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로젠의 '경험의 멸종'
"이제 우리는 기술에 대한 접근에서는 아미시가 되어야 한다."
'경험의 멸종'의 저자는 스마트폰과 SNS에 휩쓸려 인류가 현실의 경험을 잃어가고 있다고 맹렬히 비판합니다. 그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디지털 안식일을 지키고 멀티태스킹을 피하고 저녁 식사 테이블에서 휴대전화를 치우라는 식의 균형 맞추기에 초점을 뒀다"라면서 "이제는 이런 것들로 충분하지 않다"라고 확언합니다.
아미시, 한 번쯤 영상이나 사진으로 보셨을 겁니다. 미국에서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아직도 마차를 끌고 다니고 전통적인 농사와 수공예로 생계를 꾸리는 재침례파 계통의 종교적, 문화적 생활 공동체.
저자는 "아미시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전에 '우리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리 가치관에 부합하는가' 질문을 던진다"라며 우리에게 디지털 아미시가 될 것을 권고합니다.
저자의 지적은 아마 한 번쯤은 다들 들어보셨을 만한 내용입니다.
경험은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공간에서 자신의 육체를 통해 즐기는 것이었는데, 이제 사람들은 가상세계에서 다른 사람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접하는데 시간을 씁니다. 물리적으로는 공간에 존재하지만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는 그 공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부재의 현존'이 일상이 됐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의 눈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에 온 신경이 쏠려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성장한 아이와 청년들은 사람의 표정을 읽고 이해하는 기술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공감능력도 떨어집니다. "오늘날 대학생의 공감 능력은 20~30년 전의 대학생보다 약 40% 낮으며, 가장 급격한 감소세는 스마트폰 보급과 추세가 일치한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가 말했듯 "관심은 가장 희귀하고 순수한 형태의 관대함"인데 우리는 점차 서로의 물리적 존재에 시간을 쓰지 않습니다.
손으로 필기하지 않으면 개념적 정리가 잘 되지 않습니다.
아기가 말을 직접 듣는 것과 영상 또는 녹음을 통해 듣는 것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녹음을 이용한 것은 학습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점점 더 지루함을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영상 로딩 시간이 2초 이상이면 영상 보기를 포기합니다. 자동차 운전자가 다른 운전자들에게 느끼는 분노 '로드 레이지' 정도도 늘어났습니다.
지루함이 사라지며 창의력도 자취를 감춥니다.
여행의 즐거움도 사라집니다. 여행은 준비하고 계획하는 즐거움이 큰 데 이것을 즉각적인 온라인 기술로 해결해 버리고 있지요.
여행지에 가서도 그곳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인스타그램에 찍을 사진을 찍느라 바쁘지요. "비디오카메라로 휴가 전체를 촬영하는 한 남자, 그는 결코 거기에 있지 못할 것이다"
여행은 일상과의 단절의 필수인데 우리는 여행지에서도 인스타그램으로, 카카오톡으로 연결돼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지요. 우리의 여정은 안전한 '관광'에 머뭅니다.
"여행은 예상치 못한 것, 방향 감각을 상실한 혼미한 상태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고 관광은 안전하고 통제된 것, 미리 정해진 것이다"
예술에 대한 태도도 변화시킵니다.
예술은 본래 우리에게 인간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보라고 요구합니다. 예술 감상은 나를 잃은 느낌을 주고, 우리로 하여금 빨리 흐르는 시간에 대한 조급하고 불안한 감각을 잃고 몽환적인 상태에 빠지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미술관에 가서도 스마트폰으로 그림을 찍기에 바쁩니다. 사진을 찍으면 오히려 그 작품을 더 기억하지 못하는 데도요(사진 손상 효과).
이런 시대가 올 것을 예측했던 건지 19세기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그림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직접 보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장소(place)들은 공간(space)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공간은 경계가 생기고 인적 요소가 가미될 때 장소가 됩니다.
