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평범하다 생각했던 나의 오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TV 피플’

by 생각하는T

이번 한주 도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작년 이맘때처럼 그래듯 일본 소설 한 권을 배낭에 넣어두고요. 1년 전과 마찬가지로 적당한 두께의, 알 만한 작가의 책을 고르다 보니 또 무라카미 하루키입니다.


인간은 왜 같은 실수들을 반복할까요? 작년에도 느꼈듯 무라카마 하루키의 작품이라고 꼭 작품성을 높게 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이 소설집은 가노 크레타• 좀비•우리들 시대의 포크러어-고도 자본주의 전사•비행기-혹은 그는 어떻게 시를 읽듯 혼잣말을 했는가•잠•TV 피플 등 여섯 편의 단편 소설을 담았습니다.


저는 이중 포크로어를 뺀 다섯 편은 허무맹랑하거나 의식에 흐름대도 적었다고 보는 편이 더 솔직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이 다섯 단편 소설들은 작가를 밝히지 않고 블라인드테스트를 했다면 평론가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전 이번에 포크로어 대해서만 다루겠습니다.


화자인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 자신인 듯해 보이고 그의 고등학교 동창은 고교시절 반장을 역임하고 축구부를 했던 인기 많은 모범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등학교 시절 후지사와 요시코라는 동급생과 사귀고 있었습니다. 그녀 역시 영어회화반을 다니는 모범생이었습니다.


화자인 나는 그들을 미스터 클린과 미스 클린이라며 한층 깎아내렸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시 LSD를 하는 대신 바나나 가루를 만들어 파이프도 피우고 약국에 가서 콘돔을 사고 브래지어를 푸는 방법을 배우던 학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가 보기에 그들은 지루한 모범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나’가 38살 일때 이탈리아 루카에서 우연히 그 동창을 만나면서 그의 오만은 깨집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였지만 “늙으면 혼자 하는 여행이 재미없어서(여기서 나는 38살입니다!)” 이 동창과 식사 약속까지 잡습니다. 그와의 점심에서 그와 그의 첫사랑 요시코의 이야기를 듣게되죠.


그는 언뜻 지금까지도 ‘나’가 예상했던 것처럼 모범생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 친구는 도쿄의 대학에서 법대를 다녔고 지금은 성공한 가구 수입 사업가로 살아갑니다. 이탈리아에 온 것도 수입할 가구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첫사랑은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와 요시코는 학생시절 패팅(애무)을 즐겼습니다. 그러면서도 요시코는 섹스는 한사코 거절합니다. 자신은 결혼할 때까지 처녀로 남겠다는 것이죠. 화자인 ’ 나 ‘가 설명하듯 그들의 학창 시절인 1960년대는 여성들이 아직 처녀성에 대한 인식이 남아 있었습니다. 꼭 처녀성을 지키겠다는 것을 떠나서 이것을 지킬지 말지 고민하던 시절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시코는 그저 보수적인 여성은 아니었습니다. 요시코는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은 어차피 대학에 가서 연상의 남자와 결혼을 할 것이고, 그때까지는 처녀를 지킬 것이다, 하지만 결혼을 해서 더 이상 처녀가 아니게 되면 그때 되면 너와 섹스를 하겠다라고요. 그리고 나는 너만큼 사랑한 사람이 없다라고 합니다.


나의 동창은 이 말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고 계속해서 요사코에게 매달립니다. 그가 도쿄에 대학에 다닐 때도 지금이라도 약혼을 할 수 있다며 ‘진정한 하나가 되자’고 설득합니다. 하지만 요시코는 단호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와 그의 동창이 28살이던 어느 날 밤 한통에 전화가 옵니다. 요시코입니다. 과연 4살 연상인 방송국 PD와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아직 아이는 없네요.


“우리 집으로 올래?”

첫사랑의 제안에 동창은 단박에 그녀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학장 시절에 한 이상한 제안이 진심이었던 걸 알게 되죠.


하지만 그는 끝내 요시코와 섹스를 하지 않습니다. 패팅만 할 뿐입니다. 학창 시절처럼요.


화자인 나는 그 동창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오만을 깨닫습니다. 섣불리 누군가를 재미없는 사람, 지루한 모범생 치부했던 자신을 돌아본 것이죠.


다만 저는 세상에 평범한 사람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세상 누구에게나 그들 자신의 인생이 있는데 어떻게 그들을 평범하고 할 수 있느냐’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언어를 오염시키는 언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각기 인생이 있겠지만 그 인생이 어떤 전형에 가깝다면 평범하다고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이죠.


여기서 화자인 ‘나’가 오만했던 것 그의 동창에 대한 진지한 관심도, 관찰도 없이 그를 어떤 존재로 치부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인상적인 것은 이 소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법관을 일부 유추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문장화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의 톤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그 톤만 확실하게 포착하고 있아면, 그 이야기는 진실한 이야기가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같은 작법론을 들이밀면서 이 소설에 어떤 생명력을 불어넣어 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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