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3월 10일

by 란님


등원 준비로 바쁜 아침, 신랑은 아침운동을 하러 나갔다. 운동하러 간다고 하면 참견하는 일이 거의 없지만 오늘은 참견하고 싶어진다. 지난주에 비해 대기의 온도도 낮고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 장시간 야외활동라니 나는 반대다. 하지만 말려봐야 듣지 않겠지. 선크림을 챙겨 바르라고만 일러주었다(발랐다고 하는데 집에 돌아왔을 때는 얼굴이 벌겋게 상해 있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지만, 신랑의 피부와 기관지가 상하는 게 너무 아깝다. 같이 살 사람이 아니라면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일인데.


오늘은 씩씩하게 버스에 탑승하는 둘째 아이를, 등원 선생님들이 반기고 다독여주신다. 집에 돌아와 남은 포도를 몇 알 집어먹고 이불 빨래를 시작한다. 신랑은 운동 후 점심 먹고 한 군데 더 들렀다 온다고 했으니 아이들 하원 즈음에나 올 것이다. 마트 앱에서 식재료를 주문하고 있는데, "띠링" 결제 알림 메시지가 온다. 배달앱 유료멤버십의 정기결제가 완료되었다고 한다.


네이버 멤버십은 내일 해지하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배민은 깜빡했다. 배민클럽은 이용료가 2천 원도 되지 않아 한 번만 주문해도 본전은 뽑을 수 있지만, 이벤트로 2~3개월 무료 이용권을 주는 곳이 많아 해지하려고 했었다. 지난달에도 깜빡했는데 이번 달도 잊었다. 2천 원도 안 되는 돈이지만 쓰지 않으려던 돈이 나가니 아깝다. 정기구독 아이템은 수가 많아질수록 좋지 않다. 관리가 안 되는 기분이 든다. 어쨌든 결제가 되었다니 이용해야지, 햄버거 세트를 주문한다.


정기구독이 필요한 아이템도 있긴 하다. 정수기가 그렇다. 우리 집 정수기는 구독이 끝난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어차피 필터만 갈면 된다고 들어 셀프로 필터만 갈아 끼워 사용 중이었다. 그런데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물맛이 좀 진득해지는 것 같아 교체하기로 마음먹었다. 언니네 시이모 중 한 분이 렌털회사에 다니고 계셔서 연락을 드렸다. 얼마 전 새 휴대폰도 구독을 시작했는데, 고정비용이 꽤 늘어난다. 얼마가 언제 무엇으로 인해 빠져나가는지는 파악하고 살 수 있도록, 목록과 비용 관리에 조금 더 신경 쓸 필요가 있겠다.


신랑이 돌아왔다. 부부상담을 하자고 한다. 반가운 이야기인데 기분이 별로다. 내가 원하고 권하던 것인데, 가뜩이나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 그것까지 신경 써야 한다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가정의 근간은 우리 둘의 관계이고 그것이 단단해야 우리 가정이 화목할 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왜 신랑 혼자서는 스스로의 마음을 가다듬지 못하는지, 우리 둘이 대화하는 것으로 관계를 개선할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내게는 말 못 하면서 남에게는 말할 수 있다니, 나는 이미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진다. 이해가 안 되어도 해야 할 일은 해야지. 나도 신랑의 마음이 궁금하긴 하다. 최대한 빠른 날짜로 잡아달라고 했다.


아이들이 돌아오고 우리는 다시 저녁일상으로 돌아간다. 이들의 이야기에 대답해 주고 필요한 걸 찾아주면서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요 며칠 안 보이던 밥솥 내솥 덮개를 오늘 드디어 찾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세탁실 바닥 위 비닐봉지 아래에 숨어 있었다. 바로 옆에 다른 구조물이 있어 찾을 때마다 매번 그곳이 사각지대가 되었나 보다(왜 거기 있는지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오늘 낮에 주문하려고 밥솥회사에 전화까지 했으나 지점 방문으로만 구매 가능하다는 말에 미뤘는데, 너무 부지런 떨지 않길 잘했다.


오랜만에 제대로 지어진 밥과 함께 먹을 반찬은 카레로 정했다. 채소와 고기를 잘게 썰어 볶고, 물을 어 카레가루를 조금씩 풀어준다. 팔팔 끓여 조금만 조리면 완성이다. 아이들 그릇에 먼저 떠서 식히는 동안, 카레가루를 조금 더 넣어 어른용은 매콤하게 만들었다. 첫째와 셋째는 맛있다고 잘 먹었고 신랑도 군말 없이 먹는데, 둘째는 매워서 못 먹겠다며 투정을 부린다. 달콤한 걸 즐기는 둘째 입맛에는 정말 매운 것일 수도 있지만, 떠먹여 달라고 떼쓰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모르는 척했다. 보다 못한 셋째가 몇 번 떠먹여 주니 먹는다. 밥을 조금 더 섞어줬더니 혼자서도 잘 먹는다. 결국 둘 다였던 걸까 - 맵기도 하고, 어리광도 부리고 싶고.


먹은 걸 치운 후, 씻고 손발톱을 깎아주었다. 엄마 것까지 총 80개를 깎았더니 손가락이 지쳐서, 나중엔 손톱깎이 손잡이에서 미끄러질 정도였다. 오늘은 잠자기 전 에그박사 13권을 읽어줄 차례였는데, 미리 준비해두지 못했다. 지방도시에 살면 이런 작은 부분이 불편하다, 당일배송이나 익일배송이 안 되는 곳이 많다는 점. 공기가 맑은 것이 최고 장점인데, 오늘은 미세먼지도 상당해서 슬펐다. 일이면 좋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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