전통적인 공동체의 근간이 되는 '제3의 장소(카페, 동네 술집, 기타 좋은 장소)'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현실 특권'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이자 벤처 캐피털리스트인 마크 앤드리슨이 제시한 개념입니다. 그는 "소수의 사람들은 의미 있는 경험, 아름다운 환경, 풍부한 자극, 대화하고 함께 일하고 데이트를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사람들이 가득한 현실 세계에 살고 있다"라며 "그 외의 사람들, 인류의 대부분에게는 그런 현실 특권이 없습니다. 그들의 온라인 세계는 그들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물리적, 사회적 환경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저자는 마크 앤드리슨의 주장에 반대합니다.
이 대목을 읽고 더욱더 현실에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온라인게임이나 SNS 등 가상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놀더라도 운동 클럽이나 독서 커뮤니티에서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저는 책 전반적인 기조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편입니다. 다들 휴대전화에 집중하느라 코 앞의 친구나 연인, 가족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무언가 부조리하다고 느낀 적이 있을 겁니다.
저는 스마트폰과 SNS의 폐해를 지적한 '도파미네이션'을 읽은 뒤 약 2년 전부터 스마트폰과의 거리 두기를 실천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실 때 가급적 스마트폰을 호주머니나 가방에 둡니다. 전화가 테이블 위에만 있어도 뇌가 계속 신경을 쓴다고 하니까요.
초기에는 아예 집에 인터넷 전용선 없는 생활을 시도해보기도 했습니다. 7GB+무제한 요금제 스마트폰으로 최대한 버티고 집에서는 유튜브나 OTT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라디오도 샀습니다. 그 가상한 시도는 한 달 만에 실패하고 3년짜리 인터넷망 계약을 했지만요.
내심 이런 욕심은 마음속에 자리합니다. 나는 현실을 사는 '소수'가 되어야겠다고요.
꼭 돈이 많은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스마트폰·OTT에 소비하는 시간을 줄이는 대신 종이 책을 더 읽고 사람들과 만나 얘기를 더 나누고 헬스나 테니스 같은 운동하는 시간을 늘림으로써 말입니다.
다만 저자의 주장은 과도한 면도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저자는 '탈레반급 전통주의자'라는 생각이 맴돌았는데, 책 뒷부분에 저자 스스로 '디지털 기술 아미시가 되어라'라고 충고하는 대목을 보고 섬뜩했습니다.
저자는 '직접 경험 >>>>>간접 경험'이라고 가치를 평가합니다. 하지만 온라인을 활용한 간접경험이 효율성이 높을 때도 많습니다. 우리가 나이아가라 폭포를 직접 볼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이를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겁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더라도 시간이 부족해 직접 폭포를 찾기 어려울 수 있지요.
챡 역시 대표적인 간접 경험 매개물입니다. 책 자체를 숭상할 필요는 없지만 지난 400-500년간 인류가 책의 보급과 함께 지식 공유 양과 전파 속도를 급격히 올려왔단 점은 부인할 수 없지요.
하나의 비유를 들자면 토마토 파스타를 들고 싶습니다. 예전에 한창 파스타를 집에서 해 먹어 봤었는데요. 그때 저는 '진짜'에 꽂혀서 토마토 5~6개를 직접 삶아서 그걸로 토마토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아주 건강한 맛이었지요. 그건 '진짜 토마토' 파스타이었을지언정, '맛있는' 토마토 파스타는 아니었습니다. 우리애게 중요한 건 맛있는 식사지요.
또 업무를 할 때는 온라인 도구를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비행기표를 끊기 위해 항공사에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를 거는 경우는 요즘 거의 없을 겁니다. 대부분 스카이스캐너와 같은 OTA(Online Travel Agency) 플랫폼을 이용하거나 항공사 앱을 이용할 겁니다.
이런저런 생각 속에 저는 다소 오글거리지만 이런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돈이 없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기쁨은 최대한 현실 세계에서 얻자.
대신 업무에 있어서는 온라인 도구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자. 그래서 더 많은 돈을 벌거나 절약하자.
그 돈으로 현실 세계를 더 풍부하게 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