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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T Nov 16. 2024

1인자 되면 약자 보호...침팬지에서 보는 파워게임

프란스 드 발의 '침팬지 폴리틱스'

네덜란드의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침팬지 폴리틱스'에 1975~1979년 네덜란드 아르험에 있는 뷔르허스 동물원에서 30여 마리의 침팬지 무리를 관찰·연구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제인 구달이 40여 년간 야생 침팬지를 관찰했다면, 저자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물원에 사육되는 침팬지 무리들을 관찰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야생 침팬지 관찰이 본연의 침팬지의 모습을 파악하기에 더 좋을 겁니다. 하지만 인간 연구자가 야생 침팬지를 관찰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개입이 들어가 있지만 동물원에서의 연구는 매일 침팬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데 효율적입니다.


당시 뷔르허스 동물원에는 30여 마리의 침팬지들이 사육되고 있었습니다. 수컷으로는 가장 나이가 많은 원조 1인자 이에룬, 그 뒤를 이어 1인자를 차지하는 라윗과 니키, 저자의 연구 시기 아직 어렸던 단디가 있었습니다. 암컷은 훨씬 많았는데 나이가 많고 암컷들의 구심점이 됐던 마마와 암버르, 호릴라, 이미, 테펄, 그리고 다른 암컷들과 다르게 수컷들과 활동을 많이 했던 파위스트 등이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이 이 책에서 관심 있게 읽을만한 대목은 수컷들이 어떻게 1인자 자리에 오르고 이를 유지하는 가입니다. 1인자 수컷은 다른 침팬지들로부터 '인사'를 많이 받으며 암컷들과 교미하는 횟수들도 다른 수컷들보다 많습니다.


저자가 관찰하던 시기 1인자 자리는 크게 이에룬, 라윗, 니키 순으로 이어집니다. 나이가 많은 이에룬은 젊고 힘센 수컷 침팬지들로부터 자리를 위협받고 실제로 라윗에 의해 1인자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그러나 이에룬은 라윗의 경쟁자인 니키를 지원하고, 이에 의해 라윗이 물러나게 되자 다시 니키의 경쟁자인 라윗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노련한 이 수컷은 1인자와 그 경쟁자 사이에서 캐스팅보트로 활동하며 실질적인 자신의 실력을 유지합니다.


권력을 차지하고 유지하는 데는 개체수로서 절대 다수인 암컷들의 지지를 얻는 것도 중요합니다. 암컷들은 권력 변혁기에 일단은 기존의 1인자를 지지하는 보수성을 보입니다. 새끼를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됩니다. 물론 암컷들 사이에서도 위계가 존재하고 개별적으로 지지하는 양태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도전자 수컷들은 1인자가 되는 과정과 1인자가 된 이후의 과정에서 태도를 달리합니다. 도전자 수컷들은 1인자가 되기 전에는 다른 수컷이 암컷을 괴롭히는데 크게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1인자가 되고 나면 수컷이 암컷을 괴롭힐 때 암컷 편을 들며 수컷을 쫓아냅니다.


1인자 수컷에게는 '보안관 역할'이 의무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차원적인 윤리에 의한 것은 아닙니다. 1인자는 평시 약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해석입니다. 1인자 지위는 개체수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암컷들의 지지가 있어야 유지가 가능한 것이죠.


인간 사회에서도 이 두 가지 원리가 흔히 발견됩니다. 1인자는 2인자를 견제하기 위해 나머지 세력들과 손 잡으려 합니다. 또 일단 권력에 오른 뒤부터는 약자 보호에 나섭니다.


이 책이 나온 뒤 많은 정치인들이 정적을 희화하기 위해 이 책을 인용했나 봅니다. 이 책의 프랑스어판 표지는 프랑수아 미테랑과 자크 시라크 사이에 침팬지가 앉아 두 정치인과 교차 악수를 하고 있는 삽화를 사용했습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침팬지가 정치인들을 희화하기 위해 이용됐다"라며 "이는 유인원을 어떻게 기술해야 하는지에 대한 나의 관점과 상반된다"라고 밝힙니다. 저자는 또 이 책의 25주년 서문에서 "사람을 희화하기 위해 유인원을 이용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유인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라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그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이와는 정반대로, 나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사촌인 침팬지의 행동이 인간 본성에 대한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라고 말합니다. 침팬지 역시 엄연히 정치를 하는 주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네덜란드 아른험의 30여 마리의 침팬지 무리들이나 "회사나 워싱턴의 정치 회랑, 혹은 대학 등 우리의 주변"의 사회적 역학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파워게임으로서의 날것의 정치를 돌아보게 하는 책 '침팬지 폴릭티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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