제 삼습니다. 그래서 무역으로 피해를 본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실업자가 학교 다니는 동안 실업 보험을 연장하는 조치를 결합하거나 나이 많은 노동자들을 해고하지 않는 조건으로 무역으로 피해를 입은 기업들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들을 제안합니다.


이 책은 '어려운 시기'로 정의된 트럼프 1기 시절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쓰인 책입니다. 트럼프가 또다시 대선에 나선 지금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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