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새벽까지 언니와 수다를 떤 덕분에 9시가 될 때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아이들이 조잘대는 소리에 일어나 언니를 깨워주고 나도 나갈 준비를 한다. 엄마가 부엌에서 뭔가를 만지고 계시길래 신신당부를 드렸다.
"엄마, 어차피 아무도 안 먹는데 아침상 준비 말고 외출준비 하세요."
엄마는 잠시 멈칫하신 후에 "그럴까?" 하며 하던 일을 전환하신다. 아예 아무것도 안 차리는 건 도저히 못하시겠는지 과일을 깎아주셨다. 사과와 딸기, 키위, 바나나, 배를 종류별로 내어주셔서 아이들이 취향대로 골라 먹을 수 있었다. 과일과 모닝빵, 우유를 아침으로 먹고 모두가 외출한다. 언니네는 교회로, 나와 둘째는 롯데월드로 간다. 그냥 가기 아쉬워 둘째 조카의 머리를 예쁘게 묶어주었다. 셋째와 첫째도 해주고 싶었지만, 준비하길 기다리면 롯데월드에 사람이 많아질 것 같아 둘째까지만 하고 나왔다.
오늘 이 동네에 마라톤이 있다기에 긴장했는데 아직 시작하지 않았는지 한산하다. 백화점으로 가 가방과 외투를 맡기고 롯데월드로 향한다. 이따 지하철을 탈 예정이라 동선상 그게 편리할 거라는 판단이다. 예정에 없던 일이라 연간권을 안 들고 왔으니 재발급부터 받고 가까운 남문으로 입장했다. 오늘따라 한산한 느낌이라 얼른 보고 가려고 와일드투어를 탑승하러 갔다. 진행 중인 회차가 끝나자마자 바로 볼 수 있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지난주까지 방학이라 다들 지친 걸까. 와일드윙에서 나와 그 옆의 와일드정글, 마지막으로 와일드밸리까지 모두 탑승하는데 30분 남짓이 걸렸다. 지난번 방문 때는 하나 타는 데에 90분씩 걸렸는데, 믿을 수가 없는 기록이다.
어린이 동화극장에 예약방법을 보러 갔더니 지금 바로 예약 중이라 대기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1시간 정도 남았으니 키즈토리아도 대기해 두려고 갔더니, 11시 타임이 현재 입장중이라고 한다(오후는 예약 중). 고작 10분 지났으니 온 김에 가는 게 이득일 것 같아 바로 입장했다. 늘 예약에 실패하여 못 가본 곳인데, 뭐가 재밌는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무척 좋아한다. 그나마 재밌어 보이는 볼배틀 구역에 가서 요새의 3층까지 올라가 본다. 처음 가본 곳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다른 아이들은 부모가 바구니에 담아 온 안전공을 볼대포로 쏘아 올리며 놀고 있다. 나도 가져올까 잠시 고민했으나 아이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도와주지 않는 대신에 재미가 없어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도 티 내지 않았다.
아이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공을 주워서 놀다가, 1층으로 내려가더니 바구니를 찾아들고 공을 모으기 시작한다. 집중하여 열심히 주워 담는 모습에 조금 감탄했다. 안 도와주길 잘했다. 바구니를 비운 다음에는 다시 내려가 더 큰 바구니를 찾아 공으로 채워왔다. 이번엔 너무 큰 걸 고른 탓일까, 큰 바구니에 가득 찬 공을 하나하나 쏘는 게 귀찮아졌는지 공을 집어 들고 던지기 시작한다. 그것도 속도가 안 나는지 바구니를 통째로 비워버리려고 하기에 말렸다. 아무리 안전공이라고 해도 무더기로 낙하하면 지나가던 사람에게는 봉변일 수 있다. 볼배틀에서만 30분 이상 놀다 나오니 다른 구역을 구경할 틈도 없이 이용시간이 끝났다는 방송이 나온다. 나는 속으로 '드디어 나갈 수 있구나' 쾌재를 불렀다.
키즈토리아에서 나오면 키디존이다. 범퍼카를 한 번 타고 동화극장 앞으로 가 줄을 선다. 20분 후에 공연을 위한 입장이 시작될 예정이다. 아이는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으니 시야에 들어오는 벤치에 가서 앉아있으라고 했는데, 어른들에 가려져 자꾸만 시야에서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하여 엄마가 마음 졸이게 만들었다. 역시 아빠와 같이 오는 게 좋겠다. 유치원 생활의 꿀팁을 알려주는 하트핑(펭귄) 공연을 보고 나오니 놀이기구를 하나 정도 더 탈 수 있을 것 같은 시간이다. 아이가 고른 후룸라이드는 평소 같으면 줄이 너무 길어 시도하기 싫은 놀이기구이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한산한 듯해 도전해 보기로 하였다. 110센티 이상이라는 신장제한이 있는 놀이기구들을 둘째는 이제 제약 없이 탈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대기시간 60분이라는 안내를 받고 들어갔는데, 탑승을 마치고 옷을 좀 말리다 나오니 딱 60분이 지나 있었다. 우리 아들이 후룸라이드를 처음 타본 날을 기념하기 위해 5천 원짜리 사진도 한 장 뽑아왔다. (생각해 보니 나도 오늘 처음 타본 듯하다.)
마침 시작 중이던 퍼레이드 행렬을 조금 바라보다, 대기줄이 텅 빈 틈을 타 회전바구니도 한 번 탔다. 롯데월드에서 이렇게 알차게 놀아본 건 처음인 것 같다. 티니핑 페스티벌 때 너무 시달린 부모들이 발걸음을 포기한 탓일까. 이 정도라면 서울 방문 때마다 매번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백화점으로 돌아와 푸드코트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맡겨둔 짐을 찾아 터미널로 이동한다. 아이는 이제 지하철과 기차의 차이점을 안다. 지하철이 바깥으로 나와 지상철이 되면 기차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해 주었는데, 조금 더 정확한 설명을 위해 공부할 필요성을 느낀다. 과자만 하나 먹고 잠든 아이는 2시간 동안 쭉 잠을 잤다. 덕분에 나도 한숨 자면서 편하게 올 수 있었다.
집에 오니 첫째는 낮잠을 자고 신랑과 셋째도 나른한 오후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집을 보며 감탄하고 칭찬해 준 다음, 순차적으로 뽀뽀세례를 퍼부어 주었다. 남편은 뽀뽀를 몇 번 받다 귀찮아하였고, 셋째는 그저 엄마가 보고 싶었다는 듯이 엄마에게 한동안 안겨 있었다. 첫째는 한참 자다 일어나서 엄마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었으나 자기를 두고 간 것이 서운한 것 같다. 언니네 집에서 조카들 비위를 맞춰줄 때도 느꼈지만, 아이가 많으면 모두의 기분을 살피는 게 참 힘들다. 그래도 최대한 노력하는 수밖에. 저녁을 차릴 체력은 없어 외식하고 싶었으나 온 가족이 피곤해하는 바람에 배달음식을 주문해 먹었다. 빨래가 한가득이지만 내일의 나에게 미뤄놓고, 아이들 물병을 씻기 위해 설거지만 마무리한 채, 씻고 책을 읽고 다리를 주물러 준 후 잠들었다.
가족이 다 모이니 참 좋다.