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3월 11일

by 란님


아침 7시, 눈을 뜨기도 전에 목 안이 뻑뻑하고 불편한 느낌이 든다. 오랜만에 편도가 부었다. 어제 종일 대기 중에 미세먼지가 가득하더니 결국 몸에 반응이 오나 보다. 안개인 줄 알고 오랜 시간 걸어 다닌 탓이다. 아이들도 다들 콧물 가득한 비염증세를 보이는 걸 보며, 공기 질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아이들을 등원시켜 놓고 시리얼을 먹은 다음 나도 나간다. 신랑도 오늘 외출 일정이 있다고 하길래, 나갈 거면 갈 때나 올 때 나 좀 태워달라고 했더니 자기 바쁘다고 화를 낸다. 식구가 나갈 일 있으면 겸사겸사 같이 다니는 게 가계 경제를 위해서도 좋은 거지 뭘 그러냐 따지고 나왔는데 화가 난다. 가계고 뭐고 나도 차 한 대 뽑아버릴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후에 아이들 일정이 있는 날이라 집안일할 시간이 별로 없기에 일찍 귀가하려고 했는데, 그냥 밖에서 기분전환 하다 와야겠다.


바이올린 수업에 갔는데, 월요일에 하루 배웠다고 수요일은 좀 낫다. 월요일에는 고음 자리 음계를 인식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오늘은 읽을 수 있었다. 악보도 볼 줄 모르는 탓에 선생님께 이것저것 기초적인 악보 기호들에 대해 여쭈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기본이 너무 없어 죄송해요" 했더니, 그런데도 연주회에 나갔던 게 대단한 것처럼 다독여주셨다. 오늘 내 앞에 앉으셨던 새로 오신 분도 내 바이올린 소리가 탱글탱글한 게 듣기 좋다 칭찬해 주셨다. 기분은 좋지만,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한 일이다. 바이올린 수업에 오면 따뜻하게 감싸주셔서 너무 좋다. 다들 아이를 키워보신 분들이라(손주까지 봐주시는 분들도 많다) 애엄마라는 역할이 얼마나 힘든지 공감하고 격려해 주시기에, 매번 용기를 얻고 간다.


열심히 연습한 후 집에 가는데 바이올린 동료가 같은 방향으로 간다길래 함께 걸었다. 점심 먹고 가자고 했더니 좋다고 하여 같이 밥도 먹고 차까지 마신 후에 천천히 헤어졌다. 나와 있는 내내 휴대폰을 안 봐서 몰랐는데, 신랑이 웬일로 밥을 같이 먹고 메시지를 보냈다. 아침에 화낸 게 마음 쓰였던 걸까. 진작 말해주지, 오랜만에 데이트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놓쳐서 아쉽다. 귀가가 늦어니 뭔가를 하기엔 시간이 애매하여, 화장실 청소와 환기만 한 뒤 글을 썼다. 무릎과 목에 통증이 느껴져 병원도 가봐야 하고, 유심칩 교체를 위해 통신사 대리점에도 가야 하고, 바이올린 연습도 해야 하고, 통장내역 정리하러 은행에도 가봐야 하는데, 시간은 애매하고 나는 쉬고 싶기에 글만 썼다.


오늘은 도서관 수업이 있는 날이라 3시 40분까지 유치원에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한다. 몇 시간 만에 만난 신랑은 감기기운이 있면서 병원에는 가지 않은 듯하다. 그래도 약은 먹었는지 약기운이 돌아 나른해한다. 평소 같으면 아이들이 수업 듣는 동안 미용실이라도 다녀오라고 권했겠지만, 피곤해 보이길래 차에서 자길 바라며 아무 말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수업을 듣는 동안에는 아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한구석에 앉아서 글을 썼다. 글쓰기를 마친 다음 친목활동을 하다가, 수업이 끝난 아이들과 함께 나왔다. 도서관 근처 경양식 집에서 맛있는 저녁식사를 마친 후, 밥을 거의 먹지 않은 신랑을 위해 삼계탕 가게에 들러 죽 하나를 포장했다. 신랑은 안 먹겠다며 내가 먹으라고 한다. 물어보지 않고 시킨 것이긴 하지만, 몸도 안 좋은데 그냥 약처럼 먹으면 될 것을. 진짜로 안 먹으면 아이들과 내일 아침으로 먹어야겠다.


집에 들어와 환기하며 청소기를 돌리고, 아이들 물병을 꺼내 설거지하는 동안 아이들은 아빠와 하나 둘 씻는다. 오늘 가사노동을 안 해서 빨래도 쌓여있고 집안도 엉망이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내일 일정이 없으니 차분하게 하면 된다. 바이올린 연습도 하고, 은행과 통신사 대리점에도 꼭 가야지. 할 수 있겠지? 자고 일어나면 목도 안 아프고, 다리도 안 아파서 할 일 목록이 줄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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