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아침이 되었지만 아이들은 모두 피곤한지 8시가 훌쩍 넘어서도 깨어나지 못한다. 안쓰러운 마음에 좀 더 재울까도 생각해 봤지만, 졸리다고 등원시각을 안 지키면 그게 버릇이 되어 모든 활동에 건성이 될까 걱정이 되어 깨운다. 내가 그랬다. 더 자고 싶어 머리가 아프다고 말씀드리면 엄마는 "그럼 더 자, 선생님께 전화드릴게"라고 하셨다. 나는 학교든 학원이든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고 생각하며 자랐고, 특히 학원은 거의 나가지를 않았다.
아침을 먹여 준비하고 나갔는데, 둘째는 오늘도 등원버스에 타지 않겠다고 떼를 쓰며 운다. 평소 같으면 타지 말라고 하고 직접 데려다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바람이 너무 많이 불고 추워서 걸어갈 수가 없다. 걸어서 10분 거리인데 택시를 타고 가는 것도 우습고, 피곤해서 자고 있는 신랑을 깨우기도 싫다. 엄마와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러는 걸 알지만, 떼쓰는 게 버릇이 될 것 같아 억지로 태워 보냈다. 마치 이산가족처럼 서럽게 울며 엄마에게 손을 뻗는 둘째의 모습이 많이 아팠지만 보냈다. 선생님께 메시지로 사정을 말씀드리고 애가 많이 힘들어하면 전화 주시라고 했는데, 가끔 훌쩍이긴 하지만 잘 놀고 있으니 걱정 말고 볼 일 보라고 하신다.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아들을 믿어보기로 한다.
오늘은 3개월 만에 다시 바이올린 수업에 나가는 날이다. 지난 학기에 4개월 배웠지만 빠지는 날이 많아 출석률 절반을 가까스로 넘겼다(절반 이상 빠지면 다음 학기부터 등록할 수가 없다). 방학 기간 동안 꺼낸 적이 있지만 조율이 되지 않아 소리가 한심했고, 서울 갈 때 악기점에 한 번 들고 가야지 생각만 하다 결국 한 번을 못 가보고 개강날짜가 되었다. 선생님의 손길을 거치고 나니 지난가을의 그 녀석처럼 다시 쌩쌩해졌다. 이번 학기에 열심히 해보려고 활도 하나 구입했는데, 연주를 해보려 하니 소리를 내지 못하고 현 위에서 그냥 미끄러진다. 송진을 칠하려고 해도 송진 역시 새것이라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지난 학기 말에는 단체로 발표회에도 나갔기에 연습한 시간에 비해 잘했다고 뿌듯해했는데, 역시 쌓이는 시간을 속일 수는 없나 보다. 나는 바이올린을 배우고 연주한 게 아니라, 아는 척 흉내를 낸 것이었다.
오랜만에 만나 뵌 분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열심히 연습한 후 집에 오는 길에는 걸어서 왔다. 수업에 갈 때는 택시를 타고 갔지만, 지나면서 생각해 보니 걸어올 만한 거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 동네에서 걸어 다니는 게 조금 버거웠는데, 이제는 아는 동네 같이 느껴져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지도앱에서 알려준 50분보다 짧은 4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뮬을 신고 걸었더니 발목이 아프다. 다음 수업에는 운동화를 신고 가서 본격적으로 걸어봐야겠다.
집 앞에서 김밥 두 줄을 사서 들어왔다. 라면을 끓여 신랑과 함께 먹고 싶었는데, 신랑은 지금 안 먹겠다고 하여 혼자 먹는다. 7시에 일어나 오후 1시까지 분주하게 다녔더니 배가 고파 기다릴 수 없었다. 너구리가 2~3개 남아있다고 생각했는데, 없는 걸 보니 주말에 신랑이 먹었나 보다. 난감하다. 짜파게티가 있길래 짜파게티 면을 넣고 언젠가 면만 쓰고 따로 빼둔 신라면 스프가루를 찾고 짜파게티 스프가루도 함께 넣었더니 맛이 괜찮다. 응용력 좋아, 잘했어 나 자신.
보통 주말이 지나고 나면 이불 빨래를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집을 비운 동안 밀린 빨래가 너무 많다. 빨랫감을 분류하여 세탁기에 넣어 돌린다. 가장 두꺼운 패딩도 이제는 집어넣을 때가 된 것 같아 한쪽에 모아두었다. 할 일은 계속 쌓이는데 처리속도는 늘지 않아 큰일이다. 빨래를 돌려놓고 글을 쓴다. 글 하나를 마무리하니 벌써 오후 3시가 넘었다. 빨래를 개고 청소를 시작하는데, 청소기가 충전되어 있지 않았다. 난감하다. 아이들이 돌아온 후 같이 놀다 밥을 하기 위해 쌀통을 열었는데 쌀이 없다. 난감하다.
"오빠, 주말에 쌀 다 먹었으면 말 좀 해주지~ 지금 쌀 사 오면 너무 늦어지니까 오늘은 나가서 먹자."
최근 2년 사이에 외식을 싫어하게 된 신랑이지만, 오늘은 나가는 것에 동의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돈가스집에 가기로 했다. 아이들은 홍익돈가스라는 가게를, 홍이돈가스라고 말하면서 좋아한다(아빠 이름이 홍이). 돈가스 가게에 갔더니 사장님이 아이들을 알아보시며 엄마 얼굴은 처음 본다고 말씀하셨다.
"저 자주 왔는데요.. ㅠㅠ"
다 같이 올 때는 인상 깊지 않아도, 신랑이 두어 번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왔을 때는 기억에 남으셨나 보다. 조금 서운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 아이 여럿을 데리고 혼자 데리고 다니는 아빠는 흔치 않으니까.
우리 신랑, 대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