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눈을 뜨니 아침 8시, 알람이 울리고 있다. 알람이 울릴 때까지 자본 게 얼마만이더라. 알람을 끄고 멍하니 앉아있는데 막내가 일어나서 안긴다. 아이를 안으니 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겨내고 일어나 아이들 옷을 꺼내어 입힌다. 각자 양치하고 세수하는 동안 나는 아이들 물병을 준비하고 어제 사온 닭죽을 데워 아침으로 낸다. 아이들을 등원시킨 후 손님맞이를 위해 집안정리를 시작한다.
오늘은 새 정수기를 설치하는 날이다. 집 정리가 완료되기 전에 기사님이 도착하셨기에 민망하여 "집이 좀 지저분하죠" 했더니 "애들 있는 집이 그렇죠"라고 해주셔서 위안이 됐다. 기사님이 알아서 설치해 주신다고 하여 서로 불편하지 않게 떨어져 앉아 나는 내 할 일을 시작한다. 월말에 처리해야 할 송사 준비를 위해 서류를 찾고 정리하는 게 나의 오늘 할 일이다. 기사님이 가신 후에는 남은 닭죽을 끓여서 신랑과 나눠먹었다. 둘 다 목이 칼칼하여 따뜻한 죽이 반갑게 느껴진다.
빨래를 정리하고 분류해서 돌리며 서류 작업을 하고 앉아있는데, 신랑이 추어탕을 먹으러 가자고 해서 냉큼 따라나섰다. 좋아하는 가게에 가서 든든하게 먹은 다음, 은행과 통신사 대리점에 가서 볼 일을 보고 내과에 들러 감기약도 받아왔다. 이제 곧 하원시각이길래 유치원에 아이들을 데리러 갔더니, 예고없이 온 게 이상하다 생각한 둘째가 묻는다.
"오늘 뭐 해요?"
"아무것도 안 해. 마트나 갈까?"
다이소에 먼저 가서 색종이와 아래층 아이들에게 줄 기프트카드를 사고, 오랜만에 마트에 갔다. 재작년까지 자주 가던 마트였지만, 작년과 올해는 바빠서 갈 일이 별로 없었다. 오늘도 인터넷 주문은 미리 해둔 터라 장은 안 보고, 약국에 들러 상비용 챔프시럽(아이들 감기약)을 구매한 다음 손을 씻고 프레츨을 사 먹었다. 어묵도 사먹고 싶었지만 저녁을 먹어야 하니 참고, 망고가 세일하길래 몇 개 사서 귀가했다.
지하에 주차하고 올라오는데, 17층에 사는 유치원 친구와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반가운 듯 어색한 듯 인사하는 아이들이 귀엽다. 아이들 물통을 꺼내어 씻어두고 택배 온 새 옷을 세탁하면서 저녁준비를 하려는데 신랑이 말한다.
"어차피 애들도 안 먹는데 밥 하지 말고 고기만 먹자."
할 일이 줄어드는 건 반가운 일이다. 채소와 오리고기를 다듬어 찜통에 쪄먹었다. 디저트로 딸기를 먹고 씻고 치우고 양치하고 책을 읽어주었다. 아빠와 아이들이 자러 들어간 사이 씻고 화장실을 청소하면 오늘 할 일 끝이다.
소소한 일들로 바쁜 하루였다. 별거 아니지만 하려던 일 몇 가지를 마무리하니 머릿속이 홀가분해지는 기분이다. 오늘의 마지막 할 일은 신랑에게 토스해 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