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시스헤테로인가요? 단어의 힘

소설보다 봄 2026 (김채원·위수정·최예솔 작가)

by 생각하는T


'시스헤테로'


이 단어를 읽고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저는 무언가 성 소수자스럽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일본 커뮤니티에서 온 '멘헤라(정신 문제를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은어)'와 어감이 비슷하기도 해서 무언가 일반적이지 않은 쪽의 단어라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표현 자체는 우리 사회가 ‘정상’으로 부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의 줄임말입니다. 시스젠더는 자신이 지정받은 성별과 본인이 정체화하고 있는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헤테로섹슈얼은 이성애자를 뜻합니다. 그러니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은 트랜스젠더가 아닌 이성애자를 뜻하죠.

그런데도 무언가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이 표현이 성소수자가 아닌 이들을 표현하기 위해 고안된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말을 줄임으로써 더 은어스러운 느낌을 풍깁니다. 섬세하지 않은 저 같은 사람들은 '일반인' '정상인'이라는 표현을 쓰겠지만, 성적·인권적 감수성이 높은 이들은 이렇게 조심스럽게 단어를 만들어 냈습니다.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인 제가 이렇게 성 소수자들의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읽은 소설에서 이 단어를 처음 접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최근 읽은 책은 '소설보다 봄 2026'입니다.


'소설보다' 시리즈는 문학과지성사에서 매 계절마다 내는 단편집으로, 각 단편집마다 통상 3편의 소설을 담습니다. 이번 '소설보다 봄 2026'은 △김채원 작가의 '별 세 개가 떨어지다' △위수정 작가의 '귀신이 없는 집' △최예솔 작가의 '서해에서' 등 3편의 단편을 담았습니다.


세 편의 소설이 전반적으로 잔잔한 편인데, 저로서는 성 소수자를 그린 '귀신이 없는 집'이 이 중에서 가장 신선하게 다가왔고 이야기 흐름도 있어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재원은 언뜻 아내와 어린 딸을 호주로 유학 보낸 평범한 40대 중반의 기러기 가장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와 그의 아내 상미만 공유하는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재원은 여성의 옷을 입음으로써 묘한 성적 쾌감을 느끼는 '크로스드레서(cross dresser)'입니다. 이들을 이상한 존재로 보는 시선으로는 성도착증 환자라고 부를 수 있지만, 자신들의 성적 정체성을 긍정하는 이들로서는 가치중립적인 표현인 크로스드레서를 쓰는 것 같습니다.


결혼 전 상미 역시 남장을 하고 재원과 성적 쾌감을 즐기던 일종의 크로스드레서였지만 출산과 육아 과정을 거치며 그 세계를 떠납니다. 여전히 남편의 은밀한 취미 생활을 존중하면서도 "이제 그만 좀 하지"라며 가볍게 핀잔 정도는 주는 관계로요.


이 소설은 그간 집에서 혼자서만 이 취미를 즐기던 재원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난 코요라는 또 다른 크로스드레서와 알고 지내게 되고, 핼러윈데이에 그와 이태원에서 첫 외부 크로스드레싱을 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소설을 보며 공감하는 부분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공감보다는 이런 세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려 합니다. 자신의 배우자가 크로스드레서임을 알고도 기꺼이 결혼과 출산·양육을 함께 하기로 하는 상미 같은 사람이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저는 그런 존재를 상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머지 두 소설은 제게는 너무도 잔잔하고 소소한 얘기를 담아 지루한 일본 예술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별 세 개가 떨어지다'는 죽음을 곁에 두고 사는 노인과 그를 찾은 두 손녀를, '서해에서'는 한 명의 후진 남자친구와 시차를 두고 연애하고 헤어진 주인공과 용서해라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꼭 소설이 스펙터클 하거나 커다란 서사를 다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아직 너무 세밀한 감성을 다룬 작품들에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다만 하나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요즘 챗GPT나 제미나이 등으로 생성된 재미없고 균질한 글들을 많이 접하다가, 작가들이 퇴고(堆拷) 끝에 내놓은 글을 읽으니 예민하지 않은 저조차도 새삼 글맛이란 게 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삶의 기쁨은 스마트폰이 아닌 현실에서 얻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